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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도회 회원들 완도신문 창간에 큰 동력"

창간 주역에게 듣는다: 서정창 전 의원 인터뷰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5.08.18 22:00
  • 수정 2015.11.04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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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정창 전 도의원(62세) 현 한샘싱크 대표, 전남도의회 의원(2선), 완도군청년회장, 구도회장 역임

완도신문 창간 때를 회고하신다면?
당시 지역신문이 전혀 없고 지방지와 중앙지만 있던 시절에 지금 고인이 된 이경국 전 대표가 지역 신문의 필요성을 역설했고 대다수 군민들이 지역의 오밀조밀한 삶의 얘기들을 담아내는 수단으로 지역신문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 지역신문이 지역 사회에 활력을 이끌어주고 지역민들의 융화 단결과 의식고취에 보탬이 될 거라 생각했다.

창간 당시 어떤 사회 활동을 했는가?
청년회와 구도회 활동을 함께 했다. 지역 신문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하는 역할을 할 거라 믿고 청년들이 적극 참여했으며 모금 운동도 하고 홍보도 했다.

군민들의 반응은 어땠으며 누가 주도적으로 참여했는가?
완도는 다른 지역과 교통이 달랐다. 도서민의 뜻을 하나로 합일하기가 어려웠다. 그런 터에 창간한 지역신문에 대한 호응은 뜨거웠다. 구도회 멤버들이 알게 모르게 후원하고 참여했다. 내가 알기로 모든 회원들이 참여한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게 창간된 완도신문에 대해 무엇을 바랐는가?
오랜 철권정치 상황에서 자유로운 언로는 사회적 욕구였고 지역민들의 삶의 모습을 표현해줄 매체가 필요했다. 그런데 당시엔 매체가 많지 않았다. 누구나 자연스럽게 완도신문에 그런 역할을 기대한 것 같다.

창간 초기에 참여자들의 뜻이 신문에 잘 반영됐는가?
잘 되든 안 되는 재미가 있었다. 완도에도 신문이 있다는, 지역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일반 군민들의 반응은?
지역신문이 드물 때 희소성 때문인지 군민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특히 부산, 서울 등 출향인들이 완도 소식을 알 수 있어 고향에 대한 애정이 더욱 돈독해지는 계기가 됐다.

요즘 청년회는 어떤가?
완도신문 창간 다음해인 91년에 청년회장을 했다. 요즘은 단체가 우후죽순처럼 많아 사회적 관심이 덜하다. 당시에는 내가 내것 내놓고 하는 것을 봉사라 생각했는데 요즘은 많이 달라진 것 같다. 군민들이 모르는 것 같지만 다 알 거다.

당시 청년들은 효도관광, 경로잔치를 하면 천만원씩 들어가는 비용을 회원들이 자비로 충당했다. 나중에 삼성복지재단에서 효도 진작하는 단체로 구도회를 찾아 상금으로 2000만원을 주기도 했다. 그만큼 청년단체의 영향력도 컸다.

요즘 신문은 어떤가?
순수했던 초기 생각과 많이 다른 것 같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리고 신문들이 많아지면서 독자들도 서로 이해 상충이 생겼다. 그럴수록 신문은 독자들의 까다로운 입맛을 맞출 필요도 있다. 분발해야 한다.

앞으로 완도신문의 역할은?
지역 사회에 깊게 뿌리 내리려면 부단한 자기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같은 광고라도 광고주의 욕구를 맞추려는 노력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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