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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전쟁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1[나의 반쪽]박은실 독자
완도신문 | 승인 2017.02.24 10:30
20년 전 완도를 떠났다시어머니 남편 사주는 물이 부족해 완도 택해월드컵 열기 2002년 만나

20년 전 이맘 때 나는 완도를 떠났다.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그 때 내 나이는 열아홉.
거처를 옮기는 것 치고는 짐이 가벼웠다. 엄마는 배웅하는 내내 광주에서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면서 멀미 때문에 고생할 딸을 걱정하셨다. 완도에서 태어나 자라는 동안 자동차보다는 배를 탈 일이 더 많았기 때문일까.

배 멀미는 한 번도 한 적이 없지만 차를 탈 때는 항상 멀미약은 기본이고 사탕과 생수, 검은 비닐봉지가 호위무사처럼 나를 따랐다. 그 당시에는 버스로 광주까지 2시간 40분이 걸렸으니 멀미를 할만도 했다. 자리를 잡고 앉은 나를 향해 차창 밖에서 손을 흔드는 엄마가 보였다.

버스가 출발을 하기 전인데도 멀미를 하는 것처럼 마음이 울렁거리고 뜨거워졌다.

그렇게 대학생활을 위해 부모님 곁을 홀로 떠났는데 2015년 5월에 다시 완도에 돌아와 새 둥지를 틀었다. 떠난 지 18년 만이었다. 짐가방 2개를 들고 혼자 떠났지만 돌아올 때는 이삿짐 차량에 세간살이를 가득 싣고 남편, 두 딸과 함께 왔다.

사실 이사를 결심하기 전까지 다시 고향에 돌아와 살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지도 못했다. 그럼에도 완도로 거처를 옮기기로 한 결정적인 원인은 바로 남편이었다.

이사 오기 전 나는 둘째를 낳아 육아휴직 중이었고 남편의 외벌이로 네 식구가 아껴가며 생활했다. 아직은 아이들이 어려서 목돈 들어갈 일이 거의 없지만 5년 뒤, 10년 뒤를 생각하면 막막하기만 했다. 또 내가 다시 복직을 하면 형편은 좀 나아지겠지만 아이들을 늦은 저녁까지 시댁에 맡겨야 해서 아이들에게도, 시부모님께도 부담을 주는 상황이 마음에 걸리던 터였다.

건축설계 사무소에서 일하던 남편은 성실하고, 일에 대한 자부심도 크지만 직장생활을 하는 동안 박봉에서 벗어날 방도가 없었다. 결국 사무소를 나와 자립하기로 결정했고, 적당한 곳을 물색하던 중에 우연찮게 완도로 오게 되었다. 남편의 처가가 완도라는 사실을 전혀 모르던 주위 선배들이 ‘완도’가 어떻겠냐고 권해줬기 때문이다. 그는 광주 토박이이지만 명절이나 휴가 때 완도에 와서 낚시하는 것을 좋아했고, 나 또한 낯선 지역보다는 친정집이 있는 완도가 나았기에 제2의 보금자리로 이만한 곳이 없었다.

처음에는 타지로 가는 것을 걱정하시던 시어머니도 사주에 물이 부족한 남편이 완도로 가는 것은 부족한 기운을 채워 줄 기회일 수 있다는 역술인의 말에 한 시름 놓으셔서 우리 가족의 이사는 일사천리로 진행됐다.


문제는 생활비였다. 남편이 이사 오기 전에 시험 준비로 4개월, 이사 와서는 마땅한 사무소 자리를 찾느라 3개월 정도 일을 쉬게 되어 약 7개월을 둘 다 백수로 지내야 했기 때문이다. 모아둔 생활비는 결국 바닥이 났고, 마이너스 통장에 의지해야 했다.

그런데 경제적으로 가장 힘든 이 시기에 우리 부부는 어느 때보다 사이가 좋았다. 이곳으로 이사 온 후에는 사사로운 것을 갖고 싸울 일이 없었다. 광주에서의 긴 생활을 접고 완도로 와서 적응하느라 우리 부부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나름 애를 쓰고 있었기에 조심스러운 마음으로 서로를 돌보았기 때문이다. 상대에 대한 동정과 안쓰러움이 없었다면 이 힘든 시기를 극복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고 우리 부부가 항상 이런 마음으로 살아온 것은 절대 아니다. 월드컵의 열기가 뜨겁던 2002년에 내 직장 동료의 소개로 처음 만난 그는 졸업 작품 준비로 바쁜 학생이었다. 목이 늘어진 후줄근한 티셔츠 차림에 깡마르고 쌍커풀이 진한 그 남자는 내 이상형과는 정반대였다.
두 번째 만남은 그로부터 4개월 뒤. 바쁜 학교일이 정리가 되자 그가 내게 다시 연락을 해 온 것이다. 스물세 살이 되도록 제대로 된 연애 한 번 안 해본 나는 그럭저럭 됨됨이가 좋아 보이니 한 번 만나나보자 하는 심정으로 그와의 만남을 이어 갔고, 그 시간이 쌓여 2007년에 우린 결혼하게 되었다.

연애기간 동안 헤어지고 다시 만나기를 두어 번 반복도 했지만, 이 정도 사림이면 평생을 같이 하기에 적당하겠다 싶어 결혼한 것이다. 그렇게 우리의 연애와 결혼은 불꽃같은 사랑보다는 적당한 사랑과 정이 바탕이 되었다. 하지만 결혼은 현실이었다. 연애할 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 모든 것들이 싸움으로 이어졌다. 부부싸움의 단골주제는 나의 서툰 살림솜씨와 여자 마음을 너무나 몰라주는 남편의 무심함이었다.
우리의 싸움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다음달 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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