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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해 추석, 생각하면 후회만 밀려와

군외면 달도 임청안(58)씨

  • 김영란 기자 gjinews0526@hanmail.net
  • 입력 2015.09.22 17:23
  • 수정 2015.11.03 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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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청안(58,군외면)

<꽃잎이 찾아와 나를 달래도 나 그리운 아버질 어찌 잊어 그 말씀 그 뜻 내가 품고 산들 나 홀로 남아 어찌 이룰까 그 뜻을 이룬다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영화 ‘마이 리틀 히어로’에 나오는 노래 가사다. 6년 전 고향으로 돌아와 터를 잡은 임청안(58)씨가 아버지를 그리며 자주 부르는 노래란다.

임 씨의 기억속의 명절은 아프기만 하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부모님 모르게 훌쩍 상경해 몇 년 동안 부모님의 속을 닳도록 했던 기억 때문이다. 7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지만 그 당시 달도 마을에선 김을 많이 했던 터라 가난하게 살진 않았단다. 그래서 더 철이 없었던 것 같다며 애써 웃어 보인다.

임 씨는 도시에 대한 환상과 선배들에 대한 믿음으로 막상 서울에 들었지만 그에게 기다리는 건 험난한 밑바닥 생활이었다. 그렇게 2~3년이 훌쩍 흘렀다.

녹록지 않은 객지 생활에 다가오는 추석 명절은 그가 고향으로 돌아 갈 수 있는 핑계가 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고향의 부모님과 친구들에게 ‘그동안 잘 살았노라’라고 보여줄 수 있는 건 까만 양복에 흰 쎄무구두와 당시 유행했던 각진 손가방, 부모님과 형제들이 있는 집으로 간다는 그때의 셀렘은 그를 아직도 설레게 한단다.

하지만 추석 전날 고향 마을을 찾았지만 그는 동구밖에서 더 이상 발을 떼지 못했다. 부모님을 뵙기가 죄스럽고 민망해서 주저하고 있을 때 동네 친구들이 임 씨를 끌어 집에 들어갈 수 있었다고 한다. 몇 년이 지나 부모님을 뵈니 어색하기도 하고 바쁜 농사일에 검게 그을린 부모님을 뵙고 울컥 했지만 자존심에 울지도 못한 그였다.

바로 그날이 지금까지 임 씨의 맘을 아프게 한 일이 생긴 날이다. 그는 “그날이 바로 제가 아버지의 가슴에 못을 박고 불효한 날이 됐다. 지금 생각하면 아버지 마음을 얼마나 먹먹하게 했던가. 아버지가 된 지금의 나는 한 없이 아프기만 하다.”라며 말을 이어간다.

“아버지께서 ‘왜 집을 나갔냐’며 묻자, 저는 ‘살아가면서 돈이 필요한 것은 알지만 돈을 쫓아 다니며 살고 싶지 않다’라고 일이 하기 싫어 집을 나갔다는 변명을 늘어 놓았다”라며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아버지는 제 뺨을 때리셨다. 철없이 내 뱉은 한 마디가 지금도 한이 된다”고 그는 고회 했다.

그 해 추석 날 이후 임 씨는 군대를 다녀와서 결혼을 할 때까지 부모님의 일손을 도우며 고향 마을을 지켰다. 결혼 후 그의 객지 생활은 예전과 달랐다. 노동운동과 정치에 관심이 있던 임씨에게 아버지는 항상 든든한 후원자였다. 하지만 거듭 선거에서 낙선하게 돼 아버지를 실망시켜 드렸다며 그는 자책했다.

임 씨에게 있어 마지막 선거가 돼버린 어느 해, 선거 일주일을 남기고 그의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셨다. 임 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포기하지 말고 끝가지 하라’고 말씀 하셨으나 그 해 선거에서도 패하고 말았다. 선거에 패했지만 제일 먼저 아버지가 떠올라 좌절할 수 없었다”며 아버지의 마지막 말씀이 근근한 오기를 가진 현재의 그가 된 계기가 됐다고 설명한다.

임 씨는 “아버지 꿈을 저는 자주 꾼다. 그때마다 아버지는 항상 저를 보고 웃고 계신다. 그래서 더욱 가슴이 아프다”며 해마다 추석 성묫길은 발걸음이 무겁다고 전한다.
“아버지, 너무도 죄송합니다. 철없이 행동하고 쉽게 내 뱉은 말들의 불효를 어찌다 갚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불효자식을 용서 해 주십시오” /김영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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