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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랑께, 그랑께, 햇볕도 켜켜이 쌓여가고……

세상을 만드는 손

  • 한정화 기자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09.23 11:22
  • 수정 2016.12.27 1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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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생님 씨의 세상을 만드는 손

“이 칼이 이게 3천원짜리여!”
그저 스쳐가는 길이었다. 완도 해변로에서 바다를 등지고 앉아 누군가 쉼 없이 손을 움직이고 있었다. 머리 위로 쏟아지는 짱짱한 햇볕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가까이 다가가는데 먼저 온 중년의 사내가 있었다.

그녀가 두 손을 쉼 없이 움직이며 다듬고 있었던 것은 붕장어. 칼을 쥔 손이 몇 번 쓱쓱 왔다갔다 하면 금세 한 마리가 다듬어지고 있었다.“종일 앉아서 혀도 얼마나 벌것어? 글도 노인한테는 큰돈이제”
그 손놀림에 사내도 홀렸는지 꿈쩍을 않고 지켜보고 있었다.

“이것만 갖고 되간디? 리야까 끌고 쓰레기도 모으고 해야 아그들한티 손 안 벌리제.”
100세가 되신 시아버지를 모시고 있다는 74세 김생님 씨(사진). 저 3천원짜리 칼이 대체 몇 개나 닳고 무디어졌을까. 그 능수능란한 손놀림에 입을 다물지 못하고 그저 쳐다보는데, 검게 그을려 단단해 보이는 그녀는 말도 참 딴딴하게 하고 있었다.

“오실헐 놈들! 큰아들, 작은아들 다 죽었어. 꽃게 배 타다가 인천바다에서……”
장례를 치르러 인천에 갔는데 옆에 빵장수 할매가 있더란다. 물이나 한 모금 얻어먹을까 하고 말을 걸었다는데, 그 할매 아들은 배 타고 나가 생사조차 알 수가 없다고. 이제나저제나 아들이 올까, 아들 소식이라도 들을까, 그저 그렇게 기다리고 있다고. 그래, 그 할매보다는 내가 훨씬 낫다 싶어 빵 하나 먹고 돈 만원을 주고 돌아섰다는 김생님 씨.

그 모진 이야기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마치 장어 배를 쭈욱 가르듯이, 뼈를 말끔히 발라내듯이 털어내는 그녀. 말끝마다 그랑께 자네도……, 그랑께 어차피……. 건강하라고, 딴 거 없다고, 먼저 와 있던 중년의 사내가 자리를 뜨고도 한참을 그랑께, 그랑께, 하며 쓱쓱 매끈하게 다듬어진 장어가 쌓여가고 있었다.

저물려면 아직 한참 남은 햇볕도 잘 다듬어진 장어들 틈바구니로 켜켜이 쌓여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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