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완도신문, 완도군과 소송 수난사

광고 중단, 무차별 소송으로 언론 탄압

  • 김영란 기자 gjinews0526@hanmail.net
  • 입력 2015.08.20 10:28
  • 수정 2015.11.20 15:22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미디어오늘 컨퍼런스] 혁신과 대안, 저널리즘의 미래.
박정원 프레스바이플 편집위원

 

지방자치단체로부터 수 백건의 고소고발을 당하고도 살아남을 수 있는 군소 언론이 과연 존재할까? 거론하기도 부끄러운 일이지만 실제로 7년여에 걸쳐 153건이나 고소고발 당하고도 견딘 언론이 우리나라에 있다. 바로 <완도신문>이다.

타블로이드판을 주간으로 발행하는 <완도신문>은 지난 9월말 창간 22돌을 맞았다. 신문발전기금까지 압류하는 치졸한 단체장 처사에 맞서면서도 현재까지 신문 발행은 물론 인터넷 홈페이지(http://www.wandonews.com)까지 개설해 활발한 언론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신뢰도 60% 이상을 점하고 있다는 <완도신문>의 22년 세월은 어쩌면 군사독재 시절보다 어려웠을지도 모른다. 지역에서 자치단체장과 지역구 국회의원을 제대로 비판하면서 언론사를 운영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김주언 전 한국기자협회장이 지난 9월28일자<완도신문>에 실은 창간 기념 칼럼을 보면 알 수 있다. 칼럼에는 “지방자치단체장들이 명예훼손죄의 남용으로 자신의 비리를 폭로한 풀뿌리 신문사들을 탄압하고 있다”라면서 지난 10여년 동안 지방자치단체의 각종 정책을 감시하며 지역주민의 파수꾼 역할을 해온 완도신문이 겪었던 과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고 평했다. 

또한 완도군은 2007년 이후 지역 주민의 입장에서 완도군의 정책 집행을 감시하여 비판적 보도를 해왔던 <완도신문>에 광고압력을 가했다. 주민의 혈세로 집행되는 홍보비를 우호적인 신문사에만 광고를 싣고 군에 비판적이라는 이유만으로 비판적 신문사에는 광고를 게재하지 않는 이유를 주민에게 확실하게 알려야 한다면서 이는 “폭력”이라고 단언하고 있다.

지난 7년여에 걸쳐 153건의 고소고발을 당하고도 변변하게 변호사도 선임하지 못한 상태에서 잘 견디어낸 상황도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지만, 과연 이렇게 많은 소송을 제기한 완도군이 지출한 비용과 행정력 낭비는 과연 얼마일지에 대한 생각을 떨치기가 어렵다.

한편, 완도군은 군수 부인이 검찰로부터 기능직 공무원 특채와 관련하여 기소돼 1심 판결을 앞둔 시점인 지난해 말과 올해 초에 잠시 완도신문과 관계개선을 명분으로 2건의 광고를 집행했다가, <완도신문>이 군수 부인이 실형 8개월에 추징금 1천만원의 판결을 받은 사실 결과를 보도하자 또다시 광고를 주지 않고 있다고 한다.

해당 사건은 1심에서 징역 8개월과 추징금 1천만원이 선고되어 현재 광주지방법원에서 항소심이 진행되고 있다. 기소 이유는 지난 2002년부터 민선 3기 군수로 당선돼 3선에 성공한 김종식 군수의 부인이 지난해 1천만원을 받고 공무원 A씨를 특채될 수 있도록 해주었다는 내용인데, <완도신문> 보도에 따르면 항소심 법정에서도 웃지 못할 일이 벌어진 듯하다.

군수의 부인이 돈을 받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다며 특채된 A씨의 형을 증인으로 신청했고, 그는 법정에서 "군수 부인이 돈을 받고 공무원 A 모씨가 특채된 것이 아니라 형인 자신에 의해 특채됐다."라면서 "면접에서 만점을 준 면접관들에게 자신이 특채를 부탁했다"라는 새로운 증언을 한 것이다. 한마디로 군수 부인과 관계가 없다는 뜻이다.

하지만, 재판부는 "면접관에게 면접 점수를 잘 부탁한 것은 정상적인 행동이 아니다”라고 일축하면서, 오히려 "당시 3명의 면접관은 완도군수가 면접시험 당일에 통보했는데 B씨가 어떻게 면접관을 미리 알고 부탁했는지 이해하기 어렵다”라고 덧붙였다고 한다.

이에 따르면 군수가 직접 자신이 심중에 둔 면접관을 해당 면접관들에게 통보도 하기 전에 A씨의 형인 증인에게 미리 알려주었다는 논리가 성립된다. 그렇다면 검찰로서는 군수가 직접 관련되었다는 증언을 법정에서 직접 접한 것이므로 인지수사에 나서야 할 의무를 지게 되었다 할 수도 있다. 앞으로 검찰이 이 사건에 대해 어떤 행동에 나설지 궁금해진다.

<완도신문>의 김정호 편집국장을 만난 것은 추석날 저녁이었다. 김 편집국장은 <완도신문>의 창간 멤버로서 이후 국내 최초의 국회의원 모니터링 전문매체인 <여의도통신>에서 활동하다 7년 전에 다시 합류해 <완도신문>의 실질적 운영까지 책임지고 있다고 한다.

외모만으로도 날카로운 기자임을 충분히 알 것 같은 김 국장은 창간 22주년 기념호를 선물로 주면서 "완도에서 완도신문은 절대로 공짜로 주는 법이 없다"라고 굳이 강조한다. 내심 이걸 진짜 공짜로 받아도 되느냐는 망설임이 들 정도로 그의 신문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했다. 절대 땅에 그냥 버려지지 않도록 철저하게 유가지를 고수한다는 <완도신문>이 지역내에서 군수를 비판하고, 그로 말미암아 군정의 홍보 광고조차 받지 못하는 상황에서 살아온 세월이 궁금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추석 명절인데도 어느덧 자정이 가까울 때까지 대화는 끝날 줄을 몰랐다.

저녁 거른 것을 숨기면서까지 언론의 중요성과 언론이 자본과 권력으로부터 독립하는 방안 등을 이야기하다보니 늦어졌으나, 언제 들어오느냐는 가족의 전화를 몇번이나 받으면서도 대화를 끊지 못할 만큼 김 국장의 언론에 대한 열정은 뜨거웠다.

사무실 한편에 지난 기사들을 엮어 출판한 책이 눈에 띄었다. 지난 22년간 기사들을 신문사조차 모두 갖고 있지 못한 상황이었음에도 지역의 오랜 독자들이 지난 신문들을 제공해 거의 모든 기사를 수록할 수 있었다고 했다. 지금까지 <완도신문>이 생존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오직 주민의 편에 서서 정론을 펼쳐온 것에 대한 군민들의 신뢰와 성원 덕분이라면서, 언론의 경제적 독립 방안 등에 대해 각 지역의 언론들이 협력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대화를 마치면서 김정호 국장은 팔순의 완도 출신 인사가 보내온 붓글씨를 창간호 1면에 실은 이유를 설명했다. “청해정론(淸海正論)이라는 휘호인데, 이미 건강이 여의치 않아 제대로 글을 쓰기도 어려운 몸 상태임에도 창간을 기념하기 위해 보내온 글에는 앞으로도 변치 말라는 충고가 담겨 있어, 그 어떤 명필의 글보다 값지다 생각했다고 한다.

청해정론(淸海正論)!
장보고의 기상을 간직한 진정한 완도인, 김정호 편집국장이 이끄는 <완도신문>의 지난 22년 세월과 앞으로의 각오는 우리 민주주의와 정론의 길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큰 사표(師表)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기사는 2012년 10월 4일 미디어오늘에 보도한 내용으로 당시 상황을 기록한 것입니다.

저작권자 © 완도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