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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조류 양식과 유통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어업인이 되고 싶다"

[이사람]고금면 도남리 젊은 어부 강정욱 씨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17.02.24 10:46
  • 수정 2017.02.27 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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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욱 어업인/고금면 도남리

경찰특공대 꿈을 접고 고향으로
공격를 이끌기 위해 선봉에 선 한 남자를 보는 이들의 가슴은 크게 뛰논다. 무장을 한 채 말에 타고 있는 한 남자의 낯빛은 조금의 두려움도 없다. 한 남자의 용기와 무용은 병사들에게 힘을 불어넣는다. 그리고 전투의 시작.
병사들은 모두 한 남자를 따라 앞으로 나아갈 준비가 되어 있다. 공격을 가하거나 공격을 당하거나 둘 중 하나를 하고 있을 때, 한 남자는 비로소 사나이가 된다.
그것이 남자라고 배웠다. 그 남자가 고향에 내려왔다.

완도군 고금면 도남리에서 매생이 양식을 하고 있는 강정욱 씨(35). 해병대(954기) 전역, 해병대캠프교관 2년, 스키패트롤 2년,고금태권도장 운영을 7년 했단다.
고향에 내려오게 된 사연을 묻자, 군대 전역 후, 해양경찰특공대를 준비 하던 중 아버지에게서 다급한 전화가 왔다고 했다. 보증을 잘못 서 집이 경매에 넘어가려고 한다는 전화. 무슨 일인지 확인 차고향으로 내려오자, 아버지의 집과 전답, 그리고 배까지 전부 경매에 넘어가게 됐다고. 어떻게든 집안일을 해결해 보려고 꿈을 접고 고향에서 정착하게 된 것이 지금까지 있게 되었다고.인생에서 가장 어려웠던 시절도 그때였단다. 당시 경매가 진행이 돼 소유권이 전부 넘어간 상황에서 낙찰자가 집을 빼 달라고 행패를 부렸을 때 자존심도 상하고 화도 많이 났던 시절이라고.자신이 가진 건, 집도 돈도 차도 아무 것도 없던 시절. 하지만 성한 몸뚱이와 정신력이 있었고, 사랑하는 지금의 아내. 그리고 그 소중한 딸을 준 장인 어른과 장모님.
결혼식 비용과 신혼여행 경비는 축의금으로 충당하고, 종자돈을 만들어 무엇을 할까 고민을 하던 시기, 답답한 마음에 바다로 가서 생각에 잠겨 있는데 그때 눈에 보이던 매생이 발.

끼니도 잊고 매생이 양식 매달려
마음 속으로 '이거, 한 번 해봐'그렇게 생각하고 매생이 양식을 시작했단다. 시설하는 방법이나 양식하는 방법도 모르고 끼니를 챙겨 먹었는지도 헷갈릴 정도로 무작정 시작했을 때, 곁눈질로 따라하며 추운 겨울 밤 오리가 매생이를 못 먹게 지키며 바다 한 가운데 배 위에서 페인트 통에 불을 편 채 자다가 옷에 불이 붙어 몸에 화상을 입고 배에 불이 날 뻔했던 기억들. 잔잔하게 그 이야기를 들려주며 "지금은 다 추억이 되었네요"하고 웃는다.

인생에서 가장 고마웠던 사람은 김운기 선배란다.
고향에 내려와 부모님의 바다일을 도우며 태권도장을 7년 정도 운영했는데, 시골 생활 초창기 굳건하게 마음을 잡아준 자신의 태권도 스승이자 해병대 선배인 김운기 전 청년회장. 당시 김 전 회장은 자신이 운영하던 태권도장을 아무런 조건없이 정욱 씨에게 물려주며 열심히 살라고 했단다. 지금도 조언을 해주는 인생의 동반자이자 멋진 멘토라고.
완도 해조류에 대한 젊은 생각을 들려달라고 하자, 그는 "완도 해조류를 다른 지역보다 차별화 하여 완도해조류라는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해조류 양식과 유통의 판도를 바꿀 수 있는 어업인이 되고 싶다"고 했다.

또 "해조류 양식 어민들은 상인 의존도가 너무나도 높아 매년 상인들이 가격을 담합하고 있는 실정이라 어민들이 제 가격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도 안타깝고앞으로 해결해야 할 큰 숙제"라면서 재배기술과 작업 환경을 변화시켜 고수익 창출에 노력하겠단다.
지역 청년으로써 지역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냐는 물음에, 그가 말했다.
"청년은 그 지역에 미래입니다."
"요즘, 귀농/귀어 하는 사람들이 많아져 지역사회에 젊은 청년들이 많아졌습니다. 젊은 지역에 활기가 넘치고 어린 아이들이 많아지고 있어서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군에서 다각도로 지원을 해 청년창업이나 여러 종류의 협동조합들이 많이 생겨 서로서로 상부상조 도와가며 동반성장 할 수 있는 지역이 되었으면 합니다."

"예전의 시골이 아닙니다. 지금 지역에 청년들은 고학력자 그리고 생각이 트인 인재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이곳에서 마음껏 꿈을 펼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청년들이 마음껏 연구하고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살고 싶은 고금이 될 수 있도록 저부터 앞장 서겠습니다."

"이제야 부모님의 마음 알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하고픈 말이 없냐고 묻자, 잠시 눈시울을 붉히는 정욱 씨. 그러며 말하길 "아버지, 어머니! 철없던 아들이 어느 덧 자라나 한 여인의 남편이 되었고, 두 아이의 아빠가 되었습니다"
"이제서야 저를 낳아 길러주신 부모님의 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는데, 날이 갈수록 부모님의 주름의 깊이는 깊어지고 허리는 더욱 굽어지는 걸 보면 마음이 너무 아려옵니다."
"제가 이렇게 건강한 몸과 바른 마음가짐을 갖을 수 있도록 길러주신 아버지, 어머니께 이 자릴 빌어 정말 존경과 감사, 사랑한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형 몫까지 더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그리고 나만 보고 살아가는 와이프... 정말 사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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