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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의 성탄을 맞이하며

김주인(다문화가족지원센터 한국어교실 강사)

  • 김주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5.12.23 09:20
  • 수정 2016.04.21 1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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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용무도(昏庸無道), ‘나라 상황이 마치 암흑에 뒤덮인 것처럼 온통 어지럽다’는 뜻으로 대학교수들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뽑은 말이다. ‘혼용’은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무도’는 세상이 어지러워 도리가 제대로 행해지지 않는 상태를 가리킨다. 세상살이 각박하여 저마다 생각이 다 다른 듯 보이지만 세상을 보는 눈만큼은 비슷하구나 싶다.

2015년의 끄트머리에 서서 우리가 견뎌내 온 삶과 사회를 보면 과히 그럴만하다. N포 세대, 청년실업, 신입사원 명퇴, 비정규직, 노동법개악, 금수저 흙수저, 메르스 사태, 국사교과서 국정화에 이르기까지, 최근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하는 헬조선, 지옥불반도, 개한민국 등의 신조어에는 내일에 대한 절망과 체념이 담겨 있다. 완도 곳곳에서 성탄 트리가 불을 반짝이고 있지만, 결코 위로가 되지 못함도 이 때문일 것이다.

성탄절은 예수의 탄생을 기념하는 기독교의 절기이지만, 이 땅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다리는 날이기도 하다. 지난 16일에는 서울 조계사에서 불교, 개신교, 천주교, 천도교 등 각 종교 지도자들이 모여 성탄 트리 점등식을 가졌다. 특별히 기독교에서는 성탄절 4주 전부터, 대림절기(待臨節氣)라 하여 세상에 메시아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 앞서 그의 오심을 경건한 마음으로 준비하며 기다리는 기간을 갖는다. 성서 시대의 이스라엘은 기원전 587년 멸망한 이래 메시아를 염원했고, 그 기다림은 성탄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오늘, 성탄의 진정한 성취는 다시 오실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으로 이어진다.

기독교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왜 기독교인이 아닌 사람들까지 이날을 기다리고 함께 기뻐하는 것일까? 성탄의 기다림에는 새날에 대한 열망, 변혁에 대한 염원이 깃들어 있다. 2,000년 전, 세상을 창조한 신이 목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똥오줌도 가리지 못하는 갓난아기로 태어났다. 그 아기는 자라서 사회에서 멸시받고 배척받던 이들, 죄인들의 친구가 되었고, 결국에는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 이들을 용서하며 세상의 죄를 짊어지고 십자가에 달려 죽었다. 신이 인간이 되는 기적, 그리고 그 인간이 보여준 삶은 구렁텅이에 빠진 것 같은 우리의 삶에도, 앞이 보이지 않는 우리사회에도 그러한 기적이 일어날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나 불가능한 것들의 가능성을 믿는 기다림이 막연한 믿음만으로 가득해서는 안 된다. 성탄의 기다림, 예수의 다시 오심에 대한 기다림은 우리네 삶의 현실과 괴리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는 절망의 세력을 사랑과 희망의 능력으로 이겨내는 힘, 용기를 솟아나게 하는 힘이 되어 오늘 우리와 함께 하고 있다. 그리고 절망 속에서 견디게 할 뿐 아니라 남에게 값지게 살 용기를 주는 희망의 힘, 분노와 갈등으로 점철된 사회에 자기를 비워 남을 채우고 먼저 용서하는 사랑의 힘이 될 것을 요청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예수 따르미의 삶이기도 하다.

동짓날, 찹쌀로 빚은 옹심이를 꾹꾹 씹으며, 어둠을 몰아내고 희망의 날을 살아내겠노라는 다짐을 이어간다. 성탄의 기쁨은 다시 또 힘을 내서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의 삶에 깃들 것이다. 메리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