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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수협이 박람회에 기여하고 있는가

독자 기고

  • 정영래/장보고연구회 회장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10.28 12:30
  • 수정 2016.10.28 12: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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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수협이 지금에 이르기까지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1917년에 완도해태조합이 결성되고 일본으로 해태가 본격적으로 수출되면서 수출업무를 담당하기위해 완도해태조합은 연합회(수협중앙회전신)가 되고 1960년경 읍면에 각기 조합이 설립되었다.

완도, 군외, 신지, 고금, 약산, 금일, 금당, 청산, 소안, 노화 이렇게 10개의 조합에서 수집업무를 담당하고 연합회에서 일본으로 수출하는 업무를 분담하였다. 당시 제일 큰 조합은 군외, 고금, 금당이었다, 수출에 가장 큰 역할을 하였던 기관은 검사소였다.

해태는 등급에 따라 수출과 단가가 결정되었기 때문에 조합원들에게는 최대의 관심사였다. 따라서 조합원들이 생산하여 온 해태의 등급을 결정하는 검사원의 위상이 대단하였다. 아마 지금의 사법부 판사,검사에 비유한다 하더라도 조합원들은 그 이상으로 받아들였을 것이다.

1970년대 일본으로 해태수출이 중단되면서 1972년에 정부의 지침은 1군 1조합이라는 원칙을 만들어 10개의 조합을 “완도군수협”이라는 명칭 하에 합병되었다. 1990년 완도군수협에서 금일읍과 소안면이 분리되어 완도군수협과 금일수협, 소안수협으로 세 개의 조합으로 운영되었다.

우리나라는 고구려, 백제, 신라라는 삼국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외세의 영향으로 고구려 백제가 무너지고 작은 나라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였다고 하고 있다. 그러나 삼국을 통일 했다는 신라는 고구려의 광활한 영토를 한 치도 운영한 역사가 없이 반도의 남쪽만 운영하는 국치(國恥)의 나라가 되고 말았다.

이와 맥을 같이 하여 해수부에서는 역사와 전통을 무시하고 완도군수협을 해산하고 금일수협으로 계약이전이란 묘한 이론으로 합병하면서 2009년 1월 12일자로 완도군수협은 없어지고 말았다. 삼국의 역사가 완도에서 되풀이 되고 있다.

이글을 쓰는 이유는 완도군이 2017년 국제해조류 박람회를 개최하는데 해조류로 시작되어 현재까지 해조류로 벌어먹고 사는 완도금일수협이 완도군해조류박람회에 무슨 기여를 하고 있는가? 금번 박람회는 완도군민이 하나 되어 일사분란하게 추진되어도 부족함이 있을 수 있다. 완도군 전체직원과 각 사회단체, 그리고 박람회추진위원들은 입장권 하나라도 더 팔아보려고 동분저주하면서 전국의 친인척까지 동원하는 판국에 금일수협에서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금일수협에서 입장권을 다 팔아도 부족하다.

2017완도국제박람회가 잘 추진되어 해조류가 많이 팔린다면 첫째는 완도군 어민들의 소득으로 이어질 것이며, 이차적으로 그 수혜는 수협으로 돌아갈 것이다.
금일수협과 소안수협의 입장에서 볼 때 2017완도국제해조류박람회는 “강 건너 불”이 아니다. 수협의 일이다. 스스로  앞장서서 박람회가 성공리에 마무리 될 수 있도록 전력을 기울려야 한다.

지금은 완도군민이 하나 되어 2017완도국제해조류박람회가 성공리에 마무리 될 수 있도록 모두 힘을 모을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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