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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법과 원칙 그리고 민주공화국

정병호(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정병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5.07.30 00:25
  • 수정 2015.11.04 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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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호(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법과 원칙, 그리고 정의를 지키고 싶었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유승민 의원이 원내대표직을 사퇴하면서 남긴 말이다. 그가 그런 엄청난 무게를 지닌 가치를 말할 자격이 있는지 논란이 있을 수 있다. 또 그가 약속한 대로 그 가치를 버리지 않고 끝까지 간직할지도 알 수 없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폭발적인 관심과 응원 뒤에는 무엇인가가 있다. 그만큼 이 가치에 대한 갈증이 크다는 것을 방증한다. 정의는 무너진 지 오래고, 법은 힘 없고 배경 없는 사람을 지켜주지 못하니, ‘민주공화국’은 말뿐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는 얘기다. 사회 지도층, 특히 정치인에게서 원칙을 보지 못했다는 얘기다. 민주공화국이라면서도 눈앞의 이익에 눈이 어두워 정의롭지 못한 힘에 쉽게 굴종하는 모습을 너무 자주 봐왔다는 것이다. 법과 원칙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힘이 지배하는 사회라고 느끼는 것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당·정이 앞장서 재벌 총수 사면의 군불을 때기 바쁘다.

유승민 사태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치는 마키아벨리의 힘보다 공맹(孔孟)의 명분을 지향해야 함을 일깨운다. 민주공화국은 힘이 아니라 법과 정의에 의해 지탱된다. 힘이 정의가 아니라 정의가 힘이 돼야 한다. 맥락으로 볼 때 유 의원이 말한 민주공화국의 방점은 공화국에 있다. 공화국은 영어로 ‘republic’이라고 한다. 그런데 그 뿌리는 로마의 ‘res publica’다. 직역하면 공물(公物)이다. 나라가 왕 한 사람의 것이 아니라 국민 모두의 것이라는 뜻이다. 민주주의, 법치주의를 잘 실천하는 나라여도 왕이 있으면 공화국이라고 하지 않는 이유다.

로마는 왕을 몰아내고 공화국을 세워 지중해를 제패했다. 공화국은 키케로, 카토가 목숨을 걸고 지키고자 한 가치였다. 로마의 전주정기(專主政期)에도 목숨을 초개처럼 버리고 정의를 지킨 법률가가 있었다. 공동 황제 카라칼라가 황제 자리를 독점하기 위해 공동 지배자인 아우 게타를 죽인 후 자신의 최측근이며 당대 최고의 법률가 파피니아누스에게 동생의 살해를 정당화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 ‘동생을 살해하는 것보다 그것을 정당화하는 것이 더 어렵다’면서 단호히 거절했고, 결국 독재자에 의해 살해됐다.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법과 정의가 제대로 세워지지 않은 큰 책임이 법률가들에게 있다. 잘나가는 법률가들이 앞장서 권력에 굴복했기 때문이다. ‘성공한 쿠데타는 처벌할 수 없다’는 이유로 신군부 쿠데타 세력을 불기소한 검사가 입법부에 입성해 승승장구하고 있다. 권력의 눈치를 보고 곁불을 쬔 판·검사들이 사법기관의 최고위직에 오를 수 있다.

세월호 사건, 메르스 사태 등으로 절망이 일상화되는 시대를 살아가면서 정의, 법과 원칙 그리고 민주공화국을 지켜낸 법조삼성(法曹三聖)의 이름을 되새긴다. 살벌한 일제치하에서 독립운동가들을 적극 변호하고, 해방 후에는 이승만 독재권력에 분연히 맞선 초대 대법원장 김병로 선생. 이승만의 갖은 압력에도 굴하지 않고 상공부 장관을 사기 및 수뢰혐의로 기소하고 깨끗하게 옷을 벗은 최대교 선생. 마지막으로 판관의 공정심을 잃지 않기 위해 평생을 청빈하게 살고 사형수들의 아버지라 불린 사도법관 김홍섭 선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