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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 서면 내 영혼은 젖 뗀 아이와 같다

[여름 특집] 쉼, 이곳 어때요? 2. 금일에서의 하루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07.15 21:58
  • 수정 2017.07.15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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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일 전경


서러움이 내게 말 걸었지요
나는 아무 대답도 안 했어요
서러움이 날 따라왔어요
나는 달아나지 않고
그렇게 우리는 먼길을 갔어요
눈앞을 가린 소나무 숲가에서
서러움이 숨고
한순간 더 참고 나아가다
불현듯 나는 보았습니다
짙푸른 물굽이를 등지고
흰 물거품 입에 물고
서러움이, 서러움이 달려오고 있었습니다
엎어지고 무너지면서도 내게 손 흔들었습니다.
바다는...

이성복 시인의 '바다는' 시다.
바다를 보면 내 마음이 교만하지 아니하고 내 눈이 오만하지 아니하며 내가 큰 일과 감당하지 못할 놀라운 일을 하려고 힘쓰지 아니한다. 실로 내가 내 영혼으로 고요하고 평온하게 하기를 젖 뗀 아이가 어머니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이곳에 서면 내 영혼은 젖 뗀 아이와 같다.
한반도를 둘러싼 삼 면의 바다. 그 중 가장 한국적인 풍경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망설이지 않고 남쪽을 가리킬 것이다. 반도(半島)가 가진 이천여개의 섬이 모여 있는 곳. 섬과 섬이 맞닿은 굴곡진 리아스식 해안은 역사 속 민초의 삶과 닮아 있다.
 

금일 해당화해변과 그뒤쪽으로 보이는 망산의 모습.



다른 누군가가 남쪽 바다의 모습을 가장 잘 살펴볼 수 있는 곳이 어디냐고 묻는다면, 나는 그 질문을 기다린 사람처럼 전라남도 완도군에 위치한 금일도(金日島)라 답할 것이다.
완도항에서 17km 지점에 위치한 이 곳은 좌로는 생일도, 위로는 금당도를 끼고 있다. 금일도란 이름은 개도 후 단 한 차례도 외적의 침입을 받지 않은 평화로운 섬이란 뜻. 그래서 일까. 지금도 섬은 멋스러운 자연의 미를 온전히 간직하고 있다. 거주민도 4,000명에 지나지 않는다. 말 그대로 날 것 그대로의 남도(南島)의 바다다.

약산 당목항에서 30분 간격으로 운행하는 카페리선에서 내리자 특유의 고요함이 선물처럼 하선객을 맞이한다. 국내 다시마 생산량의 80%를 책임지는 섬. 그 것을 증명하기라도 하듯 항구 인근에는 잘 건조한 다시마가 켜켜이 쌓여 있다. 수협 위판장에서 산지 거래되는 금일도 다시마는 소정의 수수료를 지불하면 현장에서 구매할 수도 있다.

금일 망산에서 바라본 다도해 모습.


금일도의 평화로운 모습을 한 눈에 감상할 수 있는 곳은 섬 내 235m 높이의 망산이 제격이다. 최근 트레킹 코스로 각광 받고 있는 망산은, 그리 높지 않은 곳에서도 금일도의 풍광과 다도해의 절경를 맛볼 수 있는 곳이다. 또한 코스 초입에서는 좌로는 향기로운 유자밭과 우로는 바다 내음이 물씬 나는 천연 다시마 건조장은 남도에서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정취라 할 수 있다.

망산에서 길을 따라 하산하다 보면 곧 해안을 따라 우거진 월송해송림을 만날 수 있다. 2-300년생 2.000여 그루의 수령을 자랑하는 소나무 숲이 1.2km 길이로 이어지며 나무 그늘에서 독서와 낮잠을 즐기는 것도 방문객의 오감을 즐겁게 한다. 해송림(海松林)이 바닷바람을 막아주고,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기 때문에 캠핑족들에게도 인기가 높다. 밤이 되면 파도 소리롸 함께, 우거진 소나무 사이로 뜬 달과 별을 감상하다보면, 이 곳 마을의 이름이 월송리(月松里)인 이유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금일 월송리 해변림


월송해송림에서 바다로 발걸음을 옮기면 곧 금일명사십리해변이 시선을 반긴다. 곱게 펼쳐진 모래 해변이 금일도 동쪽 사동에서 동백리까지 이어진 이 곳은, 백사장의 길이가 약 십리(2km)에 이른다 하여, 명사십리해수욕장이라는 별칭도 가지고 있다. 폭 200m에 이르는 명사십리해변은 유난히 하얀 백사장으로 유명한데, 수 많은 조개 껍질이 오랜 시간 동안 파도에 침식되어, 고운 모래처럼 백사장을 뒤덮고 있기 때문이다.

이 곳의 참된 매력은 피서객과 상점으로 붐비는 관광지의 모습과 달리, 자연 그대로의 해변을 고스란히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몇 채의 펜션과 해변 관리소, 텐트촌을 제외하면 온전히 태초 그대로의 바다다. 최근에 조성된 해당화과 해송으로 조성된 산책로를 걸으며 고요함을 만끽하다보면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참된 휴양의 즐거움이 물씬 다가온다.
 

용굴


남도 바다의 또 다른 모습을 감상하고 싶다면 용항리 몽돌밭을 추천한다. 이 곳에서는 명사십리해변과는 전혀 다른, 넓직한 자갈마당과 옆으로 펼쳐진 해안 절벽의 풍경을 즐길 수 있다. 해변에 파도가 치면 자갈이 물에 씻겨 굴러가는 특유를 소리를 들으며, 작은 섬들이 배처럼 둥실 떠있는 다도해의 모습을 감상할 수 있다. 이 역시 금일도를 찾은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다.

도시와 사람에 치여, 끝없이 답답해진 가슴을 정화하기 위해 떠나는 길이라면 남쪽 바다가 제격이다. 그 중에서도 남도가 가진 날 것 그대로의 모습을 즐기고 싶다면 금일도로 떠나보자. 바다 내음과 자연의 싱그러움이 가득한 곳. 그 곳은 오늘도 평화로운 하루를 간직한 채 당신을 기다리고 있다.

김태복 / 완도군립도서관장

 

태복 씨는 현재 완도군립도서관 관장으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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