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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녀의 한이 날카로운 가시로 변해

완도의 야생화: 탱자나무/운향과

  • 박남수 기자 wandopia@daum.net
  • 입력 2015.04.16 01:30
  • 수정 2015.11.04 1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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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식 다섯을 데리고 사는 과부가 병이 들고 말았다. 어떤 노파가 찾아와 부잣집에 열다섯살 큰딸을 소실로 보내면 논 닷마지기를 주겠다는 것이다. 처녀는 꼬박 하루를 울더니 그리 하겠다고 했다. 그런데 노파한테 내세운 조건은 논대신 쌀을 달라는 것이었다. 쌀을 받은 날 처녀는 집을 떠났다. 늙은 부자와 첫날밤을 지내고 다음날 저녁 처녀는 감나무에 목을 매고 말았다.

늙은 부자는 속았다고 펄펄 뛰며 쌀가마를 찾아오라고 불호령을 쳤으나 처녀의 식구들은 간 곳이 없었다. 부자는 더욱 화가 나서 처녀의 시체를 묻지 말고 산골짜기에 버리라고 했다. 그날 밤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치며 시체를 업고 가는 그림자가 있었다. 처녀와 남몰래 사랑을 나눠왔던 사내였다. 사내는 남들의 눈에 띄지 않도록 평장을 했다.

이듬해 봄, 그 자리에서 연초록 싹이 터 올랐다. 그 싹은 무장 자라면서 가시를 달기 시작했다. 사내는 그것이 애인의 한스런 혼백이 가시 돋친 나무로 변한 것을 알았다.

탱자 꽃이 필 때면 생각나는 조정래 소설 ‘태백산맥’에 나오는 탱자 이야기다.

탱자 꽃잎이 두껍고 흰데 다섯 개 간격이 서로 멀다. 꽃과 순이 같이 보인다. 꽃 주변으로 검푸른 묵은 가시가 돋았는데 끝은 노랗다. 죽은 처녀의 독기 같다. 그 가시에 찔려봐야 그 아린 맛을 안다.

요즘 우리 정치권이 이야기에 나오는 늙은 부자 같아서 욕심이 끝도 없다.  독한 탱자 가시에 찔려봐야 정신을 차릴까. /박남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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