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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톺아보기) 세월호 1년, 우리 섬 대합실 풍경

박남수(편집국장)

  • 박남수 기자 wandopia@daum.net
  • 입력 2015.04.16 01:18
  • 수정 2015.11.0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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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에서 살며 이웃 섬으로 출퇴근하는 내가 이번 4월 초에 겪은 일이다. 퇴근 후 귀가 길에 막배 승선권을 사기 위해 들렀던 작은 항 대합실 매표원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하루 전날 나이 지긋한 노인이 대합실로 들어와 표를 달라고 하더란다. 여객선 직원인 그 매표원이 노인에게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자, “당신이 경찰이라도 그렇게는 못해. 당신 먼저 신분증 꺼내!”라며 거부하더란다. 그 매표원이 “신분증 없으면 대합실에 마련된 민원발급기에서 증명서를 발급받으라” 재차 요구하자 결국 싸움으로 번졌다. 둘이 서로 싸우는 뒤로 배를 타려는 사람들이 손에 신분증을 들고 길게 줄지어 서 있었다.

여객선 대합실에서 벌어지는 이용자들과 매표원의 일상이다. 세월호 사고 이후 생긴 진풍경이다.

이 얘기를 들려주던 그 매표원은 “선박과 운항의 안전 기준을 강화하는 것은 백번, 천번 마땅한 일이겠지만 지금은 이용자들 신분을 확인하는 절차만 강화됐다. 이건 사고 예방과 아무 상관없이 오로지 사고 났을 때 사망자 신원과 숫자 파악에만 도움이 될 뿐”이라고 했다.

한편으로는 “서울 사람들과 달리 섬사람들의 이동 경로는 전산기록에 그대로 남을 것”이라는 불순한 생각까지 했다. 섬에 많이 거주하는 이주노동자들이나 가끔 외국인 여행자들의 경우 발권하는 데 시간이 더 걸리고 이들의 거주이전과 이동권은 상당히 제약을 받는다.

완도와 비슷한 섬인 서울 여의도에 들고나는 하루 유동인구 60만명에게 다리 진입 전에 차에서 내려 신분증을 제시하고 표를 구입하게 한 뒤 다리 진입 때 다시 차에서 내려 표와 신분증을 제시하게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하는 발칙한 상상을 해 본다. 퇴근 때도 마찬가지다. 여의도에 계시는 금뱃지 단 국회의원 300명도 예외없이 하루 두 번씩 총 4회 신분증을 제시하게 하는 거다. 아마도 난리가 날 거다.

그런데 완도 오일장에 장보러 가는 칠순 할머니가 버스에서 내려 주민등록증을 들고 줄서서 표를 산 뒤에 배를 타면서 신분증을 다시 꺼내 제시하는 불편은 그저 당연지사다.

평일도에 사는 어떤 사람이 고금도를 거쳐 보길도를 들렀다가 다시 집으로 돌아오려면 모두 열두 번이나 호주머니에서 신분증을 꺼내 제시해야 한다. 세월호 사고 이후 섬 사람들의 풍경이다. 사고 이후 다시 벚꽃 흩날리지만 아직 돌아오지 못한 아홉 영혼을 기리며 비행기 탄다는 기분으로 불편을 감내해야 하나.

다시 슬픈 봄은 왔지만 섬은 여러 모로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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