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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헌, 큰 의미로 앉은 작은 갤러리

지역 여성들의 문화 고픔·갈증 해소 톡톡!

  • 김영란 기자 gjinews0526@hanmail.net
  • 입력 2015.08.27 10:42
  • 수정 2015.11.04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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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헌(禮軒), 예술의 격이 있는 집을 뜻한다는 김진자 화백의 아호다. 목하 정지원 선생이 지어준 것이다. 예헌 갤러리(이하 예헌) 김 화백은 목하 정지원 선생에게 서예를, 노전 묵창선 화백에게 동양화를 사사 받았다.

일반 주부로 지내면서 취미 생활로 시작한 서예를 10여 년을 하다 보니 그림에 욕심이 생겼고 풍속화에 관심이 많던 그는 노전 묵창선 화백을 만나 본격 동양화를 접했다. 그래서 일까 김 화백의 작품에는 대부분 글이 담겼다.

기자가 찾은 지난 24일 월요일은 태풍 고니의 영향으로 비바람이 꽤 불었지만 초등학생과 할아버지가 지도를 받고 있었다. 김 화백의 계획은 당초엔 좀 달랐단다. 그냥 단순 그만의 공간을 가지고 싶었고,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는 정도라고 해야 할까! 그는 그렇게 소박했다. 그렇게 갤러리는 동양화와 서각, 칠보와의 만남을 시작으로 완도 속에 자리하게 됐다.

지난해 3월 예헌 갤러리의 등장은 지역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냥 동경하는 문화의 일부가 우리 가까이 자리한 것만으로 이 분야에 관심이 있는 회원들은 감동이었다고 한다. 해남·강진 등 인근 시군도 작품 활동을 하는 작가들이 많지만 그들의 작품을 항상 감상하고 공유할 수 있는 상시 공간은 없다. 억척스런 바닷가 마을에 섬세한 동양화가 전시돼 있는, 또한 배울 수 있는 예헌은 이렇게 주민들의 문화에 대한 갈증을 조금은 해결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소신껏 하나씩 배우며 작품 활동을 하는 지역민들의 경우 예헌이야 말로 작은 돌파구를 만들고 또 다른 창작활동의 계기를 만들어 주고 있는 터가 되고 있는 것이다.

문을 연지 이제 1년 반 남짓 지났지만 예헌은 당초 김 화백이 꿈꾸던 그런 갤러리를 넘어서고 있다.  그는 그만의 공간에서 작품 활동을 하며 여러 장르의 작가들 뿐 아니라 완도 예술인의 문화의 장 역할을 예헌이 해 주길 바랐단다.  김 화백은 “회원제는 단지 친목의 계기를 만들어 줄 뿐 물질적인 이익을 두고 만든 건 아니다”고 말한다. 관심이 있어 배우고 싶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다는 김 화백의 마음이 전해졌다. 

그는 그가 알고 있는 모든 부문의 이야기들을 엮어가고 싶어한다. 서예·사군자·동양화·다도 등 배우고자 하는 이들의 개성과 특성에 맞는 특기를 찾게 도와주고 그들만의 이야기를 풀도록 조언하는 관계이고 싶단다.
예헌의 회원들은 초등학생에서 주부, 백발의 노인, 장애를 가진 이들까지 폭이 넓다. 언제든 그의 모든 것을 다 주고 싶을 만큼 김 화백의 열정은 준비가 돼 있어 보였다.

이렇다 보니 갤러리에는 회원들의 작품들로 가득하다. 공모전 등에서 수상한 회원들의 작품부터 초등학생들의 작품까지, 하지만 그에겐 그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오히려 이젠 갤러리 공간이 좁아지는게 그에겐 보람이고 행복이다.

그만의 작은 바람은 회원들의 작품들을 정기적 전시를 통해 지역민들과 함께 교류하고 소통하는 기회들을 많이 만들어 주고 싶은 거다.

완도보다 여건이 좋은 인근 시군의 경우도 사군자 등을 배울 수 있는 장은 드물다고 한다. 어쩌면 지역민들, 그중에서도 일상에 쉽게 지칠 수 있는 주부들의 목마름과 문화의 고픔을 감 화백은 잘 알기에 완도를 고집하며 예헌을 지켜 나가는지도 모르겠다. 남들이 쉽게 말하는 ‘돈’이 되지 않음에도 말이다.

완도만의 문화를 완성하고 정착하는데 완도여성들과 함께 만들어 가고 싶다는 김 화백은 오늘도 내일도 작지만 묵묵히 큰 의미를 만들어 가고 있는 예헌에서, 예전의 그 처럼 자신을 찾아보고 싶어 하는 또 다른 김진자를 기다리고 있다. / 김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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