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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산도(仙山島)와 선원도(仙源島)

김의일(완도문화원 원장)

  • 김의일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01.19 17:32
  • 수정 2016.01.25 1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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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군 설립은 이도재 군부대신과 김광선 옹께서 완도군을 1896년 음력 2월 3일에 완도, 고금도, 청산도, 신지도 등 각 도서와 지금은 아닌 비금도, 도초도, 팔금도, 추자도, 득량도, 가우도 등 유인도 48도(道) 도서를 모아 19개 읍면으로 창군하였고 완도에 군청을 설립하고 가리포진(진리)에 읍을 정하므로 해서 완도군이라는 이름을 쓴 것이다.

처음 이도재 군부대신 생각대로 고금도 주민들이 받아들여 군청과 읍을 고금도에 정했으면 고금군이 되었을 것이고 만약 지리적 여건이 좋아 청산면에 군청과 읍이 설립되였더라면 청산군이 되었을 것이다. 즉 완도군이라는 이름이 있기 전에 군청과 읍이 정해지기 전에 이 섬은 완도라는 이름으로 불리어졌다.

신라시대에는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해 살아가기 어려웠던 서남해 민중들을 평화롭게 삶을 영유하게 도움을 주는 섬이라고 해서 조음도(助音島).

고려시대에는 상왕산(象王山)에서 발원하는 불당골 계곡수는 법화사지(法華寺趾, 절막터) 앞에서 수백수처에서 회합하여 직선으로 흐르다 휘어져 흐르고 봉우리 산맥과 산야는 청산(請山, 중국의 산)에 비할 바가 아닌 남국선경과 녹수청산으로 하늘이 내려준 황금빛으로 황홀한 신선의 세계로 신비스러움이 빛나는 장소로서 이곳이야 말로 저 먼 남국의 풍경을 자아내는 따뜻하고 만물이 소생한 긴 봄날의 신선이 살아가는 섬이라고 해서 선산도(仙山島).

조선시대에는 사슴, 노루, 멧돼지, 가시나무목(후가시), 동백, 청등(靑藤), 비자, 오시목, 옹설, 다래, 멍나무, 생달수, 황장목(皇松)으로 신라에서 조선까지 중국에서 우리나라에 요청하면서 찬미해 말하되 금색이요, 그 광채의 빛남은 천하에 비교할 바 없는 염(染)이라고 했던 황칠나무(黃染樹)에서 채취한 액 등 특산물로 인하여 봉산(封山)으로 국가에서 직접 관리해 국원(國苑)으로 원도(苑島)라고 했고 원도(苑島)에서 세월 속 발음 변화로 인하여 완도(莞島)로 정해진 것이다.

고려시대에 완도가 선산도(仙山島)였다는 증거로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한 내용을 소개하고자 한다.

“선산도(仙山島)는 현(縣)의 남쪽바다 가운데 있다. 고려시대에 정언(正言) 벼슬을 하던 이영이 완도로 귀양 갔는데 그의 숙부인 승(僧) 혜일이 따라 찾아 왔다가 절(寺)을 짓고.....”

그 절은 지금 완도읍 장좌리 저수지 위쪽 관음사지 하록에 있으며 절 이름은 중암사지(中菴寺址)이고 장도 당(堂)에 송징 장군(해남 해진 출신), 정연 장군, 혜일 스님 세분의 위패(位牌)를 모셔 왔다. 또한 청산 선조들의 기록에는 청산이 선원도(仙源島)라고만 기록돼 전해져 오고 있으므로 분명 완도가 선산도(仙山島)이고 청산도는 선원도(仙源島)이므로 ‘청산면지’도 수정하였으면 좋을 것 같다.

<본 글은 기고문 중 일부로 완도군 설군과 관련된 부분만 발췌해 수정했습니다. 기고문의 출처(근거)와 내용의 사실 등에 관해서는 기고자에게 문의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