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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축축하다가도 따뜻해도 지는 것이...

[에세이-詩를 말하다]김인석 / 시인. 완도 약산 넙고리 출신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07.15 21:16
  • 수정 2017.07.15 2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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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석 / 시인. 완도 약산 넙고리 출신

 우리가 모두 떠난 뒤/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나 오늘 그대 알았던/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마종기, <바람의 말> 전문
 
바람이 불어온다. 어느 쪽에서 부는 바람인지 알 수 없다. 갈바람인지 마파람인지 화자의 촉수는 굳이 알려하지 않는다. 그냥 바람이기를 바란다. 하지만 어쩐지 바람이라는 말 속에는 묘한 그 무엇인가가 있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아니, 있다 할 수 있겠다. 그렇다면 그 무엇이 무엇일까? 영혼의 바람이다.

속세를 떠나버린 다음에도 잊을 수 없다는 화자의 마음이 영혼의 바람이 되어 전해지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 “우리가 모두 떠난 뒤/내 영혼이 당신 옆을 스치면/설마라도 봄 나뭇가지 흔드는/바람이라고 생각지는 마.”라는 부정어의 긍정을 통한 시행 속에는 부디, 잊지 말아달라는 소망이 자리한다. 왠지 우수에 깃든 듯하면서도 여운이 있어 중첩된 감정도 불러일으키며, 때로는 슬프고 아련한 마음의 허밍을 가지게도 한다.

사람 사는 일에 있어, 단순하게 생각하면 별것도 아닌데 미적분보다 더 힘들게 계산하며 살려고 했던 세월들을 모름지기 반추하게 된다. 너무도 사소한 일로 다투고 아무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마음에 상처를 서로에게 던져주었던 이 모든 것들. 처음 만났던 그날을 기억하며 “나 오늘 그대 알았던/땅 그림자 한 모서리에/꽃나무 하나 심어 놓으려니/그 나무 자라서 꽃 피우면/우리가 알아서 얻은 모든 괴로움이/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릴 거야.//꽃잎 되어서 날아가 버린다.” 결국 모든 것이 사라지고 날아가 버리는 것이 사람살이다.

지금 창문 밖에는 바람이 불어온다. 사람이 살아가는 일처럼 바람이 참 정겹게 느껴진다. 바람에도 여러 가지 색깔이 있다. 사람의 마음에도 한두 겹의 둥그럼한 그리움이 숨어 있다. 때로는 그 그리움이 너무 아파 능소화처럼 목이 툭 끊겨 땅바닥에 떨어져버리기도 했다가 다시 생각 끝까지 차오르기도 한다.

수많은 감정이 뒤섞여 있고 온갖 울음이 묶여 있고, 가끔은 마음이 축축하다가도 가슴 시리게 따뜻도 해지는 것이 그리움이다. 위의 행간행간 속에 정말 다사로운 영혼의 바람이 스며  있는 바람이어서인지 평화스럽고 안온하다. 사람 사는 냄새가 있어 참 좋다. 진솔한 마음이 전해져 좋다. 가끔은 존재를 통해 부재를 느끼고 부재를 통해 존재의 귀중함을 깨달게 하는 것이 인생이다.

바람이라는 언어에는 인간의 많은 인생사를 품고 있다.  “참을 수 없게 아득하고 헛된 일이지만/어쩌면 세상 모든 일을/지척의 자로만 재고 살 건가.//가끔 바람 부는 쪽으로 귀 기울이면/착한 당신, 피곤해져도 잊지 마,/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을.” 아득하게 멀리서 오는 바람의 말도 잊지 말라는 화자의 마음이  실려 아름답게 마음 안에 전해져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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