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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졸업장 수여식’이라 쓰고 ‘졸업식’이라 읽는다

  • 박남수 기자 wandopia@daum.net
  • 입력 2016.02.17 23:58
  • 수정 2016.02.22 1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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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월 12일 완도초등학교 제105회 졸업식이 학교 체육관에서 열렸다. 44명의 학생이 졸업했다. 체육관 무대 위 현수막에는 ‘제105회 졸업장 수여식’이라 쓰여 있었다. 17일 열린 완도중학교와 완도여자중학교도 마찬가지로 졸업식 아닌 ‘졸업장 수여식’을 치렀다. 1월 12일 있었던 완도수산고등학교는 ‘졸업증서 수여식’이었다.

이처럼 요즘 학교들은 대부분 ‘졸업장 수여식’이란 말을 쓰고 이를 보는 학생들과 참석자들은 ‘졸업식’으로 읽었다. 졸업식으로 하면 될 것을 왜 굳이 졸업장 수여식으로 쓸까?

완도교육지원청 관계자도 정확한 연원을 알 수 없다고 했다. 공문서에는 졸업식으로 쓰며 졸업 행사에 두 가지 표현을 다 쓴다고 했다. 그렇지만 두 표현의 의미상 차이는 누구라도 알아차릴 만큼 크다. 졸업식의 주인은 학생이고, 졸업장 수여식의 주인은 학교장이기 때문이다.

수여식이라 하면 얼른 국가 훈장 수여식이나 왕실에서의 작위 수여식을 떠올린다. 또 대학의 학위 수여식도 있다. 초중고 졸업 행사도 이들처럼 권위와 품격을 부여하기 위한 목적으로 수여식을 사용했을지 모른다.

그런데 ‘졸업장 수여식’으로 했을 때 행사의 주인공은 학생이 아닌 학교나 학교장이 된다. 국가가 부여하는 일종의 자격(라이센스)을 학교장이 대신 수여하는 형식이며 이 경우에 학생은 증서를 받는 단순한 수혜자가 된다.

졸업의 주인공은 학생이다. 학교의 주체인 학생이 6년(혹은 3년) 동안 노력해 얻은 졸업의 영광을 학교도, 부모도, 재학생도 함께 축하하면 된다. ‘졸업장 수여식’ 대신 ‘졸업식’으로 했을 때 교사와 학부모의 노력이 의미 없다는 것은 아니다. 또한 그들의 권위가 작아지는 것도 아니다. 다만 주객이 바뀌었다는 뜻이다.

학교장이 학생들에게 졸업장을 수여하려니 결국 넓은 체육관에 학생들을 앉혀 놓고 일일이 호명해 졸업증서를 주거나 학생 수가 많은 경우 졸업생 몇 사람에게 대표로 수여하게 된다. 완도 지역 대부분 초중고교에서 행하는 이런 졸업장 수여식에서 참석자들이 감동받을 리 없다. 이제 졸업식도 변화가 필요하다.

비록 일부이긴 하지만 작은 변화들도 보인다. 학생들이 체육관이나 강당에 모이는 대신 자신들이 그동안 공부했던 교실에서 담임 선생님들과 마지막 시간을 의미있게 보내는 경우도 더러 있다. 작은 교실에서 학생들과 선생님 그리고 부모 친지들이 모두 모여 졸업의 기쁨과 아쉬움뿐만 아니라 감사를 주고 받기도 했다. 물론 이런 졸업식의 경우 학교장의 졸업장(상장) 수여 같은 절차나 졸업생(재학생) 대표의 답사(송사)는 과감히 생략하거나 포기해야 할 것이다. 

학교는 미래의 주역을 키우는 제도적 공간이다. 그런데 요즘 행해지는 졸업장 수여식에서 학생은 결코 주인공이 아니다. 객체이자 대상에 불과하다. 어려서부터 주인공으로 대접하지 않으면서 장차 미래의 주역이 될 것을 기대할 수는 없다. 우리가 주인으로 대접할 때 장차 우리 사회의 주인으로 성장한다.

수여는 ‘준다’는 뜻이다. 졸업할 때까지 선생님들이 학생들에게 준 모든 것을 졸업증서 하나에 전부 담을 수는 없다. 선생님은 물론 부모님들의 높고도 깊은 사랑을 확인하는 뜻깊은 졸업식이라면 좋겠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지금의 권위적인 졸업장 수여식보다 감동적인 졸업식의 형식과 내용에 대해 고민해야겠다. 

학교장으로부터 빛나는 졸업장을 수여받은 완도초등학교 졸업생들은 “6년 동안 가르쳐 주신 선생님들과 키워 주신 부모님께 감사합니다”라며 깊이 머리를 숙였다. 졸업생들의 앞날에 행운 가득하길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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