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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순간, 가슴은 어찌나 두근거리던지요 2

[나의 반쪽]박옥남 독자(신우철 군수 부인)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07.01 18:20
  • 수정 2017.07.01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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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이 그렇게 찾아왔다. 사랑이 손짓하거든 그 사랑을 따르라고 했던가! 그 길이 아무리 험난하고 가파르다 할지라도 사랑의 날개가 나를 감싸거든 내 몸을 내맡기라고.
설령 그 날개 깃 속에 숨겨진 칼이 나를 찌를지라도.

내게도 그런 사랑이 찾아왔다. 둘의 사랑이 얼마나 애틋했는가하면, 간혹 남편이 교육을 받기 위해 부산으로 가야할 경우, 그럴때면 남편은 광주에서 부산으로 바로 가지 않고 일부러 서울역까지 올라왔다가 또 다시 부산으로 내려갔다. 나와 함께 부산으로 가기 위해서.

난 서울역에서 남편을 기다렸다가 남편을 만나 다시 부산까지 함께 동행했다. 부산에 가면 남편만 내려주고 나는 다시 서울로 올라오고. 지금 생각해도 참으로 애틋했던 우리의 기차 데이트. 우리는 이렇게해서라도 데이트할 기회를 만들었고, 조금이라도 함께 있고 싶어서 무던히도 애를 썼다.

서울과 광주. 당연히 자주 만날 수가 없었다. 지금처럼 휴대폰이 흔한 시대가 아니었기에 그리움의 애틋한 마음을 손편지로 대신 전달하기도 했다. 특히, 자상한 성격의 남편은 7~8장이 넘는 장문의 손편지로 그리운 마음을 전하는 것을 좋아했다. 심지어는 우리 둘이 함께 있을 때조차 연필로 글을 써가며 대화하기를 즐겨했다. 힘들게 만났는데 서로가 아닌 다른 곳에다 마음과 시선을 빼앗기는 것이 그만큼 싫었던 것이다. 마음을 모아 연필로 사각사각 써내려가며 전하던 그때 그 시절의 애틋함이 지금도 손끝에 아련히 남아있는 것 같다.

그런데 이렇게 손편지로 사랑을 키워가던 우리에게 그 편지로 인해 큰 위기가 찾아왔다. 당시 경찰공무원이셨던 친정아버지에게 그만 편지가 발각되고 말았다. 아무런 연고가 없던 완도에서 자주 편지가 오는 것을 이상히 여긴 아버지는 결국 그 연유를 알게 되었고 극구 반대하셨다.

아들이 없었던 아버지는 평소에도 “나한테는 너희 밖에 없으니 너희는 시집을 가더라도 나와 가까이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시며 늘상 딸들과 가까이 지내고 싶어 하셨다. 그런 아버지에게 완도는 너무나 멀고도 낯선 곳이었다. 더구나 가난한 집안의 8남매의 장남이었으니, 딸이 시집을 간다면 고생할 것이 뻔한데 딸 가진 아버지의 마음이 오죽하셨을까.

지금도 그때의 아버지 모습을 떠올리면 짠하고 미안한 마음이 가시질 않는다. 그러나 아버지의 반대 또한 남편을 한 번 만난 이후론 말끔히 사그라졌다. 남편은 처음 만난 자리에서 앞으로 10년 안에 5급 사무관이 되겠다고 아버지께 호기롭게 약속했는데 그 어려운 자리에서 이 정도의 패기를 가진 사윗감이라면 딸을 맡기기 충분하다고 생각하셨던 모양이다. 그날 아버지는 집에 돌아오셔서 어머니에게 정말 좋은 사윗감을 얻게 되었다고 자랑까지 하셨다고.

결혼 후, 남편은 38살, 당시로서는 최연소 사무관시험에 합격하며 아버지와의 약속을 지켰다.
한편, 교제를 시작한 지 2년쯤 되었을 무렵 남편은 내게 프로포즈를 신청했다. 철이 들 무렵부터 행복한 결혼생활에 대해 상상해 보았던 나는 “부부가 함께 노력하고 서로 아껴줄 수 있다면 행복한 결혼생활이 이루어질거야”라는 지금 생각해도 제법 어른스러운 결혼관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8남매 장남의 며느리로서 집안 일을 모두 책임질테니, 당신은 바깥일에 최선을 다해 주세요.”라며 그의 프로포즈를 받아 들였다.

이렇게 나의 결혼생활은 완도에서 시작되었고, 지난 40년 동안 나는 시부모님과 형제들에게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리고 공직자의 아내로서 조신하게 내조하며 살아왔다. 가끔은 친정과 멀리 떨어져 있어 쓸쓸하고 외롭다고 느꼈던 적도 있었지만, 좋은 이웃들의 따뜻한 배려와 사랑 덕분에 외로움을 극복해 낼 수 있었다.

이젠 원래 고향인 서울보다 더 많이 살아온 진짜 내 고향인 완도가 내게는 너무도 고맙고 소중한 곳이다. 내가 사랑하는 많은 것들이 우리 완도에 있고, 내게 그것들은 정말이지 봄물보다 깊으리라! 가을 산보다 높고 달빛보다 빛나며 돌보다 굳으리라!

본 코너는 현대사회에 더욱 상실해가는 가족애를 회복하고 감동의 부부애를 위해 기획되었다.
박옥남 신우철 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독자 여러분의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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