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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스 칼럼

고향숲, 당신이 고스란히 내려앉은 숨결

  • 배민서(완도출신/미국 거주)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08.26 11:19
  • 수정 2016.08.2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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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 솔가지를 꺾으면서도 엄마 곁에 머무르고 싶었습니다.
회초리 바람에 손등이 갈라져 핏물이 배어와도 겨울나무 끝에 기대앉아 햇살 같던  당신의 미소만으로도 충분히 따사로웠습니다.
마른 솔잎과 누런 억새 검불들을 긁어모아 태산 같은 무게를 머리에 이시고 휘청거리시며 땔감을 구하셨던 엄마.
찌든 빨래들 다라이에 가득 담아 통샘으로 빨래하러 가시던 그 길가에는 쑥이며 들풀들이 햇볕을 쪼이며 앉아 있었지요.

퍼올려도 퍼올려도 마르지 않았던 샘물 같은 사랑이 바로 부모님의 사랑일까요?
세상을 등지신 지 오래인 나의 엄마는 지금도 긴 월남치마에 흰 수건을 머리에 두르시고 학독에 마늘과 고추, 멸치젓, 식은밥 한 덩이를 넣고 뚜르륵 뚜르륵  갈고 계십니다.
멸치 뼈가 으스러지고 고추도 마늘도 형체를 잃고 함께 어우러지기를 시작합니다.
엄마가 원하시는 맛을 내기 위해 그들은 자신의 모습을 포기하고 조용히 스며드는 법을 압니다.

지난 주 목요일에는 지인의 아버님께서 갑자기 세상을 떠나셨다.
그로 인해 우리들은 부모님께서 운명하시던 순간들을 회상하며 대화를 주고받고 있었다.
"미국에 이민와서 살다보니 자주 찾아 뵙지도 못하고 운명하시기 전에 '아버지,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못 한 것이 아직도 아쉬움으로 남아 있어요!"

아아... 나도 그랬었다. 샘물처럼 마르지 않는 사랑 철철 넘치도록 받았으면서도 하지 못했던 그 말... 부모님은 당연히 주셔야 하는 줄 알았었지요.
그리고는 성가대에서 찬양하는 곡이 '사랑' 이었는데,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고 있었다.
사랑하지 못하는 허울좋은 나 자신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사랑은 언제나 오래 참고, 사랑은 언제나 온유하며, 사랑은 무례히 행치 않고, 자랑도 교만도 아니하네. ...(중략)... 사랑은 모든 것 감싸주고, 바라고 믿고 참아내며, 사랑은 영원토록 변함 없네......

 근래에 내가 그림을 그리던 산 중턱의 오솔길에서 만난 나무들은 이 사랑을 알고 있는 듯 했다. 길손들을 위해 잔가지들이 사람들에 의해 잘려 끈적한 송진을 흘리면서도 그들은 불평하지 않았다.
함께 어울어져 손과 손을 내밀고 어깨를 감싸안고 믿어주며 참아내는 듯이 보였다.
욕심도 없이 그저 햇살 한 조각에 파르르 미소지으며 비바람에도 눈물을 흘리며 감사할 줄 알았다.
또한 변함 없는 푸르름으로 언제나 우리를 맞아주고 맑은 정기를 전해주는 나무들 앞에서 나는 부끄러워졌다.

사랑을 배웠으나 나를 내려놓고 조용히 스며들지 못하는 이기심이 아직도 내 안에 남아있기 때문이었다.
내가 어릴적에 엄마랑 같이 나무하러 다녔던 그 산 중턱에는 나의 부모님의 묘소가 자리하고 있다. 완도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그곳에서 생전에 엄마는 열심히 떨어진 솔잎들을 긁어 모았었고 나는 마른가지들을 줍다가 양지에 피어난 들꽃들과 눈 맞추며 놀았던 곳.

그러다가, 혜성처럼 날아와 꽂히는 생각 하나...
아아... 엄마! 이제서야  깨달았습니다.
고향 산 언저리, 그 나무들과 숲은 당신이 고요히 내려앉아 온전히 스며들어 일구어내신 바로 당신의 숨결이란 사실을 말입니다.
살아생전에 제대로 못 해드린  말, 이제서야 저는 겨우 말합니다.

"참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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