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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일기’를 보고

[에세이]배준현 / 고금주조장 대표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02.24 12:04
  • 수정 2017.02.24 18: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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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현 고금 주조장 대표

하루 일을 마치고 쉬는 시간, 즐겨보는 프로그램이 하나 생겼다. 그것이 본방사수한다는 요즘 드라마가 아닌 옛날꼰날에 방영했던 케케묵은 재방 드라마다. 안방극장에서 오랫동안 사랑을 받아온 ‘전원일기’(1980년부터 2002년까지 방영된 최장수 농촌드라마)를 한 TV채널에서 다시 보여준다. 배우들의 파릇파릇한 젊은 얼굴, 지금은 보기 어려운 살림살이, 마당 한켠엔 마중물을 넣어 물을 퍼올리는 펌프, 시냇가에서 빨래하는 아주머니들, 가을걷이하는 들녘, 장면마다 반갑고 놀랍다.

드라마의 배경은 80년대 후반, 지금은 감히(?) 생각하기 어려운 일, 방안에서 담배피우거나 아내에게 큰 소리치는 장면이 흔하게 나온다. 향수를 불러 일으키다가도 리얼리티도 있다. 수입농산물이 밀려오는 것을 걱정하고 농약, 화학비료에 병든 환경을 걱정한다.

풀베고 썩히고 김매는 거름농사를 지을까? 경지정리하고 트랙터, 콤바인사서 기계화 영농을 할까? “간단하게 농약치면 될 일을 뭘 그렇게 힘들게 농사하냐.”며 마다할 때 김회장(최불암 분)이 꾸짖는다. “농군이 일을 무서워 해? 옛날처럼 무슨 가래질을 하니, 써레질을 하니? 땅이 먼저 좋아져야 해. 하루 아침에 안돼! 에이.” 독재에 맞싸워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시작하던 때, 도시에서 부대끼던 나는 ‘전원일기’를 보며 고향생각을 달래곤 했다. 시골을 떠나온 도시인들에게 요즘 말하자면 ‘힐링’이었다. 시간은 흘러 시골로 돌아왔다.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모르고 살아갈 때가 있다. 그러다 문득, 오래된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깨닫는다. ‘맞아, 그땐 그랬지’하며 강산이 세 번 바뀐 뒤에야 고개를 끄덕이며 감회에 젖는다.‘전원일기’속 옛사람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 드라마가 지금까지 계속 이어졌다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양촌리가 서울 가까운 곳이라 땅값이 몇 배 올랐겠고, 부지런한 복길이네는 틀림없이 부자가 됐을 것이고......’ 그들은 지금 행복할까? 지금 우리는 그때보다 행복한가? 온갖 고생다해서 가난을 이겨냈지만 가진 것이 많을수록 이웃을 생각하는 정이나 나눔, 예와 원칙을 잃어 버린 건 아닐까?볼 만한 드라마가 없다.

하물며 농촌드라마는 더욱 그렇다. ‘전원일기’는 오랫동안 방송한만큼 이야깃거리가 바닥나고 시청자들도 얼굴을 돌리더니 마침내 막을 내려야 했다. 시대가 바뀌고 가치관이 달라졌기 때문이리라. 그렇다고 농촌이 없어진 것도 아닌데 현실을 깊숙이 이야기하고 도시와 농촌을 이어주는 일,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다.

지금 농촌은 어떤가? 늘어나는 귀촌, 국제결혼, 노령사회같이 달라진 환경에서 지자체들은 인구를 늘리는 경쟁을 하고 도시와 농촌사이 관계망을 만들고 농수산물 거래와 관광홍보에 힘쓰고 있다. 여기에 ‘전원일기’같은 드라마가 큰 역할을 할 것이다. 서울에 몰려있는 것들을 지방으로 가져오고 지방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지역의 현실을 알차게 채운 프로그램도 많이 만들었으면 좋겠다.

사라진 물건들 사라진 풍경들, 그속에서 사는 사람들도 사라졌지만 옛시대가 남긴 촌스러움이 너무 그립다. 하루가 다르게 새로운 물건과 새롭게 살아가는 방식이 쏟아지는 요즈음, 욕망으로 얼룩진 막장이야기보다 30년전 ‘전원일기’같은 사람냄새나는 이야기가 더 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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