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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철 피서와 구양수의 독서법

[독자 기고]안미정 / 완도군청 주민복지과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08.12 10:24
  • 수정 2017.08.12 1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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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미정 / 완도군청 주민복지과

 날씨가 어느 정도 더우면 “어디 멀리라도 가야지” 생각하는데, 너무 더우면 그냥 그대로 있는게 낫다고 생각하게 된다. 요즘 날씨가 그런 날씨다. 그래서 그냥 있기도 그렇고, 이럴 땐 산들바람 솔솔부는 시원한 곳을 찾아 책을 읽는 것이 또다른 방식의 ‘피서’다.

최근 중국 조선족들이 배우는 ‘중국 역사이야기’라는 책을 읽게 됐다. 대체적인 구조는 각 시대별 정리와 분야별 인물사를 설명하는 구조다. 그 중 독서와 관련하여 북송(北宋) 때 구양수가 등장한다. 그는 중국 당(唐)나라와 송(宋)나라의 뛰어난 문장가 여덟 명을 가리키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중 한사람이다. 당송팔대가는 당나라 한유, 유종원과 송나라 구양수, 소순, 소식, 소철, 증공, 왕안석인데, 그 중 구양수는 중국 산문의 대가로 추앙받고 있는 인물이다.

구양수는 주로 북송 중기에 활동한 정치가이면서 사학가요, 경학가인 동시에 문학가이어서 북송의 정치·사상·문학 등의 여러 방면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긴 사람이다. 구양수의 가장 큰 업적은 문학 방면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는 시, 사, 부, 산문 등 문학 장르의 다방면에 걸쳐 볼만한 업적을 이루었지만, 특히 산문 부분에서 더욱 큰 성취가 있었음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런 구양수는 자신의 글짓기 경험을 뒤돌아보며 이렇게 말했다.
“글을 잘 지으려면 세가지를 기억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많이 읽고(多讀다독), 많이 쓰고(多作다작), 많이 생각해야(다상량 多商量) 합니다”

구양수가 글을 쓰는 태도는 엄숙하고 진지했다. 그는 글 한편을 쓰면 그것을 벽에 붙여 놓고 앉으나 서나 들여다보면서 퇴고(推敲)했다. 그는 그 글이 자기 마음에 든 후라야 남한테 보였다. 그가 <취옹정기(醉翁亭記)>를 쓸 때 서두에다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저주(滁州-지금의 중국 안휘성 저현)를 묘사했는데, 동쪽에 무슨 산이 있고 서쪽에 또 무슨 산이 있다고 썼다고 한다. 이렇게 수십 자를 써놓고 보니 너무 지루하다고 느낀지라 거듭 퇴고한 후 마지막 완성 원고를 낼 때, ‘산들에 휩싸인 저주로다’라고 고쳤다고 한다. 간단히 서두를 떼니 문장이 간결할 뿐 아니라 그 뜻도 명확해졌다.

말년에 이르러 구양수는 지난날에 자기가 쓴 글들을 한편 한편 꺼내 자세히 수정을 가했다. 그것을 보고 부인이 이렇게 말했다.
“왜 이리 고생을 하세요? 학생도 아닌데 선생한테 꾸중을 들을까봐 그러세요?”
그 말에 구양수는 웃으며 대답했다.
“선생한테 꾸중을 듣는 건 겁나지 않지만 젊은이들한테 비웃음을 당할까봐 걱정이오.”

구양수는 중국 문학사상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북송고문운동(北宋古文運動)의 길잡이였다. 그는 시종 내용이 없이 화려한 어구만 쓰고 딱딱하고 알기 어렵게 쓰는 문풍을 반대했으며 통속적이고 유창하게 쓸 것을 제창했다. 그 뜻은 그가 직접 양성한 후학들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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