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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세로 귀천, 남은 생 수절하며

[문학의 향기]19세소녀와 77세대감의 사랑 8

  • 김형진 기자 94332564@hanmail.net
  • 입력 2017.08.11 17:21
  • 수정 2017.08.11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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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양 대감의 부름에 부용이 더딘 걸음 재촉해 서울에 다다르니 대감은 한강이 내려다보이는 남산 기슭의 한 초당으로 안내했다.
새롭게 단장한 아담한 별장은‘녹천정(綠川亭)’
부용은 그제서야 자기를 데려오는데 여러 달이 걸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이때부터 김 대감과 단란한 신접살림을 시작한 부용은 어엿한 김 판서의 소실이 되어 주위 사람들로부터 ‘초당마마’로 불리며 달콤한 세월을 보냈다.
김 판서는 80이 넘어 벼슬길에서 물러나 녹천정에서 부용을 비롯한 시객들과 시를 읊고 거문고를 들으며 유유자적하였다. 그리고 91의 나이로 귀천한 김이양. 부용은 크게 통곡하며 이르기를...

풍류와 기개는 호산의 주인이요
경술과 문장은 재상의 재목이었네 
15년 정든 임, 오늘의 눈물
끊어진 우리 인연 누가 다시 이어 줄고
인연 아닌 인연을 맺어온 인연
피치 못할 인연이면 젊어서나 만나지
꿈속에서 꿈을 꾸니 진실은 어디 있나
살아도 산 게 아니요 진실로 죽은 것을
달 밝은 수정에 배는 둥둥 떠 있고
술 익은 산방에 새는 지저귀는데
누각에서 홀로 우는 남모르는 이 슬픔
방울방울 뿌리는 눈물 두견화로 피어나리!

이후 부용은 홀로 녹천정을 지키다가 몇 해 후에 세상을 뜨자 그녀의 소원대로 대감의 묘역에서 조금 떨어진 언덕에 고이 잠들게 되었는데,
성천기생 부용 김운초(芙蓉 金雲楚).
기생도 늘그막에 남편을 따르면 한평생의 분 냄새가 사라져 버리고, 열녀(烈女)라도 머리가 센 뒤에 정조를 잃으면 반평생의 절개가 물거품이 된다. 옛말에 이르기를 사람을 보려거든 그 후반생을 보라고 하였으니 이는 진실로 명언이다.
비록 천한 기생의 몸일지라도 사랑의 아픔을 조용히 인내하며 낭군을 따라 늙을 때까지 수절한 그녀의 이름은 지금도 곱게 전해져 오고 있다. 옛 말에 정이 있으되 말이 없으면 흡사 정이 없는 것 같다고 했다.
하지만 궂이 말은 안하여도 꽃 향기로 답하니 서운치 않고, 이렇게 연모의 정을 나눌 수 있는 묘라도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사랑하면 욕심이 생겨 이별을 두려워하게 되지만, 사랑이 다가 올 때도 한 인간의 보잘 것 없는 선택의 의지와는 상관 없이 다가 오듯이 사랑을 보내야 할 때도 마찬가지다.
만남과 이별은 하늘이 만드는 운명이므로 인간의 의지로는 어찌 할 수 없다. 하지만 그 순간에 꽃피웠던 그들의 향기는 이렇게 긴시간을 흘러 전해온다. 영원이란 그런 것이지 않겠는가!(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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