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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바다에서 번 돈은 다 물거품이 되버리더라고”

강제윤 시인 - 인천 신도, 시도, 모도 기행(2)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3.10.17 08:52
  • 수정 2015.11.11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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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게는 가을동안 잡고 겨울에 잠깐 쉰 뒤 봄부터 6월까지 또 잡았다.7~8월은 산란철이라 금어기. 꽃게잡이 때는 한사리 동안 배에서 생활 하다 잠깐씩 집에 다녀오고는 내내 바다에서 살았다. 꽃게잡이 때 바람이 불거나 그런 날은 굴업도로 들어갔다. 바람이 그치지 않으면 며칠씩 굴업도에서 놀고 그랬다. 민어파시의 고장 굴업도의 영화가 꽃게의 시대에도 이어졌었다. 그물에 걸린 게를 딸 사람들도 데리고 가서 굴업도에 방 얻어주고 지내게 했다.

덕적도 근해에서 꽃게를 잡으면 덕적도 독강으로 운반선이 실으러 왔다. 좋은 물건은 전부 일본으로 갔다. 바다에서 나오는 것은 모두 그랬다. 운반선이 꽃게를 싣고 연안부두로 가면 급랭을 시켜 톱밥에 넣은 뒤 김포공항에서 일본으로 실어 보냈다. 어느 해인가는 한 철 꽃게를 잡고 나서 인천의 상회로 돈을 받으러 갔더니 돈이 어찌나 많은지 상회에서 사람까지 딸려 택시를 태워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그렇게 모은 돈이 오래가지는 못했다.

"바다에서 건진 돈은 물거품이 되더라구요. 재산이 안되요. 이상하게."

돈이 벌리면 더 크게 벌기위해 더 많이 투자를 했다. 어구를 사들여 어장의 규모를 키우는데 번 돈을 다 썼다. 그런데 어느 때 부턴가 꽃게가 잘 잡히지 않았다. 그래도 쉽게 포기 하지 올해는 들겠지 하고 기대를 버릴 수 없으니 투자를 멈출 수도 없었다. 그러다 갑자기 한 15년 쯤 전부터 꽃게가 아주 안 들었다. 그 사이 벌어놓은 돈은 그야말로 물거품처럼 사라져버렸다. 너도 나도 어장의 규모를 키우고 어린 꽃게 까지 싹쓸이 하다 꽃게도 씨가 말라 버린 것이다. 조기와 민어가 그랬듯이. 그러다 김발을 하고 김 공장을 했지만 그마저도 접었다. 여자는 이제 갯벌에서 굴과 조개를 캐고 민박을 치며 산다. 비행기 소음 때문에 힘들다.

시도는 화살 섬이다. 고려시대 말 최영과 이성계의 군대가 마니산에서 이 섬을 과녁삼아 활쏘기를 했다는 전설에서 화살 섬이란 이름이 유래했다. 고려, 조선 시대 내내 강화에 속했던 섬은 강화와 지척이지만 화살이 닿을 정도로 가깝지는 않다. 전설은 전설일 뿐. 시도에는 두 개의 드라마 세트장이 있다. ‘풀 하우스’와 ‘슬픈 연가’ 세트장이 그것이다. 이들 세트장이 아니라도 인천 근교의 섬들은 영화와 드라마 촬영장으로 각광을 받은 지 오래다. 드라마나 영화의 세트장이 관광 상품으로 가치를 갖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섬의 풍광 좋은 해변 마다 세트장이 들어서고 그것들이 마치 섬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처럼 선전되는 것은 우스꽝스럽다. 오래된 섬 살이의 흔적들은 증발해 버리고 가상의 드라마가 현실의 자리를 대체해버렸다. 선사시대부터 사람이 살아온 수 천 년 역사의 섬에서 고작 내세울 것이 멜로드라마나 영화 세트장뿐이라면 그것은 코미디다. 세트장은 우리 문화의 저급함을 드러내는 전시관에 다름 아니다. 저런 세트장들이 대체 몇 년이나 가게 될까. 극이 끝나면 관객은 떠난다. 자치 단체에서는 그저 전시행정과 눈앞의 성과에 급급해 세트장 만드는 일을 열심히 지원하지만 정작 섬에는 섬의 역사를 보여줄 수 있는 어촌 박물관 하나 없다.

시도에서 신도로 건너는 다리와 선착장부근에는 망둥어 낚시가 한창이다. 제법 씨알이 굵어 졌다. 다 큰 망둥어는 명태크기만큼 자란다. 대게 사람들은 망둥어를 흔하고 별 볼일 없는 물고기로 치부하지만 가을철 망둥어 회는 농어나 민어 회 못지않게 달고 고소하다. 조선시대 유배객 김려의 <우해이어보>도 문절망둑에 대해 “죽을 만들어 먹으면 향기가 그윽해서 쏘가리와 같고 회로 만들어 먹으면 더욱 맛이 좋다”고 기록하고 있다. 게다가 망둥어는 약효까지 있다. “이곳(진해) 사람들은 ‘문절 망둑을 많이 먹으면 더욱 잠을 잘 잔다.’ 라고 한다. 아마도 이것은 이 고기가 성질이 차서 마음의 화를 누그러뜨리고 폐를 건강하게 하기 때문인가 보다.”

흔히 말뚝 망둥어나 문절 망둥어 등 농어목 망둥어과의 물고기들은 통칭해서 망둥어라 부른다. 생김새도 비슷비슷하다. 주로 민물과 바닷물이 합류되는 곳이나 갯벌바다에서 많이 잡힌다. 내가 살던 남쪽 섬에서는 문저리라 했었다. 지역에 따라 운저리, 꼬시래기라 부르기도 한다. 망둥어는 회나 탕으로 끓여 먹기도 하지만 말려서 저장해 두고 겨울 내내 쩌 먹거나 쪼려서 반찬으로 먹으면 더 맛있고 요긴한 반찬거리가 된다.

모도는 장봉도, 시도, 신도 등 북도면의 네 유인도중에서 가장 작은 섬이다. 모도의 작은 간척지 논에도 추수가 끝났다. 논에서는 거위 두 마리가 볏짚을 쪼아 먹고 있다. 녀석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으려는데 한 녀석이 날개를 탈탈 털며 공격해 올 태세다. 주춤 뒤로 물러선다. “야, 야 공격 하지마. 너랑 싸울 일 없어.” 녀석을 달래면서도 나는 경계태세를 늦출 수 없다. 거위는 오리에 비해 사납고 공격적이다. 개처럼 주인을 알아보고 집을 지키기도 한다. 나그네의 평화 의지를 알아차린 거위는 이제 다시 볏짚을 먹는데 집중한다.

수로 근처, 휠체어에 노인 한 사람 우두커니 앉아 바다를 본다. 노인에게 인사를 건넨다. 잠시 멈칫 하던 노인은 경계를 늦추고 인사를 받는다.

“여긴 뱃일 하는 사람 별로 없어요. 잽히는 것도 벨로 없고. 밭농사나 짓지. 논 있는 거 쪼금 하고. 그럭저럭들 살아요.”

어느 섬엘 가나 사람들은 대체로 그럭저럭 힘겹게 살아간다. 이 시대에도 여전히 섬은 천대받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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