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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물이 좋아 맛있는 추도 물메기

강제윤 시인 - 통영 추도기행 (2)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3.11.07 09:12
  • 수정 2015.11.11 10: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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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도는 물이 좋기로 유명한 섬이다. 산에 나무도 울창하다. 가래나무가 많았다 해서 가래 추(楸)자를 써 추도다. 추도 희망봉 꼭대기에는 드넓은 고원이 있다. 옛날에는 고구마밭이나 보리밭으로 활용했었지만 지금은 묵정밭이 되었다. 희망봉 고원으로 빗물이 스며들어 9부 능선에서 물이 솟구친다. 용천수다. 산에서 솟아나 흐르는 염기가 전혀 없는 추도의 물은 달디 달다. 그래서 추도 물로 위장병을 고쳤다는 사람들이 드물지 않다. 윗새미, 동서 아래새미 3곳의 우물에서 물이 펑펑 솟아났다. 가뭄이 아무리 심해도 급수선이 들어 온 적이 없다. 물 하나만은 최고의 부자섬이었다. 섬에 물이 풍족한 것은 축복이다. 물이 많으니 '논농사'도 지을 수 있었다. 그래서 추도 사람들은 "보릿고개 시절 쌀밥 먹은 섬사람 추도밖에 없다"고 자부심이 크다.

추도 사람들은 그 좋은 물로 씻어 말리니 추도 메기가 다른 지역 메기보다 더 맛있다고 믿는다. 맛있으니 추도메기는 다른 지역 메기보다 한축(10마리)에 2-3만원을 더 받는다. 생물은 주로 국거리로 사용되고 마른 메기는 찜이나 조림용으로 쓰인다. 세척하느라 쌓아둔 물메기 더미에서 고양이 한 녀석이 물메기 한 마리를 잽싸게 낚아채 간다. 아니다. 자세히 보니 저건 고양이가 아니라 쥐다. 훔쳐 먹은 물메기 덕에 어찌나 살이 쪘는지 쥐가 고양이만큼이나 크다. 덩치 작은 고양이는 감히 덤비지도 못하겠다.

겨울 추도에서는 비탈진 언덕만이 아니라, 길가와 담벼락, 텃밭, 빈집 마당까지도 어디나 물메기 건조장이 된다. 겨울이면 추도 사람들은 빨래보다 물메기를 더 많이 널어 말린다. 어떤 집에는 빨래 줄에도 물메기 몇 마리가 걸려 있다. 빨래 줄에서 옷과 물메기, 문어가 나란히 말라간다. 물메기를 말리는 건조대를 덕장이라 한다. 덕장은 물메기를 걸기 좋게 소나무로 짜서 세운 건조대다. 덕장 다리에는 소나무 가지가 거꾸로 매달려 있다. 뾰족한 소나무 잎으로 고양이나 쥐가 타고 오르는 것을 방지한 것이다. 물메기는 생물로도 출하 하지만 설날 전까지는 대부분 말려서 내보낸다. 품은 많이 들어도 마른 메기가 값이 월등하기 때문이다. 생물이 한 마리 7천 원 정도면 마른 메기는 2만원을 호가 한다.

추도에는 미조와 대항, 샛개, 어둥구리 등 네 개의 마을이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미조, 대항 두 마을에 모여 산다. 통영에서 온 여객선은 대항마을을 들렀다 미조마을을 종점으로 다시 회항한다. 나그네의 추도 걷기는 미조마을에서 시작된다. 먼저 섬의 미조마을 초입 500살 자신 후박나무 어르신과 신목인 400살 자신 잣밤나무 어르신께 인사를 올린다. 나무 어르신들은 추도의 우주목이다. 추도의 온갖 풍상과 사람살이의 역사를 생생히 기억하고 계실 터다. 미조 마을 안길을 가로질러 대항 마을까지 가는 길은 포장도로지만 해안을 싹둑 잘라서 만든 해안 일주로가 아니다. 예부터 이어진 산 고갯길을 그대로 살려 포장만 했으니 자연에 가까운 길이다. 대항까지 3킬로 남짓의 해변 길은 그래서 정겹고 고즈넉하다. 자동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이 길의 주인은 사람이다.


대항마을도 온통 말라가는 물메기 천지다. 당산나무 옆 집 담벼락 아래 양지녘, 할머니 한분이 마른 메기를 분류해서 한축씩 묶고 있다.
"남해 사람이 와서 그래요. 이상하게 추도 메기가 맛있다고."
할머니도 추도 물메기에 대한 자부심이 크다.
"메기 말고 딴 거는 아무 것도 없어요. 해 먹을 게 없어요."

나그네는 대항마을의 폐교 운동장을 어슬렁거리다 마을을 가로질러 다시 해변 길을 걷는다. 미조에서 시작된 해변 길은 대항을 지나 다시 미조까지 자연스럽게 이어져 있으니 그대로 둘레길이다. 개발이란 명목으로 더 확장 시키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 아름다운 해변의 길이야 말로 추도의 진짜 보물이다. 요즘 추도 또한 다른 섬들처럼 관광객 유치를 위한 개발 사업이 진행 중이다. 산에 오르는 탐방로로 만들 계획이다. 섬을 찾는 뭍사람들은 대체로 걷기에 목말라 있다. 그러니 섬에는 아무리 많은 걷기 길이 생겨도 지나치지 않다. 제발 더 이상의 자동차 도로 확장은 없으면 좋겠다.

또 관광객들이 자동차를 가지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제한했으면 싶다. 도로가 확장되고 자동차들이 들어오는 순간 추도는 생명력을 잃게 될 것이다. 성수기의 도로는 상습적으로 주차장이 될 것이고 비수기에는 일 이십분만에 섬을 한 바퀴 휙 돌아본 뒤 떠나버릴 것이다. 그런 섬 개발은 주민들에게 아무런 득이 되지 못한다. 추도는 자동차 없는 섬이 되는 것이 어떨까. 홍콩에 람마섬(Lamma Island)이란 곳이 있다. 자동차 없는 섬이다. 그 덕에 안전하게 걷고 싶은 사람들이 끝도 없이 몰려든다.

람마섬은 홍콩의 다운타운에서 카페리호로 30분 거리다. 추도와 통영과의 거리쯤이다. 트레킹 코스와 해산물 요리로 관광객이 많이 찾는다. 람마섬에는 3층 이상의 건물을 지을 수 없다. 자동차가 다닐 수 있는 도로도 없다. 소형 소방차와 응급차만 다닐 수 있다. 그래서 섬의 교통수단은 도보와 자전거뿐이다. 섬 주민들은 모두 5000여명. 주민들은 대부분 3km의 트레킹 길로 이어진 용슈완과 속쿠완 두 개의 마을에 모여 산다. 관광객들은 하루 정도를 오롯이 걸어야 섬 전체를 둘러볼 수 있다.

섬 북쪽의 큰 마을 용슈완은 한때 플라스틱 공장들이 즐비했지만 이 공장들은 지금 카페와 식당, 갤러리, 수공예품 숍, 환경 친화적인 상품을 판매하는 숍들이 되어 관광객들을 맞이한다. 섬을 찾아와 사는 젊은 예술가들도 점차 많아지고 있다. 훙싱예와 로소싱 해변에서는 수영, 낚시, 산책 등을 즐길 수 있다. 섬 동쪽 속쿠완 마을은 해산물 식당촌이 형성되어 관광객을 맞이한다. 자동차가 없어 안전하게 걸을 수 있다는 것이 이 섬의 가장 큰 장점이다. 추도 같은 섬들이 발전의 모델로 삼을만한 섬이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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