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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바다의 가미가제, 가이텐 특공대

강제윤 시인 - 제주 마라도 기행(1)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3.07.25 11:35
  • 수정 2015.11.1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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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제주 섬으로 왔다. 꽃들은 피기도 하고 지기도 하지만 섬은 바람 잘 날 없다. 사람살이는 암만해도 꽃보다는 섬 쪽에 가깝다. 동풍이 그치는가 싶으면 서풍이 불어온다. 또 언제 먹구름이 몰려오고 비바람이 불 것인가. 꽃 피어보지도 못하고 꽃 시절이 벌써 저만큼 간다. 모슬포에서도 정기선이 뜨지만 배시간이 맞지 않아 송악산 유람선 부두로 왔다. 부두에는 단체 관광객들이 마라도행 배를 기다리며 줄지어 섰다. 이 근방, 모슬포 지역은 제주에서도 바람이 유난히 많은 곳이다. 그래서 이곳 사람들은 모슬포를 '못살포'라 했었다. 섬은 바람 불지 않는 날보다 바람 부는 날이 더 많다. 그나마 큰 섬의 포구가 '못살포'라면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운 작은 섬들은 무어라 불러야 할까.

오랫동안 나그네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소처럼 생에 붙들리고 끌려 다녔다. 끊임없이 벗어나기를 갈망하면서도 기회가 올 때마다 서둘러 몸을 피했다. 진실로 나그네를 붙들고 놓아주지 않는 것은 무엇인가. 생인가. 생의 바깥인가. 삶을 살면서도 나그네는 단 하루도 삶에 안착하지 못했다. 늘 삶의 바깥으로 떠돌았다. 피안(彼岸), 삶 너머로만 떠도는 삶도 삶이라 할 수 있는가. 나그네는 끝내 스스로 도살장의 문턱을 넘지 못할 것이다. 망설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애착인가 불안인가. 시간들, 삶의 도축 업자들. 가뭇없는 제주의 시간이 간다.

송악산 해안선을 따라 둥근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 인공 동굴들. 일제 말기 태평양 전쟁의 패색이 짙어갈 무렵 일제는 일본 본토 공격을 피할 희생양을 찾았다. 훗가이도와 제주도. 두 섬에서 결사항전의 의지를 보여 미군으로 하여금 본토 공격을 포기하게 만들겠다는 의도였다. 이름하여 결 1호(훗가이도), 결 7호(제주도) 작전. 제주는 일본 본토 수호 전쟁의 작전 지역이었다. 그때 만들어진 전쟁의 흔적들이 알뜨르 비행장의 전투기 격납고와 저기 모슬포 해안, 송악산 자락, 우도 해변의 인공 동굴들이다.

가미가제 특공대는 하늘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인간어뢰, 가이텐 자살 특공대는 바다의 가미가제였다. 일제는 저 인공 동굴 속에 폭탄을 실은 작은 배를 숨겨 두었다. 미군 함정이 나타나면 '인간어뢰'가 돌진해 미군 함정과 함께 자폭하도록 할 계획이었다. 제주도를 초토화 시켜서 일본 본토를 수호하겠다는 전략은 미국의 희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대한 원폭 투하로 미수에 그쳤다. 희로시마와 나가사키에는 비극이었지만 제주 섬에게는 다행이었다. 제 무덤이 될지도 모를 자리를 파던 사람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저 동굴들에 쏟아진 사람들의 피땀과 눈물은 인공 동굴들을 채우고도 남았을 것이다.


송악에서부터 흐리던 하늘이 기어코 비를 쏟아낸다. 비가 오면 바람이 뒤 따르는 것이 섬의 생리다. 파도가 높아지는 것을 보니 막배는 뜨지 못할 듯하다. 잠깐 바람이 잠잠한 때를 기다려 배는 나는 듯이 마라도로 건너 왔다. 서둘러 돌아보고 나오라고 선원들은 관광객들에게 신신 당부한다. 선착장 입구에는 골프카들이 늘어서 있다. 전에 없던 풍경이다. 예전에는 민박집 차량 몇 대가 손님들을 실어 날랐을 뿐이었는데 오늘은 배에서 내린 승객들을 다 태우고도 남을 정도로 골프카가 많다. 비가 오는 탓인지 관광객들은 고민하는 기색도 없이 서둘러 차에 오른다. 장애인들이나 거동 불편한 노인들에게는 고마운 차다. 하지만 천천히 걸어서 돌아도 30분이 채 걸리지 않는 섬. 이 작은 섬에서 두 다리 튼튼한 사람들마저 탈것에 의지 하는 것은 씁쓸하다. 장사꾼들만 탓할 일은 아니다. 어쩌겠는가. 관광객들 스스로 걷기를 원치 않는 것을.

마라도는 솟아난 구릉 하나 없이 평평하다. 이 작고 낮은 섬이 물결에 떠내려가지 않게 붙들어주는 힘은 무엇인가. 삶의 무게일까. 삶의 부력일까. 애기업개는 오랜 세월 섬의 수호신이었다. 살아서 처참했으나 죽어서 신이 된 여자아이. 신이 된 아이를 모시는 애기업개 당은 섬의 서쪽 모퉁이에 없는 듯이 있다.

옛날 가파도와 마라도에 사람이 살지 않던 시절, 모슬포 사는 이씨 여인이 버려진 여자아이를 발견했다. 여인은 관에 신고했으나 부모를 찾지 못했고 아이는 여인에게 맡겨졌다. 아이가 없던 여인은 딸처럼 길렀다. 아이가 여덟 살 되던 해 여인은 아이를 낳았다. 주어다 기른 아이는 애기업개가 되었다. 애기업개는 구성진 소리를 잘도 했다. 갓난아이가 울 때면 애기업개는 얼르며 자장가를 불러 주었다.

"아가 아가 우지마라. 아방 있고 어멍 있는 아가 너 왜 우느냐."
애기업개는 울음을 삼키며 아이를 달랬다. 그 무렵 마라도는 금(禁)섬이었다. 섬 주변에 해산물이 넘쳐나도 물살이 거세 좀처럼 들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매년 봄 망종 때부터 보름간은 물살이 없어 입도(入島)가 허가 되었다. 어느 봄 마라도의 '잠수'들이 테우를 타고 마라도로 들어갔다. 테우 주인인 이씨 부부는 아이와 열 세 살이 된 애기업개를 함께 데리고 섬으로 갔다. 잠수들은 지천으로 널린 해산물을 손쉽게 건저 올렸다. 식량이 다 떨어질 즈음 잠수들은 떠날 채비를 했다. 테우가 섬을 벗어나려 하자 갑자기 거센 바람이 불었다. 떠날 것을 포기하고 섬으로 돌아오니 바람은 잠잠해 졌다. 다시 떠나려면 또 바람이 거세졌다. 그러기를 여러 날 반복됐다. 잡아놓은 해산물까지 다 먹고 없어졌다. 물과 양식이 아주 바닥나 버린 날 저녁 잠수들은 기어코 내일은 떠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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