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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야. 문제는 지역이야!

정병호(서울시립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정병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5.12.30 10:22
  • 수정 2015.12.31 1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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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용무도(昏庸無道). 교수들이 올 한해를 한마디로 요약한 말이다. 혼용(昏庸)은 어리석고 무능한 군주를 뜻하는 혼군(昏君)과 용군(庸君)을 합친 말이고, 무도(無道)는 논어의 천하무도(天下無道)에서 따온 말로 세상이 온통 어지럽고 무질서하다는 뜻이다.

민초들의 삶은 갈수록 피폐해지는데, 대통령은 적반하장격으로 그들에게 책임을 돌리고 있다. 불황으로 인한 일자리 부족은 기업의 투자가 줄어서이고, 이것은 노동자들에 대한 해고의 자유가 보장되지 않아서란다. 그는 경제민주화를 팔아 대통령에 당선됐다. 경제민주화란 재벌개혁을 뜻한다. 재벌 위주의 경제성장이 한계에 도달했기 때문에 재벌을 개혁하고, 일자리 창출에 효과적인 중소기업 육성을 통해 경제의 재도약을 도모한다는 데 국민적 합의가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당선된 후에는 경제민주화는 헌신짝처럼 버리고, 도리어 재벌의 하수인이 되어 노동개혁을 부르짖고 있다. ‘닭 먹고 오리발’이요, 권력자의 갑질이 아닐 수 없다.

민주사회의 권력은 선거를 통해 창출된다. 선거 뒤에는 권력자가 갑이지만, 선거 때만큼은 유권자가 갑이다. 그리고 내년에는 총선, 그 다음 해에는 대선이 있다. 투표권을 제대로 행사하기만 하면 선거혁명도 가능하다. 어렵지만 희망의 끈을 놓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런데 총선을 코앞에 두고 제1야당의 분열이 심각하다. 안철수가 탈당하여 신당 창당을 서두르고 있고, 문재인은 친노의 색깔을 더욱 분명히 하고 있다. 분당은 기정사실로 보인다. 호남민심은 이미 문재인의 새정련을 떠났다. 야권의 핵인 광주의 국회의원들의 줄 이은 탈당이 이를 증명한다. 호남은 왜 수십 년 동안 변함없이 지지해 온 당을 거부하는가. 당 대표인 문재인으로는 정권교체가 어렵다고 생각하기도 하지만, 당을 친노가 장악하여 더 이상 호남을 대표하지 못한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친노를 위시한 진보세력이 선거 때는 광주와 호남을 민주의 성지와 보루라고 치켜 올려 몰표를 가져가놓고, 선거 뒤에는 도리어 호남을 지역주의로 매도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호남인들은 영남패권주의를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주된 장애요인의 하나로 인식한다. 그러나 친노세력을 위시한 진보진영에서는 계급문제가 해결되면 지역문제는 자연히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에게는 영남패권주의나 이에 저항하는 호남의 반영남패권주의나 똑같은 차원의 지역패권주의일 뿐이다. 친노세력이 최초로 정권교체에 이어 두 번째 집권에 성공한 민주당을 쪼개 열린우리당을 창당한 것도 이런 맥락이었다. 박근혜 정권 들어 4대 권력기관장을 모두 영남출신이 독식하는 등 영남패권주의가 심화되어도 어떤 야당, 어떤 진보언론이 이 문제를 의제화하지 않는다. 야권의 대선후보 여론조사 1,2,3위 모두 영남출신인 것도 영남패권주의의 작동원리와 무관하지 않다.

호남은 지난 대선에 이어 다음 총선, 대선에서도 영남출신인 문재인과 안철수 가운데 선택을 강요받을 가능성이 높다. 호남출신인 천정배가 호남정치의 복원을 외치며 신당의 기치를 내걸었지만, 아직까지는 뚜렷한 세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호남정치인 천정배와 정동영은 스스로의 과오도 적지 않지만, 영남패권주의에 희생된 측면도 없지 않다. 특히 천정배가 열린우리당 창당을 사과한다니, 늦었지만 다행이라고 본다.

친노세력이 대선 국면에서 내거는 호남후보필패론은 그들이 영남패권주의의 기생세력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문재인의 대안으로 이야기되는 안철수에 대한 기대가 크지만, 그가 영남패권주의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도 유심히 관찰할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영남패권주의는 우리 사회의 금기어였다. 그러나 호남이 자신의 권리를 지키려면 호남을 대표하는 정치인을 길러야 하지 않을까. 그들로 하여금 경제민주화, 양극화 해소와 더불어 반영남패권주의, 지역평등, 지역연대의 깃발을 들게 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