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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뱀 신을 모시는 섬

강제윤 시인 - 보령 장고도, 고대도 기행(1)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4.02.13 10:55
  • 수정 2015.11.10 2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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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때로 어디로 갈 것인가를 망설이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자연에는 정교한 자성(磁性)이 있어서 우리가 부지중에 이를 따르기만 하면 우리를 올바르게 인도해 준다는 것을 나는 믿는다.”(소로우 ‘산보’)

제주 섬을 걷던 내가 불현듯 서해의 섬들로 갈 생각을 한 것은 어떤 이유에서 일까. 나 또한 ‘자연의 정교한 자성’에 이끌린 것일까. 어찌 아니겠는가. 만물에는 서로를 이끄는 힘이 있지 않은가. 나는 다만 더 큰 인력이 작용하는 쪽으로 발길을 돌렸던 것이다. 하지만 어디로 가든 나는 지구라는 둥근 행성 안에서, 혹은 우주라는 원안에서 원운동만을 할 수 있을 뿐, 원 밖으로 벗어날 수 없다. 사람 또한 조롱안의 다람쥐와 다를 바 없는 것이다.

삽시도에서 유숙하고 장고도로 건너왔다. 바로 곁이지만 두 섬이 주는 느낌은 많이 다르다. 더 작은 섬인데도 장고도에는 무언가 풍요로운 기운이 감돈다. 밀물은 해변의 집 앞까지 쳐들어오고, 바다에는 숭어 떼가 지천이다. 어미 숭어들은 유유히 떠다니며 먹이를 탐하고 새끼 숭어들은 멸치 떼처럼 우글거린다. 장고도는 한창 멸치잡이 철이다. 올해는 멸치가 풍년이라 마을의 들판은 온통 멸치 밭이다. 햇빛 아래에서 생을 다한 멸치 떼가 말라갈 때 생이 아득한 사람들은 그늘에 쪼그려 앉아 말린 멸치를 봉지에 주어 담는다. 숭어 떼가 몰려온 것은 건조장에서 버려지는 멸치 부스러기를 얻어먹기 위해서다. 더 쉬운 삶을 찾아 몰려드는 것은 생물의 본성이다.

이 섬에서는 안강망 어선 여섯 척이 멸치를 잡는다. 배가 없는 주민들은 멸치 건조장에서 품을 팔거나 바지락, 굴 등 해산물을 채취해 살아간다. 바지락 보다 값이 더 나가는 홍합은 작은 배라도 있어야 얻을 수 있으니 조각배마저 없는 주민들은 그저 갯벌에 코를 박고 산다. 80여 가구 250여 주민들이 거주하는 마을에는 보건진료소와 해경 초소가 하나씩 있다.

외연도를 비롯한 보령의 여러 섬들처럼 장고도에도 절강 편씨가 많다. 중국의 절강성에서 흘러온 사람들의 후예일까. 외연도나 군산의 어청도에 한나라 때 권력투쟁에서 패배한 전횡 장군 일행이 들어와 살았다는 전설이 있고 여전히 전횡 장군의 사당이 남아 있는 것을 보면 충분히 개연성 있는 이야기다. 이 섬 또한 지난 태풍에 지붕 날아간 집들이 많다. 섬의 초입부터 지붕 공사 소리로 요란하다.


태풍으로 당산 숲의 나무들도 큰 피해를 입었다. 뿌리 뽑힌 나무가 여러 그루고 가지 부러진 나무들은 셀 수도 없다. 지체가 무사한 나무들도 잎들은 다 떨어져 나갔다. 태풍이 오던 날 함석지붕이랑 기왓장들이 날아다녀 주민들은 공포에 떨며 집 박으로 나가지도 못했다. 당산 숲 바로 아랫집 마당의 팽나무 고목도 그 태풍에 잎들이 다 떨어져 나갔다. 태풍이 염분을 듬뿍 뿌리고 지나가자 나무는 서리 맞은 고추 잎처럼 일순간에 잎들을 다 떨구고 말았다. 집 주인 노인은 대전의 한 고등학교 교사직에서 정년퇴직을 하고 8년 전쯤 섬으로 들어와 정착했다. 가족들은 여전히 뭍에 있다.


노인은 태풍이 지나가고 5일쯤 지나자 나무에서 새잎 돋는 광경을 목격했다. 초봄처럼 새싹이 돋고 연초록 새잎이 자랐다. 노인은 나무가 월동할 에너지를 비축하기 위해 새잎을 틔운 것이리라 짐작했다. 잎이 없으면 광합성을 할 수 없으니 나무는 서둘러 새잎을 틔운 것이 아니겠는가. 담장의 장미도 다시 꽃을 피웠다.

울안의 팽나무뿐만 아니라 당산 숲의 나무들도 온통 연초록으로 푸르다. 태풍으로 당산의 나무들이 쓰러졌으나 누구도 손을 대지 못한다. 액운이 생길까봐 두려운 까닭이다. 태풍에 속수무책인 당산일지라도 섬사람들에게는 여전히 신성한 산이었다. 노인은 태풍이 "바다에 잘 갈아 놓은 톱날 같다"고 생각한다. 바다가 아니고서야 그 큰 바람의 칼끝을 그처럼 날카롭게 갈지 못했으리라. 태풍의 칼끝에 베인 섬의 상처가 깊다.

근래까지도 섬에서는 소를 잡아 바칠 정도로 당제를 성대히 치렀다. 마을 전속 무당이나 점쟁이도 있었다. 무당은 신당에 황해도 임장군을 모셨다. 연평도나 황해도만이 아니라 충청도 바다 섬들까지도 조기의 신 임경업 장군의 위력이 뻗쳤던 것이다. 무당집과는 달리 마을의 당에서는 뱀 서낭을 섬겼다. 옛날 장고도 어부가 조업을 나갔다가 한밤중에 바다에서 길을 잃었다. 막막한 암흑의 바다. 그런데 어디서 갑자기 섬광이 번뜩였다.

뱀 두 마리가 바다에서 교미를 하는데 그 몸에서 신령한 빛이 새어나왔다. 그 빛에 의지해 어부는 섬으로 무사히 돌아올 수 있었다. 그 이후 섬에서는 뱀 신을 모셨다. 매년 음력 정월 초 당산에서 뱀 신을 모시는 제례를 올렸다. 이를 진대제라 했다. 그 후 섬 주민들은 뱀을 죽이거나 쫓지 않으며 경외했다. 뱀과 상극인 돼지도 기르지 않았다. 지금도 섬에서는 돼지를 사육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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