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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애기업개당에서 만난 예수

강제윤 시인 - 제주 마라도 기행(2)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3.08.01 10:19
  • 수정 2015.11.11 10: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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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 가장 연장자인 잠수가 꿈 이야기를 했다. "어젯밤 꿈에 애기업개를 두고 가지 않으면 모두 물에 빠져 죽는다."고 했다. 테우의 주인 이씨 부인 또한 같은 꿈을 꾸었다. 잠수들은 애기업개를 놓고 가기로 결정했다. 이씨 부인은 기저귀 하나를 걸어놓았다. 테우에 사람들이 오르자 다시 바람이 일기 시작했다. 이씨 부인은 애기업개에게 기저귀를 걷어오도록 시켰다.

애기업개가 기저귀를 가지러 간 사이 테우는 떠나갔다. 애기업개는 살려달라고 애원했지만 테우는 돌아오지 않았다. 그 뒤 3년 동안 사람들은 죄책감으로 마라도에 가지 못했다. 3년 후 사람들이 다시 마라도에 들어갔을 때 애기업개는 하얀 뼈로 남아 있었다. 잠수들은 뼈를 거두어 묻었다. 후일 마라도에 사람들이 들어와 살기 시작했을 때 한 노인의 꿈에 자꾸 애기업개가 나타났다. 섬사람들은 애기업개가 죽은 자리에 당을 만들고 제를 지내기 시작했다.

애기업개당은 처녀당, 할망당이라고도 한다. 커보지도 못하고, 늙어보지도 못하고 죽은 아이가 처녀가 되고 할머니가 되었다. 섬의 수호신으로 자라난 것이다.

집단의 이익을 위해 나약한 개인을 희생양으로 삼는 것은 인류의 오래된 악습이다. 스스로의 악행에 면죄부를 주기 위해 희생자를 신으로 떠받드는 것 또한 낯설지 않은 풍습이다. 자신들이 살기 위해 죄 없는 어린 것을 희생양으로 삼아 사지로 몰았던 사람들. 가장 비천하게 살다 참혹하게 죽은 어린아이가 마침내 그를 죽인 자들의 신이 됐으니 이는 기뻐해야 할 일인가 비통한 일인가.

나그네는 애기업개 당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뒤 전능한 신으로 모셔진 예루살렘의 사내를 본다. 예수나 애기업개나 그들은 사후에도 시달림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사람들은 죽은 사내와 아이를 신으로 모시고 온갖 소원과 부탁을 청하며 영혼이 한시도 안식할 틈을 주지 않는다. 애기업개당은 1995년 무렵 한차례 수난을 당하기도 했다. 어떤 기독교인이 미신이라는 이유로 당을 망가뜨렸다. 그는 그것이 자신의 신전을 파괴하는 일과 다르지 않음을 끝내 몰랐을 것이다.

마라도에는 숲이 없다. 인공조림으로 소나무들을 심었으나 바람 때문에 성장이 더디다. 본래부터 마라도가 이처럼 민둥한 땅은 아니었다. 사람들이 살기 전 마라도는 원시림으로 덮인 울창한 숲이었다. 금(禁)섬이 풀리고 마라도에 사람들이 다시 이주해 살기 시작한 것은 1883년 무렵이었다.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사람이 살길을 찾아 탄원을 한 끝에 허락을 받아냈다. 처음 섬에 들어온 도박꾼과 일행이 몇 뙈기 밭을 일구기 위해 수 천 년 원시림을 모조리 불태워 버렸다. 마라도의 모든 것을 태우는데 석 달 열흘이 걸렸다는 전설은 과장이 아닐 것이다. 천년 세월이 불타는데 석 달 인들 길다 하겠는가.


나무를 다 없애버렸으니 섬에는 땔감이 없었다. 그래서 옛날 마라도에서는 순전히 연료를 얻을 목적으로 소를 길렀다. 유목민들처럼 소똥을 주어다 넓적하게 빚어 돌담이나 잔디밭에 널어 말린 뒤 땔감으로 썼다. 전기가 없고 등잔 기름이 없던 시절에는 빅게(수염상어)와 도롱이(불범상어)를 잡아 내장을 끓인 뒤 기름을 만들어 불을 밝히기도 했다.

비는 좀처럼 그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방수가 되는 줄 알았던 잠바는 무용지물이다. 우산을 준비했어야 했다. 그도 아니면 비옷이라도 사야 했었다. 이미 속옷까지 다 젖은 다음 후회는 부질없다. 골프카를 타고 서둘러 섬을 돌아본 사람들은 다들 선착장으로 갔을 것이다. 비에 젖은 몸에 한기가 밀려온다. 개들도 비를 피해 팔각정으로 몰려든다. 몸이 젖는다고 비를 탓할 일은 아니다. 오랜 세월 나그네는 궂은 날씨 탓만 해 왔다. 비 오는 날 비옷을 준비하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기보다는 애꿎은 날씨를 핑계로 허송세월 했다. 청춘이 어리석은 구름처럼 흘러가고 말았구나! 나그네여.

제주 어느 곳처럼 마라도에도 집 근처에 무덤이 있다. 제주만이 아니다. 섬에서는 대문 밖에다 무덤을 쓰는 일도 흔 하다. 무덤은 밭 가운데도 있고 뒷마당에도 있다. 땅이 부족한 탓이기도 하지만 그보다는 섬사람들이 죽음에 거리낌이 없기 때문이다. 어제 밤에 함께 술 마시던 친구가 오늘 죽었다 해서 통곡하는 모습을 본적이 없다. 섬사람이 본래 무정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섬사람들에게는 죽음도 일상인 까닭이다. 죽음을 가볍게 여기는 것이 아니라 죽음에 대해 담박한 것이다. 생사불이(生死不二)를 늘 목전에서 보고 사는 삶. 삶의 터전이며 생명의 밭이기도 한 바다가 언제든 죽음의 수렁이 된다. 오늘은 상가에 조문 와 있지만 나 또한 내일 바다에서 죽을 수 있다! 바다가, 바람이, 풍랑이 섬사람들을 무문관에 들게 했다. 생사불이의 화두를 깨치게 했다.

하지만 마라도에는 이제 더 이상 무덤이 생기지 않는다. 좁은 섬에 더 이상 무덤을 쓸 땅도 없을 터지만 그보다는 섬사람들의 삶의 근거지가 더 이상 섬이 아닌 까닭이다. 섬은 바다와 관광객들을 상대로 수입을 거두어들이는 직장이며 영업장이 되어 가고 있다. 민박이나 횟집을 하는 사람들 대다수는 토박이들이 아니다. 얼마 남지 않은 토박이들도 죽으면 제주 본섬에 있는 자식들 곁으로 가서 묻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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