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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신문 지령 1000호를 맞으며

배철지(독자권익워원회 위원장, 시인)

  • 배철지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5.08.18 23:08
  • 수정 2015.11.04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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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철지(독자권익워원회 위원장, 시인)

이 글이 실릴 2015년 8월 21일자 완도신문의 지령은 천호가 된다. 창간호가 1990년 9월 8일에 나왔으니 지금까지 햇수로 따져도 근 25년이 지났다. 이는 어린 아이가 한 몫을 할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할 수 있을 만큼의 기간이기도 하고, 지금과 같은 형태의 지방자치가 시작되어 진행되어온 시간의 궤와 비슷하기도 하다.

처음 군민 주주 형식으로 모금을 하여 부족하나마 그 자금을 가지고 발행하기 시작한 이 신문의 역사는 이 나라의 순수한 지역 언론의 시발점이었으며 그 때부터 여태껏 발행해오고 있는 ‘홍성신문’과 ‘해남신문’과도 어깨를 나란히 한다. 처음 발행해서 십년이 지나면 생명력이 길다고 말할 수 있고, 여러 사정을 극복하고도 이십년이 지나도록 발행하고 있다면 척박하기 그지없는 이 나라 지역 언론의 역사에 이름을 올려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십오년을 넘어서 발행해 왔다면 이미 완도신문이 가는 길은 지역 언론의 역사를 새로 쓰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그런 점에서 경의를 표하며 그 수고로움에 박수를 보낸다.

하지만 여기서 풀어야할 숙제가 있다. 이 신문의 태생이 군민들의 기부로 이루어졌고 그 기부금을 군민주로 전환해준다는 최초의 약속이 아직도 이루어지지 못한 점이다. 하지만 발행인이 바뀌고 세월이 흘렀으니 ‘나 몰라라’ 한들 어느 누가 ‘죽일 놈 잡듯 할까’만 대표는 완도신문이라는 이름을 걸고 발행하는 한 그 약속을 잊지 않을 것이며 해결하기 위해서 지속적인 노력을 하는 중이라는 말에서 역사가 이어질 것이라는 희망을 본다.

아울러 앞으로 가야할 길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몇 마디 하자면 그 첫째로는 ‘정론직필’이라는 말에 부끄럽지는 않았는지 되돌아 봐야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은 언론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숙명 같은 것이기에 더 말할 나위가 없다. 다음으로는 소통의 문제이다. 이미 시도하고 있는 듯 보이지만 사회적 약자들의 문제를 기사화하고 ‘그냥 끝’인 그런 상태가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소통이 더 필요해 보이고, 독자들과도 단지 신문을 보는 사람들에서 함께 신문을 만들어 가는 사람들로 자리매김한 소통이 필요해 보인다. 한 가지만 더한다면 25년의 역사에 비해서 신문사가 지니고 있는 서사적, 인문학적, 문화적인 자료가 턱없이 부족해 보이니 이를 확충하려 애를 써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아직도 넘어야할 산은 높고도 험하고, 지나가야 할 들판은 넓고도 아득하다.

그렇지만 이제 나이로 보아서 이 신문은 청년이 되었고 젊다는 것은 가능성이 무궁하다는 것이니 앞날을 기대해도 좋아 보인다. 물론 이런 일들이 한정된 인력과 부족한 자본 아래서 말처럼 하루 아침에 이루어질까만 노력조차 하지 않고 훗날 지령 1500호를 맞는다면 이게 오히려 더 부끄러운 것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