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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작은 도서관

최인자(신지면 월부리, 신지동 학교마을도서관 개관 기념 글쓰기 대회 장원)

  • 최인자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5.07.23 15:04
  • 수정 2015.12.09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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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라 그런지, 후덥지근한 밖의 날씨가, 사람들의 기운을 야금야금 먹어 치우는 것 같아,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괜한 사명감에 얼마 전에 구입해 몇 장 읽다만 책을 한 장, 두 장, 세 장... 어느새 시선은 다른 곳을 향하고 있다.

가만히 손바닥을 펴고 여기저기를 꼼꼼하게 훑어본다. 삶의 때가 묻은 손바닥 안은 일하다 다쳐 아문 작은 상처들, 굳은살은 계절을 타는 듯 여기저기 벗겨지고, 왠지 손금마저도 나이를 먹어가는 듯 거미줄처럼 얽히고 설켜서 주름투성이다. 내가 손끝에 종이의 감촉을 느끼며 책장을 넘긴 게 언제인지 기억조차 가물거린다. 흔히 말하는 디지털시대에 뒤떨어지지 않으려는 듯, 아침에 눈을 뜨면 눈곱이 떨어지기도 전에 누구라 할 것 없이 컴퓨터 전원 스위치를 누르고, 그 안에 뭐가 있는지, 간밤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빛의 속도로 대충 훑어보고, 세상을 다 읽고 알아버린 듯 어제와 같은 일상을 오늘도 무심하게 이어가고 있다.

옛말에 “눈이 게으르다” 했는가? 새로운 해를 시작할 때면, 여러 가지 새로운 목표를 세우고 어느 즈음엔 이루게 될 상상을 하면서... 힘차게 출발하지만, 조금씩 무너지고 있을 때면 책읽기 계획도 단 몇 페이지를 넘기다 말고 덮어져 있음을 감지할 수 있다. 모든 계획이 그랬겠지만, 까마득한 책 두께에 지레 겁을 먹은 것이다. 그러다가 가을이면 온갖 매체나 인터넷에서 구호를 외치듯 독서를 강조하는 방송들이 흘러나오면, 뭔가에 홀린 듯 먼지 쌓인 책을 다시 들어보지만 그것도 잠시! 항상 그 자리를 맴돌고 만다. 아이들에겐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너무 빠져든다” 큰 소리 치면서 나 자신도 그곳에 빠져있기는 마찬가지다. 어쩌면 더 허우적대며 어른의 특권을 내세워 큰 소리만 치고 있는 줄도 모르겠다. 책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정작 점점 멀어지는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는 나를 돌이켜 보면 한없이 작아지고 있는 듯하다.

작은 시골 마을인 이곳에 순수함으로 내일을 키워가는 아이들이 뛰어 노는 작은 학교에 마을도서관이 개관한다고 한다. 나의 모교이기도 한 이 작은 초등학교는 예전엔 콩나물시루를 갖다놓은 듯 운동장을 학생으로 빼곡이 채우며 나름의 위용을 과시했지만, 이젠 화려했던 영화를 뒤로한 채 저만치 역사 속으로 사라져 가고 있는 듯 위태해 보이기도 한다. 그렇지만 작은 불씨가 큰 불이 되듯이 나를 비롯한, 어쩌면 책장을 넘기기엔 삶의 굳은살이 너무 깊이 박힌 우리네 사람들이 도서관에 쌓인 책장에 조금씩 묻혀 벗겨낸다면, 다시금 예전의 아이들이 아닌 아직 꿈을 잃지 않은, 훌쩍 성숙해 버린 아이들의 콩 시루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쉬운 발걸음이 안 되겠지만, 스스로가 아닌 타인의 손에 이끌려 책을 만지게 되더라도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아날로그적인 감성과 비워져 있던 마음 속 책장을 하나하나 채워주는 그런 의미를 가진 작은 도서관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