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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보고’ 아니라 ‘청해’다

장동일 목사(완도성광교회 협동목사/세계인학교 대표)

  • 장동일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5.07.22 20:02
  • 수정 2015.11.04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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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동일 (완도성광교회 협동목사/세계인학교 대표)

828년 장보고가 완도로 돌아왔다. 그러나 옛날의 궁복이 아니었다. 국제적인 해상무역의 비전으로 꽉 찬 사람이었다. 당나라 무령군 소장직도, 신라소 대사직도 그의 비전을 가릴 수 없었다. 그는 인생의 마지막이 될지도 모를 땅 완도를 그의 궁극적인 비전을 이룰 땅으로 본 것이다. 당시 황해와 남해를 휘젓는 해적은 그가 바라던 세계적인 교역 도시를 만드는데 가장 큰 걸림돌이었다. 해적을 소탕하고 일본, 당나라를 잇는 해상 무역로를 만드는데 신라의 완도야말로 가장 적합한 곳이었다.

우선 해적을 소탕하려면 군사와 기지가 필요했다. 그는 당시 흥덕왕에게 1만 명의 군사를 요청했고, 군사기지로 완도의 섬들 중 장도를 선택했다. 그리고 그곳에 그의 비전을 담은 청해진을 건설했다. 사실 청해진을 만들기 이전에 그는 산둥반도 법화원을 중심으로 한 세계적인 교역도시를 꿈꾸었었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 비전은 그가 원하는 만큼 성취되지 않았다. 그의 강점 중 하나는 한 길이 막히면 또 다른 길을 여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 완도에 청해진을 탄생시킨 씨앗이었다.

“이곳은 이제부터 맑을 청(淸)자와 바다 해(海)자를 써서 ‘청해’라 부르겠다. 바다를 푸르고 깨끗하게 하겠다는 의미다. 깨끗해진 바다에서 우리 신라인들이 더욱 교역에 힘쓸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청해진이 설치되자 말 그대로 해적 없는 ‘청해’가 되었다고 한다(장보고, 바다 실크로드에서 활약하다, 조혜진). 이것이 장보고가 가진 ‘청해’의 비전이다. ‘청해’는 단지 ‘맑은 바다’가 아니다. 그 때 바다는 지금보다 더 깨끗했을 것이다. 해적이 없는 바다, 이것이 청해요, 오늘 우리가 배우고 이어가야 할 비전이다. 지금은 장보고 시대와는 다르게 청해를 만들어야 할 사명이 있다. 지금 서해 바다는 중국 어선들과의 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고, 우리끼리도 불법 조업으로 고통 중에 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바다 쓰레기, 온난화가 가져온 바다 생태계의 파괴, 불법 포획 등 인간의 탐욕이 빚어낸 쓰레기들이 곳곳에 넘치고 있다. 지금이야말로 청해를 만들기 위해 세계적으로 협력해야 할 상황이다.

8월 11일부터 13일까지 청산도에서 ‘세계인 청해 캠프’가 열린다. 120여명의 어린이, 청소년, 교사들이 장보고가 새겨준 ‘청해’의 비전을 오감으로 체험하고, 오감으로 표현하는 시간을 갖는다. 이번 캠프를 준비하며 장보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호칭을 생각해 보았다. 해상과 육상을 자유롭게 넘나든 세계인, 이것이 장보고에게 가장 어울리는 호칭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장보고는 최초의 세계인이라 불러도 손색이 없는 사람이다.

완도는 한반도의 ‘끄트머리’에 있다. ‘끄트머리’는 ‘끝’과 ‘머리’가 만나 이루어진 단어다. 끝이 곧 머리이자 시작이라는 것이다. 장보고는 끄트머리에서 세계인의 비전을 보고, 당나라를 거쳐 다시 끄트머리로 돌아와 짧지만 오늘까지 영향을 미치는 ‘청해’의 비전을 새겼다.

세계인이란 국적, 인종, 신분, 지역에 매이지 않고 머물고 있는 곳에서 세계시민으로 살아가는 사람이다. 또한 그 곳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나의 문제로 여기고 해결하는데 헌신하는 사람이다. 장보고는 가는 곳마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참여했고 이것이 그를 탁월한 세계인으로 만들었다.

851년 2월, 장보고의 죽음으로 ‘바다를 푸르고 깨끗하게 만들겠다’는 ‘청해’의 비전이 사라졌는가? 그렇지 않다. ‘청해’의 비전은 완도를 비롯해 바다를 사랑하는 수많은 익명의 세계인에 의해 오늘도 실현되고 있다. 사람은 사라져도 사라지지 않는 비전, 이것이 진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