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가장 많은 이들이 걸었던 신선의 길

청산도 슬로길 1코스: 미항길~동구정길~서편제길~화랑포길
김미경(전남도 문화관광해설사)

  • 김미경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04.28 00:14
  • 수정 2016.05.02 11:11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4월 청산도는 축제가 한 달에 걸쳐 진행된다. 도청항 포구는 봄을 만끽하기 위해 청산도를 방문하는 이들과 주민들로 한껏 북적거린다. 올해로 8년째인 이 축제는 걷기를 테마로 한다. “느림은 행복이다.”라는 주제로 빠름을 주머니에 넣어버리고 천천히 걷는 축제. 얼마나 건강한 발상인가.

미처 걷기 축제에 참가하지 못해 아쉬운 이들이여. 뭐, 어떤가. 나만의 걷기 축제를 날마다 하면 그만인 것을. 아니면 이 지면에 실릴 청산도 슬로길 11개 코스에 대한 이야기를 읽으면 대리 만족이라도 하시길.

하늘과 바다, 산, 그 곳에 사는 사람들까지 푸르러 청산도라 불리는 이 섬은 고려시대 때까지만 해도 선산도, 선원도로 불렸다고 한다. 풍광이 너무나 아름다워 신선이 와서 노닐다 가는 곳이라는 의미였다. 우리네 마음 속 신선은 어떤 이미지인가, 머리도 수염도 온통 새하얀 할아버지이지만 영원히 늙지 않는 청년이자 청춘이라는 점에서 선산도가 청산도로 불리지 않았을까.

그렇다면 지금부터는 마음 가득 푸른 청춘의 건강함을 갖고 신선이 품었을 여유로운 마음으로 청산도 슬로길을 걸어보자. 그 길을 걷는 우리는 이미 청춘이고 신선이다.

청산도의 슬로길은 길이 지닌 풍경, 길에 사는 사람, 길에 얽힌 이야기가 어우러져 거닐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길이다. 11개 코스 중 청산도 슬로길 1코스는 그 접근성과 아름다움 때문에 가장 많은 이들이 만나는 길이다.

항구에 내리자마자 마주하는 첫 풍경인 이 길은 미항길~동구정길~서편제길~화랑포길로 이어지는 길로 총 5.71km, 90분 정도 소요된다. 청산도의 명동거리인 도청항에서 시작되는 미항길은 수많은 관광객과 청산도 상인들의 시끌벅적 기분 좋은 소음 속에서 발걸음이 저절로 경쾌해진다.

미항길의 끝자락에 있는 느림의 종을 지나 두 갈래 길 중 날이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았다는 우물 동구정을 지나 해안가를 따라 노송길을 걸어도 좋고 아름다운 도락포구를 바라보며 잘 정비된 데크길을 걸어도 좋다. 파란 바다와 노란 유채가 만들어낸 멋진 풍경을 맘껏 즐기며 걸으면 어느새 당리 서편제 길이다.

1993년 상영했던 영화 ‘서편제’를 찍었던 그 시절 눈 맑은 감독은 보기만 해도 가슴시린 풍경과 척박한 대지와 빛바랜 초가집들 속에서 오롯이 살아가고 있는 섬사람들의 삶속에서 우리 민족 정서인 한을 보았다고 했다. 한국영화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명장면을 만들었던 이 길에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진도아리랑을 부르며 덩실덩실 어깨춤을 추게 된다.

화사한 봄의 왈츠 세트장에서 화랑포로 접어들면 눈부신 바다풍경을 가슴에 담을 수 있다. 바람에 일렁이는 파도가 마치 꽃의 모양을 닮았다 해서 꽃(花) 물결(浪)의 의미를 지닌 곳이다.

언젠가 어머님이 바람이 심하게 부는 도청리 앞바다를 보며 “오메! 바다에 꽃이 많이 피어부렀네!” 하고 무심코 내뱉던 말에 영랑의 유명한 시 “오메! 단풍 들것네!”와 오버랩되며 눈물이 핑 돌았던 순간을 잊을 수가 없다. 힘든 삶속에서도 낭만을 잃지 않는 그네들의 감성이 참으로 감동적이지 않은가.

그렇게 낭만의 길 화랑포길을 휘돌아 가면 그 길 끝에서 2코스인 ‘사랑길’이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