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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하고 길한 곳 보길, 어디 윤선도 뿐이랴!

[힐링 완도]올 여름 보길도에 가면 꼭 가봐야 할 곳 4선

  • 박주성 기자 pressmania@naver.com
  • 입력 2017.07.31 13:45
  • 수정 2017.08.01 09: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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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길도 백도리 송시열 '글씐바위'(왼쪽)와 맞은편 소안도 맹선리가 보인다.
보길도 백도리 송시열 '글씐바위'

 [백도리 송시열 ‘글씐바위’] 예송논쟁 두주역의 묘한 인연
임진왜란 이후 벌어진 조선의 예송논쟁은 간단하게 말하면 1659년 효종과 1674년 효종비 인선왕후의 승하시 몇 년 상으로 할 것인가 인데, 그 이면에는 몇 가지 복잡한 문제가 잠복돼 있었다. 몇가지 복잡한 문제는 인조반정을 시작으로 효종의 정통성 문제(정치적), 서인과 남인(더 정확하게는 동인) 시절부터 있었던 이기일원론과 이기이원론의 문제(학문적), 더 나아가서는 조선 초기부터 존재하였던 조선의 통치체제 문제(이념적)까지 걸려 있던 일대격전이었다. 태종 이방원과 정도전으로 대표되는 왕권과 신권의 싸움의 연장전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 예송논쟁의 핵심인물이 바로 서인의 거두 송시열과 남인의 윤선도였다. 윤선도는 인조 당시 병자호란에서 삼전도의 굴욕으로 제주도로 가던 중 보길도를 발견해 지금의 부용동을 만들어 놓았다. 어부사시사 같은 국문학사상 주옥같은 작품을 써냈고 보길도에서 생을 마감했다. 
세도를 달리던 송시열도 말년에 정치적 위기상황이 왔다. 숙종 때 장희빈의 아들 원자 호칭 문제로 서인이 축출될 때 세자 책봉 반대 상소를 올린 것이 왕의 미움을 받은 것이다. 송시열의 제주도로 유배를 가던 중 태풍을 만나 잠시 보길도에 머물게 되고, 자신의 심경을 토로한 글을 남기게 된다. 이것이 보길도의 ‘글씐바위’다.
예송논쟁를 대표하는 서로 정치적으로 다른 길을 간 두사람이 보길도에 남긴 인연은 역사적 아이러니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보길도 정자리 김양제 고택 입구.
김양제 고택 내부 모습.
김양제 고택 내부에 있는 혜일스님 부도탑으로 추정되는 탑의 모습.

 [정자리 김양제 고택] 동양 3국의 건축양식이 다 모인 곳
고산 윤선도로 유명한 섬 보길도 정자리에는 완도향토유적 5호로 지정된 김양제(김동성) 고택이란 곳이 있다. 이곳 김씨 고택은 조선 말 고종때 사헌부(司憲府) 감찰(監察), 중추원(中樞院) 의관(議官)을 역임하고 일제침략초기 항일산림전재의 주도자로 알려진 계암(溪岩) 김성희(金成喜) 선생이 지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에 후손들은 지역의 유지로 다양한 활동을 벌였다. 특히 이들은 조선시대 8대 부자의 하나로 손꼽혔는데, 제사상에 소머리를 올릴 정도로 그 세가 대단했다. 또 만호장(1만 가구를 거느릴 수 있는 장수)를 거느릴 만큼 부와 권세를 누리기도 했다. 전라도 해남과 진도까지 땅을 가지고 있었고, 보길도의 산 가운데 70%를 소유하고 있을 정도였다.
김씨 고택은 안채와 사랑채(행율당), 행랑채, 대문채 등 4개동으로 구성되었으며, 총 231.3㎡ 규모의 목조전통주택이다. 정확한 건립연대는 확인할 수 없으나 안채는 200여년 전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뒤를 이어 2대 정산(停山) 김상근(金商瑾) 선생이 사랑채인 행율당과 대문채, 행랑채를 축조하였다. 당시 인근에 기와공장을 세워 여기서 구은 기와로 지붕을 이었으며 중국, 일본인 목수와 건축기술까지 참여하여 공사를 함으로써 동양 3국의 특징을 두루 지닌 독특한 건축물로 축조됐다. 이후 3대 고암(鼓岩) 김양제(金良濟)선생이 중수하고, 정원을 조성했다.
정원은 전정, 중정, 후정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150여 종류의 아열대수종과 난대수종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택 내부 정원의 존재도, 섬지방이 주로 상록수임에도 이곳 정원의 식물종류가 다양한 것도 특이할만하다.
또한 김씨 고택보다 오래된 것이 이 고택 안쪽에 있는데, 바로 완도향토유적 6호로 지정된 신라 말기 고승 혜일대사의 제자들이 세운 부도탑으로 추정되는 중암사지 팔각부도다. 스님의 부도가 개인이 거주하는 고택에 자리잡은 데도 사연이 있다. 일설에 의하면 일제의 민족말살 정책으로 바다에 수장될뻔 하다가 완도군수였던 김상섭씨 동생인 김상근 씨(김양제씨 아버지)에 의해 김양제 고택에 부도를 숨겨 지금의 자리에 자리잡게 됐다고 한다.
 

보길도 예송리 상록수림과 해수욕장.
보길도 예송리 상록수림과 해수욕장.
보길도 예송리 상록수림과 해수욕장.

[예송리 해수욕장과 상록수림] 뒤엔 방품림 숲, 앞엔 은빛바다
완도 신지 명사십리해수욕장은 서남해안 해수욕장에서 가장 유명한 곳이다. 그런데 완도에 신지 명사십리해수욕장에 견줄만한 해수욕장이 있다. 바로 보길도에 있는 예송리해수욕장인데, 모래 대신 검은색 자갈, 즉 몽돌로 해안가가 이루어져 있다. 바닷물로 바다 안에 몽돌이 바로 보일 정도로 깨끗하다.
이곳 예송리해수욕장은 몽돌 말고도 내세울 것이 하나 있는데, 바로 상록수림이다. 예송리상록수림은 약 300년 전에 태풍을 막기 위해 이곳 주민들이 만든 숲으로 길이가 약 740m, 폭이 30m쯤 되는 반달모양의 매우 아름다운 숲이다.
예송리상록수림은 강한 바닷바람으로부터 마을과 농경지를 보호하는 방풍림의 기능은 물론, 물고기가 서식하기에 알맞은 환경을 제공하여 물고기떼를 유인하는 어부림의 구실도 하고 있으므로 매우 중요하다. 선조들이 자연을 이용하는 지혜를 엿볼 수 있는 문화적 가치뿐만 아니라 생물학적 가치도 매우 커서 천연기념물 40호로 지정하여 보호하고 있다.
이곳에서 또한가지 빠질 수 없는 것은 바로 마을 입구 도로가에 있는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모습이다. 황금빛 햇볕이 바다에 비치면 은빛으로 변해 바라보는 이들에게 몽환적인 느낌을 갖게 한다. 
 

뾰쪽산 정상에서 바라본 풍경.

 

보옥리 공룡알해변.

 [뾰쪽산과 보옥리 공룡알해변] 뾰쪽산 정상에선 풍경, 보길경치의 참맛
보길도 선창리를 지나서 해안도로의 끝까지 가면 길이 끝나는 곳에 하늘을 찌를듯 솟아있는 뾰족한 봉우리가 눈에 들어온다. 바로 뾰쪽산(195m)이다. 우리말을 한자어로 표기하려 하다보니, 지도상에는 보죽산으로도 나와 있다.
조금은 벅찬 숨을 내쉬더라도 뾰쪽산 꼭대기에 올라 보길도의 진산 격자봉의 모습과 다도해의 멋진 바다풍경을 함께 감상해 보아야만 보길도 경치의 참맛을 알수 있다. 산 정상까지는 보옥리 마을에서 약 30분 정도면 걸린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조금 걸어가면 약 30~40명 정도가 쉴 수 있는 너럭바위 반석지대가 나오고 바위 끄트머리에는 조그마한 돌탑 3기가 세워져 있다. 이곳에서의 전망은 보길도 최고라 회자되고 있다.
절벽아래로 보이는 보옥리 마을과 해변풍경, 위쪽으로 눈을 들면 망월봉(364m) 바위봉우리와 보길도 최고봉 격자봉 (적자봉, 430m) 산줄기가 마치 영화의 한장면처럼 펼쳐지는데 흘린 땀이 해풍에 절로 식혀지고 기분도 그만이다.
보옥리 마을 안쪽을 감싸고 있는 뾰족산 아래 해안을 공룡알 해변이라 부르고 있다. 청명석이라고 불리는 갯돌이 크고 둥글둥글 하여 공룡알 같이 생겼다 하여, 공룡알 해변이라 불리어 지고 있다. 막상 보옥리 공룡알해변을 가게 되면 공룡알 모양의 갯돌을 부둥켜 않아주고 싶더라도 다도해해상국립공원이라 갯돌 도둑으로 의심받을 수 있으니 삼가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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