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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가 뭔지

전문가 칼럼

  • 박준영 변호사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09.30 11:17
  • 수정 2016.09.30 11: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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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준영 변호사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때 배석판사였던 부구욱씨가 새누리당 윤리위원장으로 내정되었을 때 더불어 민주당은 이렇게 비판했다.

“무고한 젊은 청년을 죄인으로 만들었던 오심판사가 새누리당 윤리위원장이 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부구욱 신임 윤리위원장은 자신이 죄인으로 만든 무고한 청년에게 사죄해야 할 사람이지 새누리당의 윤리의식을 바로 세울 수 있는 인물이 못 된다. 새누리당이 당 윤리위원회를 강화하겠다며 어떻게 이런 오심판사를 윤리위원장에 임명한다는 말인지 기가 막힌다. 법원과 검찰, 경찰은 하루 빨리 강씨에게 사죄하길 촉구한다.”

더불어 민주당 박범계 의원. 최근 진범이 나타나 유가족과 피해자에게 사죄한 ‘삼례나라수퍼 강도치사사건’의 1심 배석판사였다. 오판을 한 판사 중 한 사람인 것이다. 나는 얼마 전 기사를 통해 박범계 의원의 이름을 공개하며 ‘잘못 인정과 반성’을 촉구했다. 부구욱씨가 새누리당 윤리위원장이 되었을 때 크게 비판했던 진보언론. 하지만, 조작된 삼례나라수퍼 강도치사사건 때 배석판사였던 박범계 의원에 대해서는 침묵하고 있다. 관심이 없는 건 아닐 터, ‘아는 사람’에게 ‘다른 잣대’를 대고 있는 것이다. 

자신과 그 주변의 잘못에 특히 관대한 것이 우리 사회다. 여섯 단계만 거치면 모두 다 아는 사람이라는 세상에서 우리 사회는 특히 더 ‘아는 사람’에게 관대하다. 이 관대함이 우리 사회를 병들게 한다고 생각한다. 또한 발전의 큰 걸림돌이라고 생각한다. 사건의 경중을 따질 문제도 아니다. 강기훈 유서대필사건과 삼례나라수퍼 강도치사사건, 둘 다 가슴 아픈 사건이자, 반복돼서는 안 되는 일이다. 강기훈 유서대필사건 재심재판과정에서, 야당 그리고 시민단체는 기자회견 등을 통해 당시의 잘못을 강하게 질타했다.

그런데, 삼례나라수퍼 강도치사사건의 진범이 나타나고 재심개시결정이 확정되는 상황에서도 야당과 시민단체는 침묵했다. 박범계 의원 역시 사과 한마디 없다. 삼례나라수퍼 사건에서 억울한 옥살이를 했던 사람들이 지적장애인이 아니거나 서울에 살거나 대학을 나왔거나 전문직종사자였다는 어땠을까? 사회적 약자는 이런 차별대우를 받아도 되나. 강기훈 유서대필사건과 삼례나라수퍼 강도치사사건의 차이는 뭔가. 부구옥과 박범계 의원의 차이는 또 뭔가. 정의는 사안과 사람마다 차별적으로 적용되는가. 우리 사회에 묻고 싶다. ‘차별 취급하는 근거가 뭔가?’

안타까운 사실이 있다. 강기훈씨가 간암 투병 중에 있다. 병마를 이기고 다시 일어서길 간절히 바란다.

벌써 4년이 흘렀다. 전 국민의 비난이 거세게 일었던 일명 ‘수원토막살인사건’ 이야기다. 2012년 4월 1일 경기도 수원에서 조선족 남성 오원춘(우위안춘)이 귀가 중인 여성을 집으로 끌고 가 강간하려다 실패하자 목 졸라 살해했고 시신을 잔인하게 훼손했다. 시신을 훼손한 목적이 인육 또는 장기밀매가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다. 살해당한 여성은 살해당하기 전 경찰에 신고를 했지만 경찰의 늑장대응으로 구조 받지 못했다.

이 사건은 당시 사건의 축소, 은폐 의혹이 강하게 제기되었었다. 결국, 관련 경찰관들이 징계를 받았고, 경찰청장은 ‘책임지고 사퇴하겠다’는 대국민 사과문을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하루아침에 가족을 잃은 유족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경찰들의 위법행위로 사망의 결과가 발생했다는 이유였다.

1심에서는 국가의 배상책임을 1억 원가량 인정했다. 그런데 2심에서 배상책임이 2천만 원 가량으로 대폭 줄었다. 경찰관들의 위법행위와 피해자의 사망사이에 인과관계를 인정하기 어렵다는 취지였다. 유족들은 대법원에 상고를 했고, 대법원은 지난 27일 2심법원의 판단이 잘못되었다면서 피해자의 사망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폭넓게 인정했다. 경찰관들의 직무위반행위가 없었더라면 피해자의 사망이라는 결과를 피할 수 있었다고 본 것이다.

유족이 수년 동안 법적투쟁을 하는 상황에서 우리는 무얼 했나. 사건 발생 당시 일었던 전 국민의 공분도 얼마 지나지 않아 사그라들었다. 4년이 지난 지금 우리 사회는 무엇이 달라졌나. 유족이 제기한 국가배상청구소송에서 국가는 책임을 부정했었다. 책임을 인정치 않는 국가가 오원춘 사건이후 뭔가 의미 있는 변화를 위한 노력을 하였을 것이라 기대하는 건 무리가 있다. 우리의 관심이 멀어진 사이 유족은 2심에서 사실상 패소판결을 받았었다. 국가의 책임을 대부분 부정했던 2심법원의 판단은 공론화되지도 않았다. 시민과 언론의 관심밖에 있었기 때문이다. 유족은 시민과 언론의 무관심 속에 외롭게 법적 투쟁을 해 온 것이다.

시민들의 관심이 지속되어야 하고, 언론은 계속 보도를 해줘야 한다. 관심이 지속되었다면, 2심법원이 국가의 책임을 사실상 부정하는 판단은 어려웠을 것이다. 여론이 재판에 부당한 영향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만, 시민의 상식을 재판부가 알게끔 하는 것은 필요하다. 시민의 상식은 개개인의 관심을 통해 공론화된다.

공론화가 지속되어야 의미 있는 변화를 기대할 수 있다. “반박도 필요 없고 시간이 지나면 조용히 묻힌다”고 생각하는 공권력이 많다. 시민의 관심이 지속되지 않으면, 이들을 이길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세상은 저절로 좋아지지 않는다. 누구나 할 수 있는 노력, ‘관심’이 세상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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