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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을 바라보는 눈

[나의 살던 고향은]배준현 / 고금 주조장 대표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03.24 17:55
  • 수정 2017.03.24 1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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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현 / 고금주조장 대표

 ‘세상은 편짜기다. 네 편 내 편 나누고 힘을 겨루는 거다.’ 누군가 내게 세상 이치를 이렇게 표현했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한편에 서서 반대편으로 돌팔매를 던지며 사는 거라고. 세상이 그랬는지 내가 그렇게 생각해선지 세상은 갈등이 넘치고 서로 미워했다. 내가 좋아했던 사람들은 자기들끼리 서로 좋게 지내지 않았다. 늘 안타깝던 일이었다. 우리는 왜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힘을 합치지 못할까?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 부재’에서 비롯되었다고 결론지었다. 평행선을 그은 듯 가까이 다가서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만의 생각과 믿음으로 상대를 무시한다.
남을 바라보는 눈에 문제가 생긴다.

다른 사람의 느낌이나 생각, 행동을 이해하지 못하고 오로지 자신만의 주장을 강요한다. 이른바 ‘확증편향’(確證偏向,Confirmation bias)-원래 가지고 있는 생각이나 신념을 확인하려는 경향성이다. 쉬운 말로 “사람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위키백과)-에 빠진다.

누구든지 자기위주로 생각하는 것이 강하면 신념이 될 수도 있고 광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확증편향에 자유로울 수 없다.

내 행복을 찾아 한편에 서서 반대편을 미워하고 배척하고, 나와 같이 반대편의 사람들도 그들의 확증편향에 걸려 있다. 나의 고민은 이런 것이다. 싸워서 제압하거나 아니면 복종해야만 끝나는 것인가? 그러기엔 민주주의 가치가 우습다.

다양성을 존중하고 타인의 자유를 존중하는 것이 민주주의다. 심리학자 레이먼드 니커슨(Raymond S. Nickerson)은 이렇게 말한다. “확증 편향은 상당히 강력하고 침투력이 좋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 편향이 개인, 집단 또는 국가 차원에서 발생하는 온갖 마찰과 논쟁과 오해의 중요한 부분을 형성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이해하고 다가서는 일이야 말로 소통의 첫걸음이다. 자기연민과 자기주장에 빠져 자기가 바라는 대로만 모든 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확증편향에 걸린 사람들은 소통없는 세상을 만든다.

이제 확증편향에 걸린 마음을 치료해야 한다. 다른 사람을 이해 하려면 먼저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마주 보아야 한다. 나와 생각이 다를지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이자는 것이다. 한 정치인이 ‘선한의지’를 말했다가  빗발치는 비난을 받았다. 하지만, 난 그의 생각이 옳다고 생각한다.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소통할 수 없으며 소통없이 나와 다름을 받아들일 수 없으며 소통없는 진영논리에 갇혀 민주주의는 한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다. 확증편향에 걸린 우리자신의 고정관념과 자신만을 위한 잣대를 버려야 한다. 내가 너이고 네가 바로 나인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려면 세대간 계층간 문화간 지역간 차이를 포용하고 공감능력을 키우는 노력을 해야 한다.

탄핵정국에서 대선정국으로 넘어가는 마당에 통합과 협치를 얘기하면서도 이전투구가 점입가경이다. 상대방을 헐뜯고 모함하고 말한마디 꼬투리 잡고 상대진영을 까대고 있다. 그 속에서도 진지한 고민을 찾아낸다. 세상일이 으레 그러려니 하고 다툼은 있으나 상대를 인정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나중에 마주보고 웃을 수 있다.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나의 몫이고 다른 사람의 선택도 나의 선택처럼 소중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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