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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넘실거리는 대양은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

동원산업(주) 창사 이래 최대 어획량 거둔, 소안 출신 최석진 선장

  • 박주성 기자 pressmania@naver.com
  • 입력 2017.04.29 15:08
  • 수정 2017.04.29 1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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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석진 / 동원산업(주) 테라카호 선장


“바다 사나이들은 좀 거칠기는 해도 잔재주를 부리지 않아요. 바다라는 게 이유를 들어주거나 사정을 봐주지 않거든요. 바다에서는 실력이 없으면 죽는 겁니다”
원양어업으로 세계적인 일가를 이뤄낸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은 바다에서 배운 기업경영 철학의 정수로 ‘정도 경영’을 강조하곤 했다. 물론 실력이 밑바탕 조건으로 깔려야 되지만, 바다는 일한 만큼 가져갈 수 있다는 말로도 풀이가 가능하다.

얼마 전 유력 일간지에 ‘연봉 12억 받는 고졸 참치잡이 선장’이라는 타이틀로 대문짝만하게 보도된 동원산업 최석진 선장(44). 2016년 1만7,800t으로 연봉 8억7천만원, 2017년 2만493t이라는 동원산업 48년 역사상 최대 어획량을 기록하며 연봉 12억7천만원을 받았다. 수산업계 역대 최고액으로 회사 최고 경영자인 이명우 사장의 3배에 이른다. 김회장이 강조한 ‘정도경영’의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표본인 셈이다.

그러나 그가 그냥 운이 좋아 동원그룹 창사 이래 최대 어획량을 기록한 것은 아니다. 최 선장은 소안도 가학리에서 김 양식을 하던 부모 밑에서 6남매 중 막내로 태어났다. 어려운 가정환경에 일찌감치 돈을 벌 목적으로 사회에 진출하고자 병역특례 조건과 원양어선을 탈 수 있었던 완도수산고등학교로 진학했다. 친구들이 입시 준비로 한창이던 1991년 8월 실습 항해사로 700t급 어선을 타고 남태평양 조업에 나서 10년만에 동원산업 최연소 선장이 되기도 했다. 이후 그는 누구보다 고졸의 한계를 벗어나려고 절치부심해 왔다. 2008년과 2015년 최우수 선장상, 2016년 선단 리더상 등은 그의 노력의 단면이다.

강진농고를 나와 국립부산수산대(현 부경대)를 졸업하고 실습 항해사로 1년, 2등 항해사로 1년, 1등 항해사로 1년을 지내고 승선 3년만인 25세에 젊은 선장으로 승진한 동원그룹 김재철 회장 이상은 아닐지 모르지만, 가히 그에 비견될 만하다 할 것이다. 김회장과의 비교가 머쓱했던지 “그때는 한국 원양어업이 걸음마 단계라 김회장님처럼 파격적인 승진이 가능했을 겁니다. 지금은 그때와 달리 경쟁이 치열해 선장하기가 쉽지 않다”고 최 선장은 인터뷰 도중 너털웃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김재철 회장이 동원산업을 창업한 무렵인 1968년경 국내 원양업체는 30여개였지만 약50여년이 지난 현재까지 명맥을 이어오고 있는 기업은 동원산업과 한성기업 딱 둘뿐이다. 너도나도 돈벌이가 된다고 해서 뛰어들던 시절이 있었는데, 요즘 선장들 중에 수산대 출신이 없을 정도로 인기가 떨어진 것을 보면 격세지감이라 할 것이다. 거기다 중국은 진작부터 바다에 눈을 돌려 원양어업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는 실정이라 적잖은 위협이 되고 있다.

한국 원양어업의 최선전에서 “바다는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다. 젊은이들이 일자리가 없다고 탓하지 말고 대양에 도전하기 바란다”고 말하는 우리 고장 출신 최석진 선장을 만나 그의 삶과 함께 과연 바다에 미래가 있는지 들어봤다.

 ●동원산업 48년 역사상 최대 어획량을  기록했다.
국내외 수산업계를 통틀어 역대 최고 어획량이라고 회사에서 그러더라. 참치캔으로 치면 온 국민에게 한 개씩 돌리고도 남는 7,550만개를 만들 수 있는 양이다. 1회 만선이 1,100t이니  대략 보름마다 1회씩 만선으로 꾸준히 1년동안 잡아 올려야 가능한 일이다.
열심히 하다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인센티브로 잡은 만큼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에 기분이야 좋다. 또 남들이 못한 일을 해내서 영광이다.

●참치를 많이 잡는 본인만의 특별한 비결이라도 있나?
참치잡이는 먼저 어군을 탐지해 있는 곳을 파악한 다음 고기가 가는 방향에 그물을 쳐 못나가게 해 포획을 한다. 인공 어초로 모여든 고기를 주로 잡는 외국계 선단과는 다른 방식이다. 보통 참치 본진이 들어온 뒤 그물을 걷어 올리는 타이밍이 어획량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보면 된다. 오래 하다보니 고기 습성도 파악이 되고, 촉이 생겼다.

●고향의 소안고를 가지 않고 완도수고로 진학한 이유가 있었나?
일찍부터 돈 벌고 싶은 마음에 완도수고로 진학했다. 어려서 가정환경이 부유하지 못하고 어려웠다. 그러다보니 병역특례가 있고, 졸업하자마자 원양어선을 타 돈을 벌 수 있는 수고로 진학하게 됐다. 또 바깥으로 나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좀 더 큰물에 놀고 싶은 것이 섬사람들의 로망 아닌가.(웃음)

●10년만에 동원산업 최연소 선장(만29세)이 됐더라.
1969년 일본에서 빌린 참치 연승선 1척으로 시작한 동원산업은 현재는 총 42척의 선단을 운영하는 회사로 성장했다. 명실공히 최대, 최고의 선단으로서 대한민국 원양어업계를 이끌어 가고 있다. 이런 곳에서 경쟁이 치열해 선장이 되기는 쉽지가 않았다. 하루 4시간 이상 잠을 자지 않는 독기로 노력해야만 했다.

●존경하는 인물이 있는가?
우리 회사(동원그룹) 김재철 회장(83)님으로 도전, 개척이라는 말이 딱 어울리는 경영자다. 한국 수산업계의 입지전적 인물로 여러 모로 존경스러운 점이 많은 분이다. 또 직접 원양어업으로 사회생활을 시작하셨던 분이시라 바다를 누비는 우리들에게 롤 모델 같은 분이다.

●원양어업이 젊은이들에게 아직 비전이 있는가?
원양어업도 예전과 다르게 작업 환경이 많이 좋아졌다. 그래도 승선한지 한두달 만에 그만두는 실습 항해사들이 10명 중 7명이다. 그만큼 힘든 직업이다. 그러나 젊은이들이 육체적으로 힘든 일을 안하려는 것도 문제다. 넘실거리는 대양은 무한한 가능성의 공간이다. 하려고하는 의지만 있다면 기회를 잡을 수 있는 곳이 바다다. 참치가 우리나라 수산물 수출품목 중 1위다. 지난해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3등 항해사가 어획량이 많아 인센티브로 1억원이 넘는 연봉을 받았다. 바다는, 원양어업은 철저한 능력제다. 일자리가 없다고 탓하지 말고 바다에 도전하기 바란다.

●완도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달라.
나는 목표한 바를 이뤄냈다. 앞으로 후배들을 잘 양성해 제2의 최석진을 키워내고 싶다. 앞서도 원양어선에 완도 후배들 5명이 배를 탔다. 완도 후배들이 제일 일을 잘한다. 그냥 있는 그대로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상황이 변하지 않는다. 우리 후배들에게 도전하라고 얘기해 주고 싶다. 나는 항상 한국 원양어업의 황금기를 함께 재현할 후배들을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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