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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술병도 곧잘 고치는 물메기 섬

강제윤 시인 - 통영 추도(1)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3.10.31 10:08
  • 수정 2015.11.1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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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 추도는 온통 물메기 세상이다.
"어찌 추도 왔으꼬?"
"물메기가 많이 난다해서 구경 왔습니다."
"아, 그래 왔습니까."

통영시 추도(楸島) 미조마을 부둣가, 노인 한분이 통발 그물을 손질하고 계신다. 노인은 물메기 잡는 통발 그물이 찢어진 것을 이어 붙이는 중이다. 추도는 통영에서도 이름난 물메기의 고장이다. 통영 지방에서는 물메기국을 겨울 해장국의 으뜸으로 친다. 마른 메기는 잔치음식의 대표다. 전라도 잔치상에 홍어가 빠지면 차린 것 없단 소리를 듣듯이 통영의 잔치집에서는 마른 메기찜이 빠지면 '안꼬 없는 찐빵'이다. 그 통영에서도 추도는 대표적인 물메기 섬이다.

추도 어선들은 모두가 통발로 물메기를 잡는다. 다른 지역의 어선들은 대부분 플라스틱 통발을 쓰지만 추도만은 여전히 전통적인 대나무 통발 어법을 고수하고 있다. 물메기를 잡는데 썼던 대나무 통발을 손질하는 노인. 노인은 오랜 세월 물메기 잡는 어부로 살았다.

물메기의 표준어는 꼼치다. 꼼치는 동서남해 모든 바다에서 난다. 지역마다 그 이름도 각각이다. 동해에서는 곰치, 물곰, 남해에서는 미거지, 물미거지, 서해에서는 잠뱅이, 물잠뱅이 등으로 칭한다. 통영에서는 흔히 '미기' 혹은 ‘메기’, ‘물메기’라 부른다. 물메기는 동중국해에서 여름을 나고 겨울이면 산란을 위해 한국의 연안으로 올라온다. 12월에서 3월까지의 물메기가 맛있는 것은 산란을 위해 살을 찌우기 때문이다. 보통 수명은 1년 남짓이다. 대부분 산란 후 죽는다.

늘그막에 어부생활을 은퇴한 노인은 이제 통발 그물 손질하는 일이 소일거리다. 팔순의 강만식 할아버지. 장갑을 끼어도 손이 시린 12월 중순. 엄동의 한복판에 찬 바닷바람 맞으며 노인은 맨손으로 그물을 깁는다. 장갑을 끼고는 바느질을 할 수 없는 까닭이다. 노인의 손은 마른 가죽처럼 질기고 두텁지만 사람의 손인데 어찌 시리지 않겠는가.
"내가 본토배긴데 할아버지 대부터 기술이 그만 메기잡이 기술이요. 문어잡이 기술이요."
노인의 할아버지가 추도에서 물메기와 문어를 잡았고, 노인의 아버지도 물메기와 문어를 잡았고, 노인도 물메기와 문어를 잡았다.
"추도는 그때도 멘 메기였소."

통영에서도 어떤 사람들은 옛날에는 물메기를 생선취급도 않고 버렸다는 소리들을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노인의 증언처럼 물메기잡이는 옛날부터 이어져 온 통영지방의 전통어업이다. 자산어보에도 물메기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잡히면 버리는 하찮은 물고기가 아니라 술병까지 고치는 명약으로 대접받았다.


"고기 살은 매우 연하다. 뼈도 무르다. 맛은 싱겁고 곧잘 술병을 고친다."( 정약전 ‘자산어보’)

이규경의『오주연문장전산고』에도 "우리나라 호남 부안현(扶安縣) 해중에 수점(水鮎:물메기)이 있는데, 살이 타락죽(찹쌀 우유죽) 같아 양로(養老)에 가장 좋다"고 했다. 옛 기록들이 아니더라도 물메기국은 그야말로 해장에 최고다. 물고기들이 흔하던 시절에는 지금처럼 귀한 대우를 받지는 못했겠지만 물메기 또한 어류의 가계에서 제법 족보 있는 물고기였던 셈이다.

추도에서 태어난 노인은 어린 시절부터 뱃일을 하며 자랐다.
"쪼맨할 때부터 뱃일했어요. 학교도 못댕기고. 살기가 딱해서."
노인이 어릴 때도 추도에서는 물메기가 많이 잡혔다. 문어단지로 문어도 잡았다. 노인은 소년시절 배에서 밥을 짓는 화부로 어부생활을 시작했다. 오랜 세월 남의 배만 탔다.
"넘의 집살이만, 순 넘의 집살이만..,,."
그러다 나중에는 돈을 모아 동네 사람 한명과 동업으로 물메기잡이 배를 운영했다."그 때는 메기 잡아봐야 돈도 안됐어요. 이때까지 살아나는 역사가 이래요. 요샌 세상이 좋아져서 경매도 하고 메기를 잡아도 돈이 되는 기라."

노인은 남들 보다 조금 이른 칠십 살 때 뱃일을 은퇴했다. 고된 뱃일로 얻은 허리 병 때문이었다.
"일을 너무 많이 해갖고. 척추 뼈가 닳아 없어져 버렸어. 수월케 살아온 사람들은 팔십 되도 멀쩡한데."
이제는 더 이상 배를 타고 바다에 나가지 않지만 노인은 여전히 손에서 어구를 놓지 못한다. 조업에서 돌아온 어선들의 대나무 통발을 손질해 주는 것이 일과다.
“내야 뭐 손 운동한다고 꼼지락 꼼지락 하지. 내가 하고 재면 와서 쪼깬식 거들어 주지. 가만히 있으면 지겨버서. 점심 때 되면 집에 가서 요기도 좀 하고. 춥고 손 시리면 집에도 있다오고."
노인은 운동 삼아 쉬엄쉬엄 통발 손질을 하신다고 하지만 그래도 한 겨울 추위 속에서 맨손으로 하는 작업이 어찌 고생스럽지 않겠는가.

새벽에 조업을 나갔던 어선들이 점심 무렵이면 통발을 걷어서 귀항한다. 오늘 추도의 물메기잡이 배들은 모처럼 만선이다. 어선에서 물메기를 내리면 동네 여인네들은 물메기를 손질한다. 물메기의 등을 따서 내장과, 알, 아가미등을 꺼낸다. 아가미와 알은 젓갈을 담고 몸체는 몇 번이고 민물에 깨끗이 씻어낸 뒤 건조장으로 보낸다. 조기나 민어같은 생선들은 손질한 뒤 소금 간을 해서 말리지만 물메기는 북어나 황태처럼 소금을 뿌리지 않고 민물에 씻어서 바로 말린다.
"메기는 바닷물에 씻으면 맛이 없어요. 짭아서 간을 하면 못 먹어요."
동네 사람들은 물메기 손질을 해 준 뒤 품삯을 돈이 아니라 물메기로 받는다.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전통이다. 아마도 물메기가 현금으로 바로 통용 될 수 있기 때문에 이어져온 풍습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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