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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질풀꽃 찾는 사람들은 이웃들에게 친절해

[완도의 자생 식물] 11. 이질풀

  • 신복남 기자 sbbn2000@hanmail.net
  • 입력 2017.08.19 17:36
  • 수정 2017.08.19 17: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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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사십이 들으니 길가에 풀꽃이 보인다. 그것도 별처럼 빛나는 아주 작은 풀꽃을 주의 깊게 관심을 갖는다.

작은 시집을 사서 읽는 일처럼 눈망울에 눈물이 맺을 때도 있다. 사십 이전에는 꽃이 보이지 않는다. 청춘 그 자체가 꽃이기 때문에 굳이 꽃을 꺾지 않아도 그 열정만으로 꽃이다. 오십이 들어보니 이제 풀꽃을 대하는 태도는 더욱 깊어진다. 꽃의 아름다움을 보기보다는 어떻게 싹을 띄우고 자라 꽃을 피울 수 있을까. 내면의 삶을 풀꽃 속으로 환원해 본다. 예전에는 사진을 찍기 위해 쪼그려 앉았다. 지금은 마음이 먼저 주저앉는다.

잎과 꽃잎에 상처를 보듬는다. “작은 풀꽃도 상처를 안고 살고 있구나” 하고. 작은 풀꽃들은 봄에 많이 핀다. 그런데 이질풀은 가을에 핀다. 키가 아주 작기 때문에 길가를 택한다. 10원짜리 동전보다 더 작은 이 야생화는 어린 아이의 리본처럼 귀엽고 앙증스럽다.

꽃은 그야말로 아름다운데 이름은 그렇지 못하다. 민간요법으로 쓰이는 시대에는 명약이었다. 이질은 설사에 피가 섞여 나온다. 무서운 전염병 아닐 수 없다. 전국 산야에 서식하는 이질풀이 민간에게 긴요하게 쓰여 민중의 풀로 명명되어 왔다. 한편 이 풀을 먹어도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안타까운 운명을 기억하기 위해 꽃은 하늘을 보고 애도한지도 모른다. 여러해살이풀로 쥐손이풀과다. 잎은 쥐 발바닥을 닮았다 해서 쥐손이풀, 서장초라고 불린다.

처음 이 풀과 만났을 때 놀라웠다. 사람들 곁에서 귀하게 큰 줄 알았는데 들녘 한가운데에 스스로 꽃을 피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을 들꽃들은 대부분 파란 하늘 가운데에서 피는데 이질풀은 저 아래에서 핀다. 먼 실눈을 뜨고 전체 풍경을 본다. 그러다가 들판 가까이 바로 앞 풀꽃들에 눈동자를 내려놓는다.

가을 풍경은 먼 곳과 가까운 곳을 한꺼번에 밀려온다. 쪼그려 앉아 이질풀 꽃을 보고 있으면 그 배경은 온갖 노란 물결이다. 굳이 이리저리 볼 필요는 없다. 한 곳을 집중해 보면 마음을 깨끗하게 씻을 수 있다. 일부러 들판에 나가 들꽃과 대화를 해본 사람은 참으로 마음이 따뜻하다. 머리만 갖고는 살 수 없다. 머리만 중시하는 사회나 개인은 마음이 끼어들 틈이 없다. 더는 사회 국가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

일용할 양식은 정해져 있다. 기필코 얻어 봐야 하루 세 끼니다. 그러나 따뜻한 마음은 무한정하다. 마음의 영역에 따라 삶의 내용이 달라진다. 가을 들판 한가운데에서 가장 낮게 핀 이질풀꽃을 찾는 사람들은 이웃들에게 가장 친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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