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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는가?

김영신(민주민생 완도행동 대표)

  • 김영신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5.11.19 01:24
  • 수정 2015.11.20 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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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 한때 유명세를 탔던 공익광고의 문구였고, 이 문구는 대한민국에서 폭력에 관한 모든 인문학적 성찰을 덮을 정도로 강위력한 지배력을 가지게 되었다.

이 레토릭이 이토록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단언컨대 선명성이다. 보편성과 특수성이라는 측면 모두를 고려하지 않고 보편적인 면만 강조했기에 선명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선명성 이면에는 폭력성이 도사리고 있다.

특수성을 배제한 보편성만을 강조한 문구는 표어나 구호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선동적이다. 또한 폭력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함의 또한 철저히 차단시킨 폭력적 선언이다.

광고의 카피 하나 가지고 시시비비를 가리고자 이 글을 쓰는 것은 아니다. 폭력은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 될 수 없다는 레토릭이 대한민국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기 때문이다.

11월의 어느 날 두 도시에 폭력이 있었다. 프랑스 파리와 대한민국 서울, 2015년 11월 두 도시의 풍경은 을씨년스럽기만 했다. IS로 추정되는 세력에 의한 테러와 민중총궐기라는 이름의 갈등과 소통의 부재가 만들어 낸 초겨울 두 도시의 풍경이었다.

프랑스 파리. 어느 신을 믿느냐란 질문을 던지고 사람들을 향해 총기를 난사한다. 알라는 위대하다는 말을 외치며 사람을 서슴없이 죽이는 그들의 행위에는 알라의 정신은 없었다. 사람에 대한 존중이 없는 테러다.

서울. 집회의 자유를 차벽으로 봉쇄하는 건 위헌이라는 헌법재판소 결정은 어느 3류 신문사 찌라시처럼 망설임없이 휴지통으로 던져지는 쓰레기였다. 물대포를 사람의 머리를 향해 직접 조준해 쏘고 물대포에 튕겨나가 쓰러져 있는 사람을 구하기 위해서 다가간 시민을 향해 물대포를 발사한다. 대한민국의 서울에도 사람이 없었다.

어느 농민의 말이 기억난다. 논농사 짓고 겨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정부는 FTA시행을 선언했고, 여당은 관세율로 야당은 그 어떤 수단을 동원해서라도 쌀 수입은 막아주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7월 23일 밥쌀용 쌀 3만t을 포함해 4만 1천t에 대한 구매입찰을 진행했다. 정부가 쌀값 하락을 부추켰고, 이는 농민들에겐 감당하기 힘든 구조적 폭력이었다. 생존권을 위협받는 농민의 선택은 어떤 것이어야 했을까.

우리는 ‘모든 폭력은 나쁘다’라는 명제의 틀에 갇혀서 거대한 구조적 폭력은 보지 못하거나 외면한 채 눈앞의 작은 물리적 폭력에만 온갖 비난을 쏟아 붓고 있다. 반면 공권력에 대한 폭력의 기준은 더욱 엄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권력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은 통치권이란 이름으로 너무 과장되게 보호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파리, 그리고 서울. 두 도시는 묻고 있다. 역사는 과연 진보하는가. 역사는 과연 사람의 편에 서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