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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말 “이제, 골프는 좀 줄이셔야겠는데요”

[나의 반쪽]완도제일교회 오은정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6.12.30 08:43
  • 수정 2016.12.30 0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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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째 독실한 기독교 가정에서 태어난 나. 중·고등학교 당시엔 가정적으로 어려움도 있었다.
하지만 늘 기도하셨던 어머니와 미션스쿨(염광 여자 중, 고등학교) 선생님들과 교회 목사님의 가르침과 영향으로 나의 학창시절은 큰 어려움없이 이겨내고 헤쳐 나올 수 있었다.
꿈은 목사가 되는 것이었다.
여자로서는 흔치 않는 꿈이었지만, 목회를 한다는 건 나의 사명이었기에 대학 또한 주저없이 한신대 기독교교육과를 선택했다. 지금의 남편(전민 목사)은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입학하여 같은 상담학회를 통해 만나게 되었다. 당시 남편은 목회상담학회 회장이었고 난 회원이었다. 첫인상은 무척 밝고 예의 바른 사람.
처음에 만남을 시작할 땐 나의 희망이 목회자였으니, 배우자로서 목회자를 만나면 나는 어쩔 수없이 사모를 해야 됐기에 망설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만날수록 그 사람의 따뜻한 마음에 기대고 싶은 마음이 생겨났다.
그때 남편에게 아내의 조건이란 첫째로 부모님에게 잘 할 사람이었고 둘째는 형제자매간에 화평을 이룰 사람이었다.
내가 원하는 미래의 삶은 첫째, 여자로서 목회자인 나를 부담스러워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여겨주는 시어머니였고 둘째, 시댁의 따뜻한 집안 분위기였다.
그렇게 만나 우린 사랑하게 됐고 큰 난관없이 결혼에 이르렀다.
하나님의 은총 아래 행복할 것만 같았던 우리의 결혼생활. 우린 좀 더 배워 더 큰 하나님의 나라를 꿈꾸기 위해 큰 아이를 낳고 미국 유학에 나섰다.
어려움은 그때부터였다. 
유학을 가기엔 다소 늦은 나이였던 남편은 38살, 내 나이는 34살에 전세값만 가지고 떠난 유학.
차량도 없어 추운 겨울날에도 택시비를 아낄요량에 눈길을 걷는 게 다반사였고 식사 또한 가장 저렴한 빵이었다. 이상만 있다고해서 일이 이뤄지는 건 아니었다.
당시 남편은 낮엔 학교를 다니고 밤에는 내가 근무하던 유치원의 건물 청소를 도맡아 학원의 차량까지 운행하며 생활비를 벌었다. 아, 베이비시터까지해야 했던 정말 몇 개의 일을 했는지...
어려움이 참 많았다. 거의 밤낮없이 공부하고 일을 해야하는 남편. 급기야는 어깨를 움직일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병원을 찾았더니 어깨에 돌이 들어 있다는 것이었다.
부자병이라 알려진 테니스 엘보(외상과염)와 골퍼엘보(내상과염). 그런데도 남편은 아프다는 말한마디가 없었으니...
당시 의사의 말 "무척 부유하게 사시는 모양이군요! 이제 골프는 좀 줄이셔야겠는데요!" 결에서 의사의 말을 듣고 있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그래, 이런 남자라면!'
나중에 서울에 와서 수술을 했지만 그때 묵묵히 헌신하는 남편을 보면서 이리저리 좌충우돌하는 나의 야생마같은 기질은 정말 많이도 고쳐졌던 것 같다.
고난 속에서도 희망을 가진 사람은 행복의 주인공이 되지만 고난에 굴복하고 희망을 품지 못하는 사람은 비극의 주인공이 된다는 말. 하나님이 우리에게 준 시련은 어찌보면 우리에게 가장 은혜로운 은총이었다.
남편의 헌신을 보면서 남편은 내 스스로 존경할 수 있는 사람이 돼 있었고 그런 존경심 속에서 사랑과 신뢰는 무한히 커져갔다.
그리고 참 고마우신 분.
결혼해서 지금까지 줄곧 시어머니는 남들에게 “우리 며느리도 목사다” 하시며 늘 자랑스럽게 말씀하셨다. 이런 어머니를 뵈면서 속으론 감사했는데 겉으론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곧 결혼생활 20년이 되는 지금, 뒤돌아보면 우리 둘 다 서로의 원하는 바를 마음에 새기고 섬기며 기도한다. 각자의 두 가지 기도 제목은 점점 더 좋은 모습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릴 완도로 부르시어 완도제일교회에서 목회을 하게 하셨다. 지난 목회에 하나님께서 도우셔서 열심히 사역케 하심을 감사하고 좋은 교인들을 만나 행복한 목회를 하고 있다. 목회 사역 중 담임목사님의 주례를 받기 위해서는 담임 목사님이 직접 교육하는 예비부부를 위한 교육이 있다.
그 교육 중 인상에 남는 부분은 부부는 기성복과 기성복이 만나는 것이 아닌 원단과 원단이 만나 함께 재단해서 멋진 옷을 함께 만들어 나간다는 말씀이다. 서로가 원하는 모습대로 배려해주고 서로가 싫어하는 일은 잊어버리지 말고 기억해서 멀리해줄 때 각 가정마다 아름다운 옷을 지어갈 것이라 믿는다.
끝으로 아이들(준형, 지혜)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 사회에 빛과 소금으로 잘 자라주길 기도하며, 남편에게 "참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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