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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간 하반신 마비 남편과 자식 위해 희생한 사랑

생일면 덕우리 강희순 씨의 삶의 이야기

  • 박남수 기자 wandopia@daum.net
  • 입력 2014.09.16 15:41
  • 수정 2015.11.19 16: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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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로작업 중에 일어난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남편과 자식을 위해 24년 간 헌신한 덕우도 해녀 강희순 씨가 17일 물질을 마치고 마중 나온 남편 박안식 씨와  다정하게 포즈를 취하고 있다.

 어로작업 중에 일어난 불의의 사고로 하반신 마비가 된 남편을 24년 간 보살피며 가장아닌 가장으로 살아온 아내가 있어 훈훈한 미담이 되고 있다. 사연의 주인공은 생일면 덕우도 바다에서 평생을 해녀로 살아온 강희순 씨(55세).

제주도가 고향인 처녀가 덕우도에서 영원히 머물게 된 동기는 이곳 출신 남편 박안식(53세)씨를 만나면서다. 제주도에서 덕우도에 물질 왔다가 광주항쟁때 시민군으로 싸우다 진압군을 피해 고향에 내려와 숨어 살고 있는 남편 박 씨에게 마음을 빼앗겼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목욕하기 위해 지상에 내려왔다가 나무꾼이 숨긴 옷 때문에 하늘로 올라가지 못한 선녀와 나무꾼이야기처럼 남편 박 씨의 집요한 사랑고백에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은 것이다. 남편 박 씨는 "첫 눈에 반했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결혼 후 아들을 낳았고, 한때나마 누구도 부럽지 않은 행복한 삶을 살았다. 그러던 중 완도신문이 창간됐던 1990년도에 이들 부부에게 결코 잊을 수 없는 불행한 사고가 닥친다. 남편 박 씨는 "1990년 7월 1일날이었어요. 아내와 꽃게통발 작업을 하던 중 롤러에 작업복이 끼여 목이 부러지는 등 큰 부상을 입었어요."라고 회고했다.

광주 대학병원으로 후송된 남편은 생사를 알 수 없는 무의식상태로 오랫동안 병원신세를 져야 했다. 1년 6개월 뒤 천만다행스럽게 깨어났지만 하반신 불구가 됐다. 휠체어에 의존해 살아야 하는 남편과 아들을 생각하니 암담했다.

수술비와 치료비도 더 이상 감당할 수 없었다. 부부는 어떤 선택도 할 수 없어 고향 덕우도로 돌아왔다. 그래서 남편이 반신불수의 상태로 혼자서는 일어날 수도, 대소변을 가릴수 없는 형편이어서 뒤치다꺼리를 하며 도와야 했다.

갑자기 가장이 된 강 씨는 자녀 육아 교육과 남편 병수발 등 모든 것을 혼자서 감당해야 했다. 낮에는 바다에 나가 물질을 했고 저녁에 돌아와 남편과 아이를 돌봤다. 인고의 세월이었다.

제보자 이선희 (55세) 씨는 "나 같으면 폴새 도망갔제, 그런 천사가 없어"라고 입에 침이 마르게 강 씨를 칭찬했다.

부인 강 씨의 정성에 감동한 남편 박 씨는 스스로 재활치료를 열심히 했다. 15년이 지나자 몸에서 서서히 작은 변화가 일었다. 스스로 몸을 일으킬 수 있게 됐고, 가끔 목발을 짚게 된 것이다.

남편 박 씨는 "형이 마당에 묶어 놓은 줄을 잡고 아침부터 아내가 바다에서 돌아오는 저녁까지 일어서고 또 넘어지기를 수 없이 반복했으며, 한밤 중에도 운동을 계속한 결과 다리에 근력이 생기고 혼자서 일어설 수 있게 되었다. 그래서 휠체어도 탈 수 있었다."라면서 아내 강 씨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제주도에서 성산포에서 덕우도로 시집 온 억순이 강 씨는 물질로 건진 전복, 꾸죽, 소라, 해삼 등을 팔아 생활한다. 해녀가 잡은 요즘 자연산 전복이 양식전복보다 싸게 팔린다. 더구나 태풍 뒤 물질이 예전 같지 않아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다.

기가 막힌 24년 세월을 용케 잘 견디어 낸 것이다. 이제 아들이 커서 결혼해 딸을 낳아 벌써 다섯 살이 됐다. 부부는 할아버지, 할머니가 되었다. 아내 강 씨가 미역 양식발 '알바'를 나가면, 남편 박 씨의 운동은 계속된다. 인터넷 바둑도 즐기고 있다.

덕우도보건진료소 강광용 소장은 "매일 목욕시키고 식사를 떠먹이는 등 불편한 남편을 위해 24년을 헌신하면서도 불편한 표정 한번 짓지 않는 강희순 씨는 정말로 천사"라고 극찬했다.

덕우도 이장 김문석 씨(44)도 “강희순씨는 항상 이웃에게 베풀기를 좋아하는 착한 분이다. 한번도 힘든 내색 하시는 걸 못봤다”고 덧붙였다.

손바닥만한 평지조차 허락하지 않은 비탈에서 조개껍데기처럼 붙어 옹기종기 살아가는 덕우도 사람들. 낚시로 유명하고 전복으로 더 유명해진 곳. 그러나 이제 덕우도에서 그 무엇보다 귀한 것은 억순이 해녀 강희순 씨의 남편과 가족 사랑이다.

커다란 불행 앞에 결코 좌절하지 않고 남편과 자식을 위해 평생을 희생한 강 씨의 24년 사랑은 요즘 같은 각박한 세상에 참 고마운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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