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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영화 ‘섬마을 선생님’

강제윤 시인 - 옹진 대이작도, 소이작도 기행(2)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3.09.26 09:47
  • 수정 2015.11.11 10: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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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자승은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객승은 아무 말 없이 돌아갔다. 구지 선사가 돌아오자 동자승은 자초지종을 이야기 했다. 그러자 구지 선사가 물었다.

"그 스님에게 했듯이 나에게도 대답 해 보거라. 불법이 무엇이냐?"

동자승은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구지선사는 칼을 꺼내 동자승의 손가락을 싹둑 잘라 버렸다. 동자승은 비명을 지르며 문밖으로 뛰쳐나갔다. 선사가 동자승을 불러 세우고 다시 물었다.

"그래 불법이 무엇이냐?"

동자승은 순간적으로 손가락 하나를 세워 보였다. 아차, 그런데 손가락은 이미 잘리고 없지 않은가? 그 순간 동자승은 퍼뜩 깨쳤다.

벽암록에 나오는 이야기다. 동자승은 대체 무엇을 깨쳤던 것일까. '무아(無我)'를 깨쳤던 것일까. 나를 내려놓을 때, 나의 주장을 내려놓을 때 비로소 나는 진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은 것일까. 나그네는 소이작도 손가락 바위 화상의 법문을 듣고도 쉽게 깨치지 못한다. 나그네는 여전히 스스로를 내려놓을 수 없다.

무정하게도 막 배는 소이작도에 닿지 않고 대이작도로 곧장 가버렸다. 손님이 없는 비수기에는 흔한 일이다. 주민들이야 자기 배로 건널 수 있지만 나그네는 불과 200미터 거리의 바다도 건너뛰지 못하고 갇혔다. 저 작은 바다도 건너 뛸 수 없는 몸이 생사의 바다를 건너는 초월의 꿈을 꾸고 있단 말인가!

우편선을 얻어 타고 대이작도로 건너왔다. 크고 작음은 상대적이다. 대이작도는 이름처럼 큰 섬이 아니다. 큰 대자가 붙은 것은 소이작도에 비해 크다는 뜻일 뿐, 섬은 면적 2.57㎢, 해안선둘레 18km에 불과하다.

대이작도의 선착장에는 '영화의 섬'이라는 빛바랜 글귀가 눈에 띈다. 대이작도는 이미자의 노래 '섬마을 선생님'을 영화화한 '섬마을 선생님'(1967년 김기덕 감독 작품)의 배경이 됐던 섬이다. 나그네는 선착장을 지나 큰말 부근에서 대이작도의 주산인 부아산에 오른다.


가장 높은 봉우리가 해발 159m에 불과한 부아산. 산정에는 70m의 구름다리가 놓여 있다. 정상에 오르니 대이작도 주변의 섬들이 발아래 인 듯 가깝다. 동쪽은 옹진군의 승봉도, 서북쪽은 자월도, 소야도, 덕적도, 서쪽은 문갑도, 굴업도, 각흘도, 남서쪽은 선갑도, 백아도, 울도. 동남쪽으로는 풍도, 육도, 대란지도 등 충남의 섬들도 지척이다.

이제는 섬 마을의 많은 학교들이 사라지고 없다. 영화의 배경이 됐던 대이작도의 계남분교도 폐교된 지 오래다. 더 이상 순정을 다 바쳐서 총각 선생님을 사랑할 섬 처녀는 없다. 처녀들, 총각들, 모든 젊은 사람들이 떠나가 버린 섬마을은 적막하다. 섬도 늙었고 사람도 늙었다. 순정을 빼앗고 훌쩍 떠나버렸던 총각 선생님은 지금쯤 교감이나 교장이 되어 늙어갈 것이다.

그때 그 순정한 처녀는 어디로 갔을까. 뭍으로 나가 식모살이를 하거나 공장으로 갔겠지. 더러는 술집으로도 갔겠지. 그녀도 이제는 늙었거나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닐 것이다. 더 이상 청춘도 없고 비애도 없는 섬은 쓸쓸하다.

"해당화 피고 지는 섬 마을에
철새 따라 찾아온 총각 선생님
열아홉 살 섬 색시가 순정을 바쳐
사랑한 그 이름은 총각 선생님
서울엘랑 가지를 마오 가지를 마오"

부아산 정상, 정자에 앉아 '섬마을 선생님'을 흥얼거린다. 구성진 가락에 애틋한 가사. 그 시절뿐일까. 순정을 다 바친 이들에게 돌아오는 보답이란 기껏 비극적 결말뿐인 것이. 하지만 노래의 힘은 비애를 넘어 선다. 슬픔도 가락을 타면 흥이 된다.

대이작도의 진짜 보물은 섬 안에 없다. 큰 풀안 해변 건너 바다 속에 있다. 밀물 때는 몸을 숨겼다 썰물 때면 모습을 보이는 모래섬. 사승봉도에서 자월도 서남단까지 펼쳐진 모래밭을 이곳 사람들은 풀등이라 부른다. 선착장에서 배를 타고 풀등으로 간다. 고기잡이가 없는 여름철에는 피서객을 태운 어선들이 자주 운항하지만 요즈음 같은 봄철에는 풀등으로 가는 길이 쉽지 않다.

민박집 주인에게 부탁해서 어렵게 낚시 배를 얻어 탔다. 10분 남짓 가니 망망하던 바다 위로 장대한 모래섬이 솟아 있다. 오늘은 '조금'이라 모래섬의 일부만 보이지만 '사리' 때면 동서 2.5km, 남북 1km의 모래 평원이 본 모습을 다 드러낸다. 모래섬은 마치 바다의 신기루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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