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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누라가 친정에 다녀왔다

[에세이-고금도에서]배준현 / 고금주조장 대표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09.18 08:56
  • 수정 2017.09.18 08: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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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준현 / 고금주조장 대표

마누라가 친정에 다녀왔다. 구순을 바라보는 장인 장모님이 사시는 곳은 광주 지원동이다.
마누라는 이곳에서 자랐고 그 옛날 우리 연애시절, 이 동네 골목에서 애틋하게 헤어지곤 했던 추억이 있다.
오랜만에 들른 친정집은 고요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방에서 도란도란 얘기하는 소리가 들린다. 인기척이 들리자 두분이 고개를 든다.
서로 눈이 마주치는 순간이다.
"어려움도 겪고 싸우기도 하고 힘든 세월 다 살아왔을 거 아냐!"
"그렇게 늙었을 거 아냐, 늙어서도 남편이 이쁜 거는 아니지."
"그 젊었을 때 고생했던 거 생각하면 그 남편이 이쁘겠어? 그랬어도 불구하고 하여튼 늙어가면서 인제 살 날보다는 남은 날이 적겠지, 당연히 적지."
"그런 시간속에 둘이 나란히 한 분은 침대위에서 한분은 침대아래서 그렇게 돋보기를 쓰고 뭔가를 열심히 쓰고 있는데 자식이 부모를 보았을 때 그 모습이 얼마나 좋았겠는가? 안경너머로 날 보는 그 모습이 너무나 인상깊었어. 너무나 보기 좋았네. 아빠는 항상 얼굴이 부숭부숭하거등."
"그날 따라 그런것도 없이 표정도 밝고 너무 좋았어. 지원동에 그때쯤 해가 아스라이 비치쟎아? 밝게...”
마누라는 친정 부모님의 건강에 안타까워 했다. 장인어른의 지병으로 집안분위기가 어두운 날이 많았다. 이번에 다녀와서 잠깐 마음이 놓였는지 이렇게 전한다.
그런 마누라를 보며 애잔하다. 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같은 장모님과 자식 걱정만 하는 장인어른을 생각하면 더 많이 효도해야 하는데 마음뿐이다. 그럼에도 두분은 또 자식에게 행복이 무엇인가를 보여주고 있다.
부부가 늙어갈 때 어떻게 늙는 것이 좋을까?
난 곱게 늙고 싶다. 책을 읽고 산책하고 손주들에게 옛날얘기를 들려주고 텃밭을 가꾸고 싶다. 온갖 낭만적인 생각을 한다. 현실과 동떨어진 것들. 함께 할 마누라를 생각한다. 일심동체였던 두사람이 나이가 들수록 따로따로이다. 의무감으로 하는 립서비스와 동상이몽.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살아가는 것은 무엇일까? 지긋지긋한 삶을 살면서 무엇 때문에 부부는 함께 늙어 갈까? 정답은 없는 거 같다. 사람마다 집집마다 사정이 다르다.
티격태격하면서도 함께 하는 것은 다만 서로가 상대를 독립된 존재로 인정해 주기 때문이다. 손아귀에 휘어잡으려고 하거나 잡혀 산다는 것이 아니라, 잡혀 주는 마음, 잡히는 것이 편안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독신남보다 유부남이 더 오래 산다는 통계를 본 적이 있다. 무엇보다도 아내의 관심과 손길이 정서적인 안정감을 준다고 한다. 때론 아내의 잔소리도 필요하고 긴장하고 산다. 하지만 진정으로 아름다운 모습은 상대방의 자아를 존중해주는 것이다. 그렇게 늙어가면 나중에 우리자식들도 기쁘게 바라보지 않을까?
 “젊어서는 싸우기도 하고 막 아웅다웅하지만 다 겪고 늙어서는 부부간의 행복이란 것이 별것이 아니다는 말이지,"
"어려운 것도 아니고, 욕심쫓아가고 부를 쫓아가고 힘들게 살지만 다 소용없쟎아."
"부부가 함께 하면서 늙어가면서 다정하게 책을 보고 있는 모습만으로도 자식들한테 기쁨을 주는 모습"
"행복감을 주는 아름다운 모습들, 자식들에게 돈을 주고 부를 물려주고 해야만 의미있는 삶이 아니고 결국은 자식들에게 우리가 줄 것은 없으나 다정하게 사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자식들이 행복하다. 그말이야.”
“그럼 우리도 그렇게?”
“행복 별 거 아냐.”
 마누라가 웃는다. 노부부가 말없이 가르쳐준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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