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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부지 몸도 약하신디, 인자는 술 자시지...

[에세이-고향생각]배민서 / 완도 출신. 미국 거주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07.01 18:43
  • 수정 2017.07.01 1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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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쑥해진 소녀가 말한다.
"그동안 앓았다."
"그날, 소나기 맞은 탓 아냐?"
소녀가 가만히 고개를 끄덕인다.
소녀가 분홍 스웨터 앞자락을 내려다본다. 거기에는 검붉은 진흙물 같은 게 들어 있었다. 소녀가 가만히 보조개를 떠올리며 묻는다.
"그래, 이게 무슨 물 같니?"
소년은 스웨터 앞자락만 바라본다.
"그날, 도랑을 건너면서 내가 업힌 일이 있지? 그때 네 등에서 옮은 물이다."
소년의 얼굴이 확 달아오른다.
...중략...
잠결에 아버지 어머니가 나누는 말소리가 들린다. "어린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아?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달라고......"
- 황순원의 [소나기] 중에서

반세기 가까이 교과서에 실린 이 단편소설은 소나기처럼 짧게 내리다 그쳐버린 슬프고 아릿한 사랑을 마치 맑은 수채화처럼 그려내 긴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이 소설을 며칠째 책상 위에 얹어 두었다. 그리고 이른아침 죽마고우가 내게 주었던 차를 우려내 그 향긋함이 집안 곳곳을 어루만지게 하였다. 아련히 피어나는 풍경들 속에는 삼 사십년 전의 꼬불꼬불한 논뚝길과 미나리꽝, 골목길들이 주마등처럼 펼쳐지고 아득하게 여울져 흐르는 옥빛 섬들과 바다가 그림처럼 펼쳐진다. 많이 힘들었던 어린시절 , 심장이 찢겨져 붉은 피를 왈콱 쏟아낼듯 시리고 아파서 더 그리운 걸까? 아니면 태어나 처음 바라본 세상이기에 각인된 아기오리처럼 고향을 찾아 헤매는 걸까?
열 세살을 넘기던 이듬 해, 엄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난 후 아버지와 나는 시름시름 마음의 병을 앓고 있었다. 아버지는 술로 마음을 달래기 시작했었고, 나는 아버지마저 잃을까봐 노심초사(勞心焦思)하며 아버지를 살피던 시기였었다.
"아부지! 몸도 약하신디 인자는 술 자시지 마랑께요~"
 50킬로도 안되던 체구로 술을 한잔이라도 입에 대시면 멈출수 없으셨던 아버지의 알콜중독은 나의 간담을 녹이고도 남았다. 나는 병약한 아버지에 대한 걱정으로 이방인같은 학창시절을 보냈었다. 그러나 그 시절의 깊었던 나의 시름들은 어쩌면 타인들을 이해하며 느낄수 있게 만든 강도깊은 훈련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 어린시절 덕분이었는지 지금에 나는 한국인들 뿐만 아니라 세계 각 나라 사람들의 표정들과 몇 마디의 대화만으로도 그들을 읽어내고 최선의 간호를 줄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당시 나는 매일 저녁이면 동네 선술집을 기웃거렸고 친구분들의 열려진 사립문 안쪽을 들여다보며 술 취한 아버지를 찾아 집으로 모시고 왔었다.
 유난히 완고하셨던 아버지가 나의 걱정어린 잔소리를 들으면서 "막냉아! 너만 아니믄, 나도 느그 어메한테 갔으믄 참 좋겄다!" 하시며 눈물을 훔쳐내시던 우리아버지.  장사를 하시던 큰언니집에서 집안일을 거들며 공부를 시작하겠다고 완도를 떠난지 5개월 만에 아버지는 세상을 떠나가셨다. 그리고 피골이 상접한 차디찬 시신으로 막내딸이 걱정되서 눈도 못 감으시고 나를 기다리고 계셨다. 단 한번도 "사랑해!" 라는 말도 하지 않으셨고 풍족한 경제적인 후원도, 그리고 기댈수 있을만큼 듬직한 품도 없으셨다고 생각했는데, 인생을 살아갈수록 아버지의 사랑은 내 영혼을 시리게 적셔온다.
아버지가 큰언니에게 보낸 유서같은 마지막 편지를 지난 한국방문 때에 전해 받았었다. 피보다 찐한 아버지의 아린 눈물방울들이 여기 저기에 떨어져 지울수없는 흔적으로 남겨진 사랑 ......
나는 오늘도 별을 헤아리는 마음으로 아픈기억들과 옛 추억들을 끌어안은채 먼 이국 땅 텍사스에서 아버지를 불러본다. 문득 귓가에 들려오는 쓰르라미 소리는 어찌 저리 섧게도 울어 대는가!

배민서 / 완도 출신. 미국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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