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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록위마(指鹿爲馬)라도 되면 다행인 것을

박남수/편집국장

  • 박남수 기자 wandopia@daum.net
  • 입력 2014.12.24 04:14
  • 수정 2015.11.04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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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이 연말에 ‘올해의 사자성어’를 발표하는데 2014년 올해를 대표하는 말로 지록위마(指鹿爲馬)를 선정했다. 중국 <사기> ‘진시황본기’에 나오는 표현으로 조고가 황제에게 사슴을 말이라고 고함으로써 진실과 거짓을 제멋대로 조작하고 속였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교수신문이 매년 발표하는 사자성어가 그 시대를 호평한 경우는 거의 없다. 예를 들면, 2001년 김대중 대통령 시절의 사자성어는 오리무중(五里霧中)이었다. 당시 상황이 깊은 안개 속에 들어선 것처럼 길을 찾기 어려웠나 추측해본다. 2004년 노무현 대통령 시절에는 당동벌이(黨同伐異)였던 것으로 안다. 한 무리에 속한 사람들이 다른 무리의 사람은 무조건 배격하는 것이라니 당시의 지식인들은 그때 그 시절을 좋게만 보지는 않았나보다.

우리 완도의 지난 1년을 돌이켜 보자. 아니 지난 10년을 돌아보자. 어떤가, 사슴을 사슴이라고 불러온 세월이었을까. 지난 12년을 대표하는 사자성어를 고르자면 어쩌면 무소불위(無所不爲)가 될지도 모르겠다. 양지와 음지가 분명했다. 이런 시대일수록 출세의 방법은 간단했다. 확실한 줄서기 하나면 만사 오케이다.

그런 무소불위의 시절이 마침내 지나고 봄이 오듯 새로운 시대가 올 것으로 기대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자연의 순리와 역사의 법칙에서 경험하듯이 저절로 오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가열찬 준비없이 얻어지는 것은 없는 법이니까.

지난 가을 날 어느 읍장이 군의원들을 상대로 막말 한 일이 있었다. “너는 뭐냐”고 했다. 고대 그리스 같았으면 매우 철학적 질문이었겠으나 21세기 완도에서는 그저 ‘막말’일 뿐이다. 그런데 그 흔한 막말 사태가 어느 순간 확 바뀌었다. 피해자가 가해자로 둔갑한 것이다. 지록위마의 상황이다.

그런데 지록위마(指鹿爲魔)라면 어떤가. 사슴을 가리켜 악마로 규정하고 마녀사냥에 나선다면 그야말로 끔찍하다. 그런데 지난주 우리 헌법재판소는 정당 하나를 해산시켰다. 사슴을 말로 불러주는 것도 그나마 호사겠다.

정당해산 결정 후 통합진보당 완도지역위원회(준) 위원장과 인터뷰를 할 생각이었다. 그것이 지역 언론의 역할이라 여겼다. 그런데 위원장은 거절했다. 그러면서 해산된 정당의 이름으로 하는 인터뷰조차도 위법이라고 했다. 그야말로 지록위마(指鹿爲魔) 아닌가. 이제와 앞으로 당분간은 서민, 비정규직 근로자, 소외계층의 목소리를 들어줄 정당이 아쉽게도 완도에서는 없을 것 같다.

대학교수들이 추천한 올해의 사자성어 1위 지록위마(指鹿爲馬)에 이어, 2위는 삭족적리(削足適履 발을 깎아 신발에 맞춘다는 뜻으로 합리성을 무시하고 억지로 적용함), 3위는 지통재심(至痛在心 지극한 아픔이 마음에 있는데 시간은 많지 않고 할 일은 많다), 4위는 참불인도(慘不忍睹 세상에 이런 참옥한 일은 없다)이다. 어떤가. 뒤로 갈수록 더욱 들어맞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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