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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취재> 약자를 배려하는 어촌 공동체

강제윤 시인 - 보령 고대도 장고도 기행(2)

  • 완도신문 webmaster@wandonews.com
  • 입력 2014.02.20 10:03
  • 수정 2015.11.10 2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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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뿐이랴, 섬이나 해안 지방에서는 헝겊이나 벙거지, 떠밀려온 통나무나 바위 조각 하나도 신이 될 수 있었다. 어디보다 생사가 화급한 곳이 바다다. 목숨을 살리는데 도움을 주고 삶의 희망을 주는 것은 무엇이고 신 아닌 것이 있으랴. 세계 종교가 된 유일신교들은 보이지 않는 신도 철썩같이 믿는데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이 어찌 잘못이며 미신이겠는가. 하지만 섬에서는 이제 무속이나 당제가 사라지고 없다. 전래의 신들은 모두 쫓겨나고 섬은 외래신이 접수했다.

장고도 초등학교 운동장. 오늘은 학교가 텅 비었다. 선생님들과 아이들은 모두 대백제(大百濟)전을 구경하러 부여에 갔다. 이 학교의 나무들도 지난 태풍에 된통 당하고 새잎을 틔웠겠지. 그런데 놀라워라. 새잎 정도가 아니다. 교문 입구의 벚나무 고목들은 꽃이 만개했다. 가을에 벚꽃이라니! 당산 나무들처럼 태풍에 잎 다 떨구고 시들었던 벚나무들이 새잎을 틔우고 끝내 꽃까지 피웠다. 4월에 피었던 벚꽃이 10월에 다시 피었다. 벚꽃에는 벌 나비들이 날아들고 허공에는 꽃잎이 휘날린다. 화단의 단풍나무는 벌겋게 물들어 가는데 벚꽃이라니! 자연의 순리를 거슬러, 비가역적 시간을 가역하고 피어난 잎과 꽃들. 자연의 순리 보다 앞서는 것이 생명의 순리인 것이다. 이제 곧 추위가 닥치리라. 하여 꽃은 피웠으되 저 나무는 끝내 열매 맺지는 못하리라. 그러나 열매 맺지 못한들 어쩌랴. 활짝 꽃피워보고 가는 것만으로도 생은 넘치도록 충만한 것을.

장고도는 해삼의 섬이다. 여름이면 제주에서 해녀들을 초빙해와 해삼을 채취한다. 절반은 해녀들 몫이고 나머지 절반은 주민들에게 분배 된다. 작년에는 해삼에서 나온 소득만 가구당 1천만 원 남짓 됐다. 오래전 주민들이 섬 주변 바다에 해삼 양식장을 만들었던 덕을 보는 것이다. 해삼은 말려서 중국으로 전량 수출 된다. 해삼 양식장뿐만 아니라 바지락 양식장의 수확도 다른 섬들보다 크다. 장고도 주민들은 썰물 때가 되면 갯벌 어느 곳에서든 바지락을 캔다. 하지만 마을에서 종패를 뿌려가며 공동으로 관리 하는 바지락 양식장에서는 정해진 날에만 작업할 수 있다. 가구마다 한 사람씩 작업에 참가한다.

이 양식장 작업이야말로 장고도 주민들이 얼마나 지혜로운 이들인지를 보여주는 표본이다. 인근의 다른 섬들은 일정한 작업량을 정해두고 각자 캔만큼 수익을 올린다. 하루 40킬로 이하 채취가 기준이면 근력이 좋은 사람은 40킬로를 다 캐가지만 힘없는 노인들은 20킬로그램도 채 못 캐갈 수 있다. 하지만 장고도는 철저하게 공동작업 공동 분배다. 한 사람이 70킬로그램을 캐든 20킬로를 캐든 모두 모아서 공평하게 분배한다. 그렇다고 부러 게으름을 부리는 사람은 없다. 힘 있는 젊은 사람들은 더 많은 양을 캘 뿐이고 힘없는 노인들은 적게 캘 뿐이다. 하지만 젊은 사람들도 불만이 없다. 자신도 언젠가는 늙을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참으로 살아있는 마을 공동체의 모범이 아닌가. 게다가 섬에서는 홍합이나 소라도 많이 잡힌다. 논에서는 자급할 정도의 쌀도 생산 된다. 진정 지복의 땅이다.


섬에서 나는 수익이 많으니 자연히 고향을 떠났던 젊은이들도 다시 들어와 산다. 두세 명까지 줄어 폐교 지경까지 갔던 초등학교 분교도 지금은 학생이 20여명으로 늘었다. 이 또한 섬에 큰 복이다. 해안 도로에서 아이들이 자전거를 타고 경주를 한다. 아이들의 자전거가 지나가자 부두에 내려앉아 있던 갈매기들이 일제히 날아올랐다가 이내 다시 내려앉는다. 아이들과 갈매기들 간의 놀이다.

장고도에서 하루 유숙한 뒤 고대도로 건너왔다. 고대도 해안 방파제를 따라 낚시꾼들이 도열해 있다. 밀물을 따라 숭어와 갑오징어, 학꽁치 떼가 몰려들었다. 서해의 섬에서는 마지막 낚시 철이다. 이제 겨울이 오면 수온이 내려가 서해바다의 어류들은 대부분이 따뜻한 남쪽 바다를 찾아 떠난다. 지금 한창 몰려들고 있는 멸치 떼도 머잖아 이 바다를 떠나게 될 것이다. 노인 한분 멸치잡이 안강망 그물을 만들고 계시다. 젊은 사람들은 대부분 태안이나 대천 등 내륙으로 나가 어업에 종사한다. 아이들 교육 때문이다. 그래서 이 섬에는 늙은 어부들만 남았다. 노인은 군대 갔다 온 기간만 빼고 내내 섬에서 어부로 살았다. 예전에는 갯벌에 말뚝을 세우고 그물을 치는 주목망을 많이 했었다. 그때는 고기가 흔했지만 판로가 좋지 않아 제값을 못 받았다. 대하, 독새우(꽃새우), 꽃게, 뒤퍼리 등이 많이 잡혔다. 아귀나 방어 같은 물고기는 팔지 않고 마을 사람들이랑 그냥 나눠 먹었다.

근처의 삽시도나 장고도에는 식량을 자급할 수 있는 논이 있지만 고대도에는 논이 없다. 그래서 주민들은 오로지 바다에만 매달려 살았다. 인근 섬들 중 어업 기술이 가장 발달한 것은 그 때문이다. 노인은 라디오를 틀어놓고 종일 그물을 꿰맨다. 라디오는 노인의 보배다. 심심한데 벗이 되어 주기 때문이 아니다. 딸이 상으로 받아온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 딸애가 보령 종합병원에 취직하고 첫 출근하고 돌아오다가 아파트 경비실 입구에서 돈 봉투를 주었대요. 그걸 경비실에 가져가 주인 찾아줬지요. 시청 미화원 아저씨의 첫 월급이었대요. 그 애길 전해들은 시장이 딸한테 상으로 준 것이지요."
노인은 그 귀하고 자랑스러운 라디오를 벌써 10년도 넘게 듣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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