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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놈, 참! 그 기개 한번 가상하구나

[관음암 특집]관음암 가는 길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17.05.29 07:24
  • 수정 2017.05.29 0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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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에 올라가서도 한참을 헤맸다.
이쪽인지 저쪽인지.
이름난 명당터. 거기에 범해선사와 다산 정약용의 발자취까지 남아 있다.
대가들은 그곳에서 무엇을 보았을까?
박주성 기자의 말. "이번 주 1면은 상왕봉 관음암에서 바라본 완도항이 어떨까요?"
그래 가보자.
가는 길은 몹시도 설레였다.

한참을 헤맨 끝에 작은 오솔길을 잡아 초입에 들어서자마자, 무엇인가 관통하듯 찌리릿!
아! 번개가 찾아올 걸 모른 채, 정수리에서부터 귀밑머리를 타고 목덜미를 지나 견각골 사이로 순식간에 빨려 들어가는 전율같은 섬광. 붉은심장이 그 섬광을 제대로 빨아 먹었는지 순식간에 가슴이 맴논다.

관음암이 서 있던 자리.
탁 트인, 완도항. 일품이다. 마치 경주 석굴암을 찾았을 때 동해의 푸른 물결이 온몸으로 쏟아져 오는 듯한 감상.
아, 당신 앞에만 서면 이대로 한 개의 돌이 되고 싶고, 그리해 당신 앞에만 엎드리면 이대로 잠이 들고 싶은, 그래서 감히 우러러 보지도 못한 채 눈을 감게 되는 곳.
건데, 어디가 명당의 요처일까?
 

다산 정약용도 언급했던 관음굴.
도치바위 중앙에서 좌측으로 자리한 약수터 위쪽으로 보이는 관음굴.  
잠시 경건한 마음으로 예를 표하고자 눈을 감고 목례를 올리는데, 그 순간, 영감처럼 8자 형태의 이미지가 그려지는 게 아닌가! 8자라. 왜, 8자가 떠올랐을까?
 

 20대 중후반, 한창 풍수학에 심취해 전국의 이름난 명당터를 순례하던 중 만나게 된 대무당. 무당은 자신을 일컬어, 왕과 제사장이 일치했던 단군의 진전을 받은 무당이라고 했다. 당시 대무당에게 들었던 말.
"풍수라는 게 학문적으로 살피기에 앞서 제대로 된 명당에 가면 그냥 느껴지는 기(氣)가 있어요. 영이 맑은 사람, 도력이 높은 스님이나 신실한 종교인들, 또는 산을 정말 사랑하는 산악인이라면 그냥 느끼는 기운이죠" 
"그 명혈에 서면 영감처럼 8자가 그려집니다. 이게 바로 태극이지요"
"우주 만물의 근원인 음양이 완전히 결합된 그곳이 풍수학에서 말하는 명당이고, 소위 기도처라고 불리는 곳이지요"

관음암 칠성단.

우리에게도 친숙한 프랑스의 소설가, 베르나르 베르베르는 '뇌'에서 그런 말을 했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사랑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음을 깨달았다. 첫째는 에로스, 곧 남녀 간의 육체적 사랑이고 이는 성기와 관계있다. 둘째는 아가페, 곧 감정적 사랑이며 이는 심장과 관계가 있다. 셋째는 필리아, 곧 정신적 사랑인데 이는 뇌와 관계가 있다." 고. "이 3가지가 하나로 결합되면, 8Hz의 파동이 나타나는데, 이 파동은 천천히 폭발하는 일종의 니트로글리세린이 된다."
"모든 전설에서 말하는 위대한 사랑, 숱한 예술가들이 설명을 시도했던 위대한 사랑이 바로 이 성기와 심장과 뇌(정신) 등 이 3가지가 하나로 결합된 사랑이다." 이라고.
"차크라 2와 차크라 4와 차크라 6이 혼연일체가 될 때 생성되는 8Hz는 이 우주의 존재계를 생기롭게 하는 마법의 주파수다"고.

이 8이란 무한대는 우리가 수학에서 배운 뫼비우스 띠와 같다.
무한대의 상생 에너지를 생성한다는 8Hz. 그런 생각이 스치면서 관음굴을 살폈다. 어느 누군가 소원을 빌었던 흔적이 눈에 띄었다.

 그 순간, 이렇게 좋은 터라면 마음속에 염원하는 소원 하나쯤 또한 들어주겠다 싶어 한걸음 뒤로 물러나 위쪽을 바라보니, 인상 깊은 장면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바위틈에서 자라고 있는 나무.
족히 100여년은 넘었을 법한 나무.
'풍란 정도라면 바위틈에서 자랄 수 있었겠지만, 어떻게 나무가 저럴 수 있을까?'
'그 놈 참! 그 기개 한 번 가상하구나!'
나무의 생명력을 천천히 음미하고 있자니 불현듯 성현의 말이 떠오른다.
"진정한 기도는 절대로 구걸하는 기도가 아니다. 기도는 어떤 요구로써 실현되지 않는다. 단지 감사함일 뿐이다."고.
 

 아, 그랬지... 이 존재 전체에 대한 감사.
이 존재계의 모든 건 살아 있고, 모든 것은 생명으로 충만한 채, 기쁨으로 고동치고 있다. 
저 나무를 보라. 저 나무의 푸른 잎을 보라. 그리고 산을 보라. 별을 보라. 바다를 보라. 그들은 모두 한데 어울려 지금 이순간을 기도하고 있지 않은가!
단 한 마디의 말도 내뱉지 못하지만 그들은 바람 속에서, 빗방울 속에서, 햇빛 속에서 한데 어울려 춤추고 있다.
어떤 불평도 어떤 요구도 없다. 있다면 바로 이 순간, 생명에 대한 감사함. 
그 생명과 푸르름이란 결코, 자신이 만든 것이 아니다. 그것은 존재 자체로부터 부여 받은 선물. 그래서 지금 난, 무엇도 말할 수 없다. 오직 이 순간이 될 뿐이다.
침묵하는 내 영혼과 내 가슴의 향기로써.
 

그래. 맞다.
다산이 말했던, 등 뒤에선 솔향기가 솔솔 불어오고 내 앞에선 푸른 물줄기가 그윽하게 다가오니, 염원이 무슨 대수랴!
내려오는 길. 8자의 영감 떠올랐다. 뫼비우스의 띠. 어떤 사물이나 생각은 한 면만 있는 것도, 그리고 그 반대편만 있는 것도 아닌, 존재하는 모든 공간이 하나로 이어져 있고, 서로 통하는 길은 무한대로써 끊임없이 연결되며 교류하고 있지 않는가!
관음암은 그런 깨달음을 가진 땅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 자꾸 눈에 밟히는 바위틈 속에서 자라는 나무.
그의 숨에서 나오는 음절의 끝소리마다 영혼의 숨결이 울리는 듯 했다. 그 숨결은 귀 속에서 파장을 일으킨 후, 붉은심장을 마구마구 두드리다가 몸 속 어디론가 사라지기를... 나는 내 속에서 삶을 향한 창을 열며 존재의 진한 경련 속에서 꿈을 꿀 뿐이다.
그래서 오로지, 지금 이 순간을 신음하면서 온 힘으로 살아가는 사람에게만 동의할 수 있겠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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