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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한국 방문, 그리움이 잠든 꿈 속으로 들어가

[에세이-고향생각]배민서 / 완도 출신. 미국 거주

  • 완도신문 wandonews@naver.com
  • 입력 2017.09.30 18:40
  • 수정 2017.09.30 1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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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인지도 모르겠다. 일상에서 벗어나 그리웠던 사람들과 풍경들 속에서 고요히 나 자신을 더 많이 사랑하게 만드는 여행. 열정적으로 살아 왔던 시간에 대한 보상처럼 흔쾌히 고국여행을 준비해 준 남편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첫 발을 내딛은 고국의 숨결은 눈물겹게 그리운 엄마처럼 온화하고도 감미로웠다. 산천은 그렇게 아무런 말도 없이 나를 꼬옥 안고서 쉴세없이 나를 토닥이며 머릿털을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이 사랑스런 들숨과 날숨들이 곱게 물들여 갈 무렵, 나의 가을여행은 시작되었다.

나를 낳아 주었고 자라게 했던 땅. 나의 뿌리가 숨 쉬고 있는 이곳에 그리움의 흔적들을 더듬으며 나는 다시 찾아 온 것이다. 내가 한국에 들어오게 되면 흩어져 살고계신 가족들이 자연스럽게 모이게 된다. 팔 남매의 막내로 태어나 큰 언니와의 나이차는 23살이나 되지만 우리는 어린시절 이야기로 함께 깔깔대기도 하고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신 부모님을 기억하며 눈물을 글썽이기도 한다.

완도에서 초기 어장사업을 하셨던 아버지의 파산으로 언니들과 오빠들은 객지로 떠나야만 했었고 홀로서기의 힘든 세월들을 모두들 각자의 몫으로 견뎌야 만 했었다.

시인이 꿈 이셨던 큰 언니는 젊은 나이에 병을 얻으신 형부를 돌보시며 네 자녀들과 가정경제를 책임지시느라 이른 두살의 나이에 비로소 시인이 되셨고 지금은 노인신문의 기자로 활동하고 계신다.

"느그들 만날 생각에 소풍 앞 둔 아이처럼 설렌다야" 하시며 언니는 손꼽아 만날 날 들을 기다리고 계셨겠지. 우리는 이처럼 서로에게 무언가를 주기 위해 선물들을 사기도 했고 텃밭에 야채들을 키워 짱아찌나 김치를 담그기도 했으며 여행 준비물들을 점검하기도 하면서 가슴은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함께 조개를 캐려고 물 때를 맞춰가며 여행일정을 잡았었는데 광야처럼 펼쳐진 서해의 긴 갯펄은 적막하기만 했었다.

"아따~~ 오짜까 잉~ 오지게 잡아브러야 쓰껀디~"

구수한 사투리가 여기 저기에서 들려왔고 우리는 하는 수 없이 선착장으로 자리를 옮겨 낚시와 투망을 이용한 어장사업을 시작하기로 했다.

몇 군데에 투망들을 던져 놓고 기다렸다가 끌어당겨 보면 거기에는 맑고 투명한 새우들이 파닥거리고 있었다. 어쩌다가 형부들의 낚시대에 작은생선 한 마리라도 걸리게 되면 우리들은 쪼르르~ 달려가 감탄사를 터트리며 즐거워 하였다. 노년과 중년의 나이 이시지만 여전히 해맑은 아이들처럼 순수하신 우리언니들... 그리고 그 언니들의 정성어린 보살핌들을 받으며 살아 오셨던 형부들은 처갓집 말뚝도 이뻐 보이시는지 처제인 나의 행보에 언제든지 기쁘게 운전기사가 되어 주신다.

저녁무렵에 우리는 미리 예약한 숙소인 자연휴양림에 도착하였다. 밤나무로 둘러 쌓여진 언덕에 자리한 그곳은 맑고 한적했었다. 산장에 도착하자 형부와 언니들의 손놀림들은 빨라지기 시작하였다. 아마도, 서로에게 멋진 추억을 만들어 주고픈 소망 때문이었겠지!

형부는 바베큐 그릴을 설치하고 숯불을 피워 부위별로 고기들을 굽기 시작하였다. 언니들이 텃밭에서 키워 데려 온 각종 야채들과 숯불에서 알맞게 구워진 고기맛을 즐기며 밤은 깊어갔고 우리들의 행복한 웃음소리는 숲 속 메아리처럼 은은하게 울려 퍼졌다. 이것은 오래 전에 우리 곁을 떠나 가셨던 부모님들의 간절한 염원은 아니었을까?

당신의 자녀들이 인생을 살아 가면서 서로 서로를 진정으로 아끼며 사랑하며 살아가기를 기원 하셨을텐데...,

만약에 우리의 이런 모습들을 보신다면 활짝 웃으시며 많이 행복해 하실거 같다.이제는 나의 오랜 그리움들이 잠들어있는 내 고향에 내려가 부모님의 산소를 둘러 본 후에, 죽마고우들과 완도의 아름다운 섬들을 찾아가 더 많은 추억들을 만들고 싶다.
 

배민서 / 완도 출신. 미국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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