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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경제 모델로서 데이비드 보위의 삶

창조적 파괴·자기부정·끊임없는 혁신

  • 강철승(한국수산정책포럼 대표)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03.31 08:34
  • 수정 2016.04.11 1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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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철승(한국수산정책포럼 대표)

 1970년대 록의 대부 데이비드 보위(David Bowie)가 암 투병 끝에 2016. 1. 10일 향년 69세로 타계했다. 생애 28번째 앨범 '블랙스타'를 발표한 지 이틀 만이다.

1960년대가 비틀스의 시대였다면 1970년대 시대정신은 데이비드 보위였다.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고등학교 중퇴 학력에 불과했고 색소폰을 열심히 불었지만 음악 신동도 아니었던 그는 현실을 탓하거나 안주하지 않았다. 끊임없는 창조적 파괴와 자기 부정, 혁신을 통해 한 시대를 풍미하는 음악세계를 쌓아올렸으며, 음반 판매량 1억3000만장은 그에게는 숫자에 불과했다. 슈퍼 록 스타였지만 예술가의 영역에만 머물지 않았으며, 지식재산권을 활용해 펀드와 은행을 만드는 등 금융가, 인터넷사업가로도 변신했다.

"당신이 안전한 곳에 있다고 믿는다면 당신은 죽은 것이다(The minute you know you're on safe ground, you're DEAD)"라고 갈파한 보위의 실험 정신은 사면초가의 상황에 내몰린 한국에도 커다란 울림이 될 수 있다.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데이비드 보위의 창조적 실험 정신을 본받아 기업가 정신을 일깨우고 새로운 도전의 길에 나서야 반전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2016.1.14 미국 뉴욕 인근 모처에서 가족과 친척조차 없이 한 줌의 재로 뿌려지기 전에 그는 연인에게 "어떠한 소란도 없이 가겠다(go without any fuss)"며 공식적인 장례식을 거부하고 눈을 감은 것으로 전해졌다. 장례식이라는 틀마저 부순 것이다. 편안하고 안정된 것만 선호해 역동성이 급격히 떨어진 한국 사회에서 보위는 진정한 창조가 무엇인지 되돌아보게 하는 존재다.

◆ Blending(융합)

보위는 산업 간 장벽을 넘나들었던 인물이다. 1997년 보위는 향후 10년간 287곡에서 발생하는 로열티를 담보로 자산유동화증권인 ABS를 발행했다. '보위 본드(Bowie Bond)'라고 이름 붙인 이 ABS는 연리가 무려 7.9%에 달했다. 당시 미국 국채 10년물 금리(6.7%)보다 높은 수준이었다. 무디스는 보위의 인기를 고려해 AAA 등급을 부여했고 푸르덴셜은 이를 매입했다. ABS 발행으로 보위는 단 한 번에 5500만 달러를 거머쥐었다. 보위는 인터넷에서도 선구자였다. 1998년 인터넷이 보급된 지 얼마 안 됐을 당시 인터넷 서비스업체인 보위넷(BowieNet)을 설립했다. 홈페이지를 통해 사운드 트랙과 그가 그린 미술 작품을 판매했다. 향후 음악 시장이 대형 음반 업체 중심에서 인터넷으로 재편될 것을 예측한 것이다.

◆ Originality(독창성)

보위는 센세이셔널한 패션과 퇴폐적인 분위기로 유명한 글램록의 사실상 창조자였다. 극도로 화려한 화장과 헤어스타일, 현실과 동떨어진 기묘한 패션과 무대는 독창성의 상징이다. 특히 1972년 영국 한 술집에서 그는 자신과 밴드를 화성에서 온 '지기 스타더스트와 거미들(Ziggy Stardust and the Spiders from Mars)'이라고 소개했다. 연극 같은 음악 무대에 관객들은 충격을 받았다. 무대라는 공간을 자유의사를 가진 독립된 인격체인 페르소나를 선보이는 장소로 택한 것이다.

◆ Widening(확장)

그는 행동반경을 배우와 프로듀서로도 확장할 줄 알았다. 1967년 데뷔한 직후 그는 단편영화 '이미지(The Image)'에 출연했다. 본격적으로 배우로 활동한 것은 1975년이다. 첫 주연작 '지구에 떨어진 남자(The Man Who Fell to Earth)'에서 그는 지구에 떨어져 정체성의 혼란을 겪는 외계인인 토머스 제롬 뉴턴 역을 맡는다. 영역을 넘나들었지만 철학적 고민은 한결같았다. 영화 출연을 전후해 그는"백인이며 영국인인 내가 어떻게 흑인 음악을 받아들여야 할까"라는 고민에 사로 잡혔다. 지구에 떨어진 남자라는 영화를 통해 이 고민은 배가 된다. 이후 그는 '스테이션 투 스테이션(Station to Station)'이라는 앨범을 발매하면서 'The Thin White Duke'라는 캐릭터를 만드는 데, 이 인물은 영화 속 주인공에서 본떴다. 또 그는 흡혈귀나 마왕과 같은 독특한 캐릭터를 연기하기도 했다.

◆ Innovation(혁신)

Inspiration(영감) 보위는 69세로 타계하기 직전까지 단 한 번도 이전 스타일을 답습하거나 전작의 성공 공식을 재현하는 법이 없었다. 유작으로 남은 28번째 정규앨범 '블랙스타'도 마찬가지다. 종전에 선보인 로큰롤 장르를 버리고 재즈를 버무린 빅밴드 형식의 곡들은 평단의 극찬을 받았다. 영국 대표 음악비평지인 '롤링스톤스'는 "1970년대 이후 최고 앨범"이라 말했다. 대표곡은 블랙스타나 수(Sue)다. 혁신은 혁신을 부르는 원동력이었다. 그의 영감은 후배들의 영감으로 이어졌다. 1970년대 후반부터 부상한 펑크록, 1980년대의 소울음악, 1990년대 초중반 브릿팝(British Pop)이 모두 보위의 영감을 받아 탄생한 장르다. 브리티시위클리가 뮤지션들을 대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준 뮤지션을 꼽아달라고 한 결과 1위가 보위였고, 2위가 라디오헤드, 3위가 비틀스일 정도다. 얼터너티브록의 대명사 너바나의 커트 코베인은 보위의 '세상을 팔아버린 남자(The Man Who Sold the World)'를 리메이크했다. 

◆ Elegance(우아함)

보위가 1972년 선보인 진한 화장과 오렌지색으로 물들인 머리, 깡마른 몸에 달라붙은 전신 타이츠와 부츠는 관객들을 충격과 환호로 동시에 몰아넣었다. 1970~1980년대 동성애자들을 중심으로 인권 투쟁이 전개되면서 그의 남녀 구별 없는 패션은 곧 '우아한 정신'으로 승화됐지만 그는 이러한 패션들을 인기가 가장 높을 때 던져버렸다. 글램록 열기가 한창일 때 앨범 표지에 난데없이 개의 하반신을 덧붙인 기괴한 모습을 실었다. 이후에는 세련된 청춘스타, 늠름한 신사로 분장하기도 했다.

보위는 평상시 "내 퍼포먼스는 관객들에게 연극적인 경험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변장을 통해 관객들에게 메시지를 분명히 전달하겠다는 것이다. 보위의 패션은 패션업계에도 영향을 미쳤다. 2014년 밀라노 패션쇼에서 한 디자이너는 '현대의 보위(Contemporary Bowie)'라는 작품을 소개했다. 또 그의 스타일은 레이디 가가, 메릴린 맨슨 등 비주얼 록 스타들로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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