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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첫사랑이 해당화로 피어난 곳

[여름 특집] 쉼, 이곳 어때요? 1. 신지 명사 갯길 70리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07.07 20:32
  • 수정 2017.07.07 2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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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본격적인 휴가철을 맞아 완도군민이 추천하는 완도의 휴가지 6선을 소개한다.

 

완도 신지도와 고금도를 잇는 장보고대교의 모습이 보인다. 사진에서 오른쪽이 유배객들이 신지도로 건너온 송곡항이다. 종두법으로 유명한 지석영의 호가 송곡인데, 이곳에서 유배된 것에서 지었다.


귀향 간 아버지를 그리워하는 어린 딸. 그 아버지가 수박을 참 좋아했단다.
수박을 사들고 그 먼 길을 갈 수 없어 8살 난 딸 아이는 생각해낸 건, 편지에 수박씨를 붙여 아버지에게 보내는 것. 아버지가 그곳에 씨를 심어서 수박이 자라나면 드시라고.
늘그막에 얻은 막내딸의 하는 모양새가 그렇게 사랑스러울 수가 없었다.

딸 아이 목소리는 어찌 그리 맑은고,
용모와 맵시 어찌 이리도 고운가!
성질은 어찌 그리 슬기로우며,
재주마저 어찌 그리 많은지
지나는 사람 모두 한 번씩 안아주니,
아비로서는 더욱 사랑스럽네

동국진체로 빛나는 원교 이광사.
유배지에서 감기에 걸려 고생하던 원교는 이부자리에 누워 시를 썼는데 이 편지를 받는 어린 딸의 나이는 겨우 여덟 살이었다. 누워 있노라니 가족이 떠오르고, 누구보다 먼저 어린 딸의 모습이 아른거린다.
이광사는 어린 딸이 너무나 사랑스러웠다. 더욱이 자신의 재주를 이어받아 글씨에 재주가 있었으니 그의 기쁨은 얼마나 컸을까?
그는 이런 딸을 명필 왕희지의 아들 왕헌지에 빗대 어린 딸을 은근히 자랑하였으니, 그 감정이 다소 지나칠 정도지만 아버지의 애틋한 마음이 전해져와 나 또한 갑자기 아버지가 보고싶다. 
신지면은 조선시대 40여 명이 유배되었다고 전해지는데, 유배 온 가족들은 신지면을 얼마나 목매이며 그리워하였을까?
 

완도 신지도의 주산 상산 정상.


신지면은 원교 이광사 외에도 조선 후기(1694년)의 남인 정치가 목내선. 당시 좌의정의 자리에 올랐던 목내선은 인현왕후가 복위하고 서인 정권이 들어서면서 신지도로 유배되어 5년간 위리안치(가시나무나 탱자나무로 울타리를 만들고 죄인을 가둠)형에 처해졌다. 이후 신유박해로 아우 정약용과 함께 유배형을 받은 정약전도 흑산도로 가는 도중 신지도에서 약 8개월간 머물렀다.
철종 때 안동 김씨인 김좌근과 김문근의 세도정치를 비판하다 신지도로 유배된 조선후기의 문신 이세보는 이곳에서의 생활을 일기형식으로 기록한 <신도일록(薪島日錄)>을 남기기도 했다. 종두법으로 잘 알려진 송촌 지석영도 신지도에서 5년여를 머물렀다.
 

명사갯길 70리는 2015년 해양수산부 <해안누리 길>로 선정됐다.


이번 휴가철에는 그들의 삶의 애환과 숨결이 묻어 있는 신지 명사갯길 70리를 싸목 싸목 걸어보면 어떨까?
이곳 갯길은 좁은 오솔길과 도로가 만난다. 도로면에 화살표를 그려놓아 쉽게 방향을 잡을 수 있어 그리 어렵지 않다. 강독 1교를 왼쪽에 두고 조금만 걸으면 오른쪽에 세워둔 이정표를 따라 다시 숲길로 들어서게 된다. 산길의 초입은 약간은 급경사가 이어지지만 이내 평탄한 길이 나타난다.
가다보면 언덕으로 오르는 길과 다소 가파른 오르막길도 있지만, 오롯이 오솔길의 정취를 즐기기에 참 좋을 듯하다.
명사갯길은 신지도의 나지막한 산길을 걸으며 드넓은 다도해가 그려내는 풍경화를 오롯이 느낄 수 있는 길이다.
 

서남해안 최고의 해수욕장인 신지 명사십리 해수욕장은 전국 최고의 음이온량을 자랑한다.


뿐만 아니다. 이 길을 따라가다보면 3.8km의 명사십리 해변이 나오는데, 그곳에 도착해 사정없이 푸른 바다로 뛰어들면 여름 무더위를 쉽게 날려 버릴 것이다.
길 곳곳에서 만나는 작은 포구와 갯바위는 또 어떤가? 미끼 하나 끼우지 않아도 낚싯대만 드리우면 세월이 절로 낚인다. 이렇게 길을 걸으며 멀티 바캉스를 즐길 수 있는 곳이 바로 명사갯길이다.
섬들을 조망할 수 있는 이 길은 등산 동호인을 위해 신지면에서 가장 높은 상산 정상에 오르는 제1코스와 상산 둘레를 따라 트레킹을 즐길 수 있는 제2코스로 구분, 다양한 계층이 이용할 수 있도록 했다.
특히 신지도는 혈액 정화와 피로회복에 탁월한 효과가 있는 공기의 비타민이라 불리는 산소 음이온이 대도시보다 50배가량 많이 발생하는 곳으로 확인됐단다.
 

완도읍과 신지면을 잇는 신지대교의 야경.


이처럼 '공기의 비타민'이라 불리는 산소 음이온이 엄청난 것으로 알려진 완도의 자랑, 명사갯길 70리와 명사십리. 우리 고장 출신의 이청리 시인의 명사십리가 떠오른다.

물안개 스카프를 두른
내 고향 완도 명사십리
아버지가 그 바다를 식솔로 거느리고
돌아오는 늦은 저녁이면
어머니가 밤새워 보살 펴 주시는 곳
하늘 천장까지 갯내음이 쌓여 있고
언제라도 부르면 은빛 고기떼들이 달려와
왠 종일 뛰어놀던 곳
아! 내 첫사랑이 해당화 꽃으로
피어났던 곳

객지로 돌다가 고향 완도의 명사십리를 마주한 순간 깊고 긴 시간 속으로 빠져들어가는 시인.
어린 시절 첫사랑이 아직까지 머무는 곳, 아버지 어머니의 자혜로운 마음이 모래 물결의 부드러움 속에서 수 억년의 세월이 오롯하게 전해진다.
이곳 명사갯길은 언제나 따뜻하고 언제나 포근한 아늑한 어머니의 품속이다.
제 영혼이 충분히 인간으로서 잠을 잘 수 있는, 그런 잠을 자면서 새로운 어떤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그런 의미를 지니는 곳.
명사갯길은 그 어머니의 가슴 속과 같다.
이곳에 서면 어머니의 가슴이 나를 꼭 안아줄 것만 같다.
 

임보은 / 공비노조 완도지회장

임보은
보은 씨는 현재 완도군의회 의회사무과에 근무하며 공공비정규직노동조합 완도지회장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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