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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부해안도로 드라이브 코스가 '죽여줘요!'

[힐링 완도]추석날 완도 군외면에서 가볼만 한 곳 5선

  • 박주성 기자 pressmania@naver.com
  • 입력 2017.09.30 17:22
  • 수정 2017.10.01 09: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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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도 상왕봉쪽에서 바라본 '삼두리 동백숲'
'삼두리 동백숲' 사잇길.


삼두리 동백숲(동백나무 군락지) - 소나무숲 마냥 우거진 붉은 꽃의 요람
핏빛처럼 시리고 서릿발처럼 단호하다 절정의 순간에 주저없이 목숨을 내놓아 떨궈지는 붉디 붉은 동백꽃은 절개의 상징이다. 그런 고로 사람들은 그 매력에 빠져 헤어날 줄 모른다. 전북 고창 선운사와 인근의 강진 백련사가 동백꽃이 질때면 찾는 이들로 북새통을 이루는 것도 그때문이다.  그들은 동백을 통해 역사와 문화를 되새기고, 그곳에서 문학을 만들어낸다.(물론 그냥 그 아름다움을 보기 위해서 찾는 이들이 대부분이지만.)
그런데 이 절개의 상징 동백이 완도에 얼마나 많은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완도수목원 자료에 따르면 동백은 난대 특산수종으로 전국의 51%가 전남에 분포하고 있고, 전남에서도 완도가 41%를, 여수가 23%를 차지한다. 그 완도에서도 삼두리 동백숲은 온산이 소나무가 심어진 숲처럼 동백이 우거져 있다.
완도 사람들 씀씀이가 통큰 것처럼 삼두리 동백숲은 선운사나 백련사의 동백처럼 쩨쩨하지 않다. 보다만 것 같은, 인공적인 가림도 없다. 삼두리 동백숲 사이 놓아진 길을 따라 거닐면 마음도 경계가 없어지고, 동백이 내뿜는 향기를 맡으며 어느새 자연과 동화가 된다.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서부해안도로'에서 바라본 해남 땅끝쪽 다도해.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서부해안도로’ - 영광 백수해안도로 부럽지 않아
천천히 서부해안도로를 달리다보면 해남땅끝 사이의 바다에 황금빛으로 반사되는 바다색깔은 해안절벽 사이로 솟아 있는 멋진 바위들과 여기저기 자리한 암초들이 다이나믹한 풍경의 변화를 연출하는 영광 백수해안도로가 부럽지 않다.
당인리 근처 미소공원에서 바라보는 다도해 풍경은 오후와 일몰 때가 가장 아름답다. 햇빛이 강하게 비추는 오후는 황금색으로, 일몰 때는 짙지 않은 붉은색이 나름대로 아름다움을 발산한다. 그러나 무엇보다 마음이 싱숭생숭할 때 서부해안도로를 돌다보면 만들어지는 여유가 이곳을 찾는 이유가 아닐까.
서부해안도로는 전망이 좋은 미소공원 뿐만 아니라 갯바람공원과 일몰공원이 있는데, 모두 해남땅끝쪽의 조망이 좋은 곳이다. 갯바람공원은 제주의 올레길처럼 데크길을 따라 해안선을 거닐  수 있고, 일몰공원은 글자그대로 아름다운 일몰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갈문리 모감주나무 군락지.


갈문리 모감주나무 군락지 - 학술적 가치 높은 희귀종 ‘염주나무’ 서식지
완도의 남서쪽 해안선을 따라 길이 약1㎞, 폭 40∼100m의 장방형 모양으로 모감주나무 474주가 타 수종과 함께 군락을 형성하고 있다. 군락지가 있는 곳은 갈문마을인데 법정동이 대문마을로 되어 있어 '대문리 모감주나무 군락지'라고 표기된 안내판이 서 있다.
이곳 완도 갈문리의 모감주나무 군락(천연기념물 제428호)은 지금까지 발견된 모감주나무 군락 중 가장 오래되고 큰 나무들로 구성되어 있고 숲의 상태가 양호하여 "안면도의 모감주나무 군락(천연기념물 제138호)" 및 "포항 발산리의 모감주나무·병아리꽃나무 군락(천연기념물 제371호)"와 함께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모감주나무 군락으로서 그 학술적 가치가 뛰어난 곳이다.
모감주나무는 무환자나무과에 속하는 세계적인 희귀수종으로 7월에 황색 꽃이 피며 중국의 문헌 「삼재도해(1609)」에서는 키 큰 나무로 흑색의 단단한 씨가 들어 있어 목란자(木欒子)라 하였고, 꽃은 황색물감으로 사용하며 사찰 주위에 많이 심어 종자는 염주나 비누 대용으로 사용하여 염주나무라고도 부르고 있다. 모감주나무로 만든 염주는 최상급이라 아주 가격이 비싸다.
 

완도 의인(義人)의 대표인사를 모신 당인리 '창의사'


'의기천추'의 표상, 당인리 '창의사' - 허사겸 등 계미의사 8인 위패 봉안한 곳
계미의거는 고종 20년(1883) 계미년 당시 당인리 이장이었던 허사겸 선생이 가리포 첨사 이상돈의 가렴주구와 학정을 견디다 못해 민란을 일으켜 가리포진을 점거하고 이상돈의 죄상을 밝혀 남창으로 추방한 사건이다. 첨사 추방 이후 향도청을 설치해 자치행정을 실시한 것도 현재에 와서는 높은 역사적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관군에 의해 민란이 진압되고 강진 병영에 끌려간 허사겸은 모든 책임을 홀로 지고 이듬에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창의사(倡義祠)는 보통 허사겸 선생을 비롯한 최여안, 최도일, 문사순, 최여집, 박의중, 이사욱, 조자군 선생 등 8명의 위패가 봉안된 곳으로, 그 뜻을 기려 지난 2008년 10월 완공됐다. 창의사(倡義使)는 예전 나라에 큰 난리가 났을 때 의병을 일으킨 사람에게 임시로 주는 벼슬을 이르던 말이다. 여기서는 의기천추(義氣千秋, 올바른 기개가 오랜 세월 동안 변하지 않음)의 표상으로서 계미의거 8인의 의(義)를 상기시키는 곳으로 창의(倡義, 의를 인도함)하는 사(祠, 사당)로 이름을 창의사(倡義祠)로 명명했다.
 

'완도대교 야경'은 고요한 호숫가의 불빛 같다.


완도의 관문, 완도대교‘야경’ - 고요한 호숫가에 은은한 불빛처럼
2012년 3월 개통한 완도대교는 완도의 관문이다. 국도 13호선 군외-남창 구간을 확장공사하면서 건설한 다리다. 이 다리는 1주탑 2면식 비대칭 사장교 형식으로 건설됐는데, 통일신라 해상왕 장보고의 진취적 기상을 상징하는 무역선과 투구를 형상화했다.
완도대교의 야경은 그리 화려하지는 않지만, 원동의 호숫가 같은 바다의 고요함과 어우러져 나룻배를 한척 띄워놓고 시조를 한수 읊고 싶은 분위기를 연출한다. 어둠이 내려앉은 어스름한 저녁 무렵 완도대교의 야경을 불빛 삼아 원동 바닷가 찻집에서 차를 마셔보지 않은 사람은 아마 모를 풍경이다.
원동이 이리 한가한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고흥의 녹동처럼 원동은 지금처럼 새로운 도로가 놓아지기 전엔 완도 초입의 교통의 요충지로 붐비는 곳이었다. 그러나 새로운 완도대교가 개통되고, 현재처럼 도로가 넓어지면서 그전 같지 않게 한가한 곳이 되어 버렸다.
완도를 연결하는 최초의 연륙교는 한강철교 개량시 구조물(나중에 박정순 전 완도문화원장은 역사적인 기록을 살펴본 후 "한국전쟁 당시 미군이 북한군의 남하를 저지하고자폭격, 폭파했던 철골구조물인 임진각 철교"라고 주장함)을 가져와 1969년 개통됐다. 당시 이름은 완도교로 명명됐는데, 완도가 최초로 육지와 연결되면서 버스가 운행되기 시작했으며 이후 국도 13호선의 기점이 완도로 변경되는데 영향을 끼쳤다. 더불어 완도군에서 어획한 수산물의 수송이 원활해져 지역경제 활성화에 획기적인 전환점을 마련했으며, 주변 도서지역은 모두 완도로 이동하면서 완도가 수륙교통의 중심지로 발전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기존 다리인 철교를 완도군에서는 완도를 뭍으로 연결하는 첫 교량이며, 한국전쟁의 상흔을 간직한 역사적 가치를 일부분이라도 보존해 후손들의 산 교육장으로 활용하려 하였으나 수차례 방문 건의에도 불구하고 국비지원이 어려워지자 철거할 수 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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